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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이라 느긋하게 반신욕을 하면서 책을 보고 있는데 아내가 욕실로 들어왔습니다. 가만 보니 아내의 손에는 부침개가 들려 있었습니다. 저는 읽고 있던 책이 물이 젖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빨래더미 위에 올려놓고 아내가 내미는 접시를 받아 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여보. 엊그제 티브이에서 봤는데 예능과목 교사들에게 수업을 안 주고 행정업무를 보게 하는 자립형 사립학교가 있대."

"응. 정부에서 교과목을 자율적으로 하라고 하니까 그런 일이 생긴 거야. 자율이란 게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건데 학교에 자율을 주니까 획일적으로 입시 과목을 선택한 거지."

"그럼 그걸 고쳐야 하잖아."
"잘못인 줄 알아야 고치지."
"왜 잘못이 아니야?"

"교과부에서는 학교에 자율을 준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하는 걸. 그 말은 맞잖아."
"맞아도 틀린 거잖아."

"그렇지. 맞아도 틀린 거지. 그것은 누가 보아도 틀린 거지.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교과부장관이란 사람이 그럴 모른다는 것이 문제지."
"뭐? 아니 왜 그런 사람을 교과부 장관으로 앉힌 건대?"


세상이 하수상하니 그 다음 대화 내용은 생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욕실을 나가고 저는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펴들었습니다. 오늘 읽은 책은 '심리학의 모차르트'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생각과 말>입니다. 책이 조금 두껍기도 하고 제 수준에는 조금 어렵기도 해서 다른 책들과 섞어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나마 진도가 꽤 많이 나갔습니다. 그중 몇 대목만 소개합니다. 

5-9-1) 복합체적 생각의 발달이 전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 실험적 상황과 실재 삶 모두에서 아동의 생각에 커다란 중요성을 가지는 그 마지막 국면을 기술하는 일이 남아 있다. 이 국면은 개념 발달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비추어 준다. 한편으로 그것은 아동이 이미 경과한 복합체 생각의 국면들을 명료하게 하는 한 편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새롭고 더 높은 단계에 이르는 다리, 즉 진정한 개념형성에 이르는 다리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5-9-2)우리는 이 유형의 복합체를 의사개념이라고 지칭할 것이다. 어린이의 생각에서 형성되는 이 일반화는 외형상 어른이 그의 지적활동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럼에도 그 본질에 있어서 그 심리적 특성상 진정한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5-9-3)복합체 생각의 발달에 나타나는 이 최종적 국면에 대해서 주의 깊게 연구해보면 그것은 일련의 구체적 대상들을 복합체로 재통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그것이 외형과 외적특성을 종합해 볼 때, 의사개념은 개념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렇지만 발생적 성질과 그것을 출현, 발달시키는 조건들, 그리고 그것의 기저에 놓인 역동적 인과관계의 관계를 볼 때 의사개념은 결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외적으로 볼 때는 개념이지만 내적으로 보면 복합체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것을 의사개념이라고 지칭한다.

5-10-9)의사개념과 진정한 개념을 구분하는 경계를 찾아낸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며 표현형질적, 순수한 형식적 분석을 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외면적인 유사성에 근거해서만 오롯이 판단을 해야 한다면, 의사개념은 고래가 물고기처럼 보이는 것만큼이나 진정한 개념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지력을 갖춘 동물적인 형태에 대한『종의 기원』을 받아들인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의사개념을 '복합체로 생각하기' 범주에 넣어야한다. 이는 고래가 포유류로 분류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고츠키에 의하면, 인간은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는 진정한 개념에 이르지 못합니다. 인간이 어린 나이에 도달한 듯 이해되고 있는 것은 유사개념이지 진정한 개념의 차원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어린이들은 오직 제한된 연합적 복합체를 구성했을 뿐이며, 같은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다른 길을 통해 같은 지점에 도달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솔직히 저는 비고츠키의 <생각과 말>을 읽고 난 소감을 피력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책을 다 읽지도 않았고, 이제 겨우 금맥을 발견한 설렘만으로 객관적인 글쓰기가 가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만, 못나고 부족한 글일망정 글쓰기를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순간의 감동(혹은 파동)을 놓치는 것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작동한 탓입니다.  

이야기는 다시 아내와의 대화로 돌아갑니다. 저는 책의 어느 대목에선가 아내가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이말. 

"맞아도 틀린 거잖아."

그것은 엄연히 논리적인 오류를 지적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한 인사가 개념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을 통탄하면서 말입니다. 고래가 외형상 물고기처럼 보인다고 포유류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참 우습고도 슬픈 일입니다. 틀린 것을 모르니 고칠 수도 없는 상황은 더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미 사춘기를 지낸 개념 있는 국민들이 나서기만 하면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교육공동체벗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생각과 말#비고츠키#이주호 #교과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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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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