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자력 전문가들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상태가 심각하지만, 방사능 물질이 대량으로 유출되는 최악의 참사는 피했다"고 밝혔다. 현 상태에서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도 미비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는 냉각수 공급이 중단 상태에서 12일 오후 일어난 수소 폭발로 발전소 외벽이 무너졌고, 13일 오전 '긴급 사태'가 발생했던 3호기의 경우 일본 정부가 수소 폭발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후쿠시마 제1·2원전 주변 주민 21만 명은 대피한 상태다.
"'노심 용해' 상태 심각... 하지만 대규모 참사 가능성 적다"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원자로가 폭발해 원자로를 보호하는 격납 용기가 파괴되면서,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공기 중으로 퍼지는 것을 가리킨다. 1986년 4월 발생한 구 소련(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대표적이다. 원자로 폭발 후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공기 중에 확산돼, 8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70만 명이 후유증을 겪는 참사로 이어졌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원자로 자체와 보호용기가 녹는 '노심 용해' 현상이 발생했지만, 원자로 폭발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국내 원자력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노심 용해는 냉각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한 상태에서 높은 온도의 원자로 내 핵연료봉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서 발생한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지진으로 인한 지진 해일(쓰나미)로 비상 자체 발전기가 침수돼 냉각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김무한 포스텍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는 "냉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노심 용해가 일어났다, 노심 용해는 심각한 상태"라면서도 "해수를 퍼부어 원자로를 식히고 있기 때문에 원자로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해수가 공급된 원자로는 다시 사용하지 못한다.
원자로가 폭발해도 격납 용기가 파괴되지 않으면 참사를 막을 수 있다. 1979년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가 대표적이다. 당시 직원의 실수로 과열된 원자로에 냉각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원자로가 폭발했지만, 격납용기가 방사능 물질의 누출을 막았다.
하지만 원자로를 냉각시키지 못할 경우, 방사능 물질 대량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일본 당국이 원자로 냉각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면서도 "만약 냉각시키지 못하고 핵연료봉이 녹아내리게 되면, 방사능 물질이 대량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최대 190명 피폭... 한국 원전 안전은?
13일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후쿠시마 1호기 폭발 사고로 최대 190여 명의 주민들이 방사능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생명에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한 방사능 노출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김명현 교수는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자연 상태보다 높은 방사능 물질에 노출됐지만, 인체에 영향을 줄 만큼 많은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인근 주민 21만 명을 대피시킨 것도 예방적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미비하다고 전했다. 박창호 기술원 통합커뮤니케이션팀장은 "원자력 안전 사고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상황실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강조했다.
향후 우리나라 원전에 대한 안정 장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명현 교수는 "일본에서 상상하지 못한 자연재해가 발생해서 당초 설계 수준을 넘어선 노심 용해가 일어났다, 우리나라도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를 대비해 원전 안전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달 28일 상업 가동에 들어간 신고리 원전 1호기를 비롯해 고리(4기), 월성(4기), 영광(6기), 울진(6기) 등에서 모두 21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 신고리 2~4호, 신월성 1~2호, 신울진 1~2호 등 7기는 현재 건설 중이다. 우리나라 원전은 원전 바로 밑에서 일어나는 진도 6.5의 지진에서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