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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진행 중인 해군기지 건설 공사. 바다 위 보이는 섬이 연산호 군락으로 천연보존지역인 범섬이다.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진행 중인 해군기지 건설 공사. 바다 위 보이는 섬이 연산호 군락으로 천연보존지역인 범섬이다. ⓒ 최지용

제주가 수년째 해군기지 문제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평론가 양윤모씨가 해군기지 공사 강행을 막기 위해 크레인 차 밑으로 들어가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구속되었고 그 후 강정마을 주민들이 또 다시 공사 강행을 몸으로 막다 부상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해군기지 문제는 전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제주 사회를 끝없는 갈등과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해군기지 문제가 풀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해군기지 건설 자체가 정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해군기지 건설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첫째, 국가안보상 반드시 필요해야 하고, 둘째, 적정한 곳을 입지로 선정해야 하며, 셋째, 선정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넷째, 법과 절차를 지켜야 하며, 다섯째, 평화의 섬과 양립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강행되는 해군기지 건설은 그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첫째, 국가안보상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면, 해군의 군사정책은 크게 대양해군 정책과 연안해군 정책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양해군 정책은 해상교통로 보호와 원양작전능력 향상을 목표로 하고 연안해군 정책은 대잠수함 작전과 연안에서의 북한 도발 격퇴에 필요한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한다.

 

주지하다시피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은 대양해군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국책사업이다. 그런데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연안방어능력 확충에 주력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대양해군 정책은 뒷전으로 밀리고 연안해군 정책이 강조되고 있다. 그 결과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국가안보의 필요성이 현저히 감소되었다. 이제는 국가안보 보다는 해군의 조직 확대를 위해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셈이다.

 

둘째, 입지 선정의 적정성에 대해 살펴보면, 해군기지 예정지인 강정마을 해안가는 애당초 해군기지 후보군에도 없던 곳이다. 그럼에도 뜬금없이 해군기지 후보지로 선정되었다. 또한 선정의 주체가 해군기지 건설사업의 당사자인 해군이나 정부가 아니라 도지사다. 무엇 때문에 도지사가 앞장서서 선정을 했을까.

 

더군다나 강정마을 앞바다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받을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곳이다. 나아가 제주 올레코스 중 가장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는 올레 7코스가 지나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그런 곳을 매립하여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발상이 가능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셋째, 선정과정의 민주성 여부에 대해 살펴보면, 해군기지 예정지인 강정해안가의 선정과정은 누가 보더라도 공작의 냄새가 짙게 배어난다. 강정마을은 인구가 1900명 정도 되는데 2007년 4월 26일 불과 80여 명이 모인 마을임시총회에서 만장일치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결의가 이루어졌고, 도지사는 여론조사를 거쳐 주민 다수가 찬성한다는 이유로 2007년 5월 14일 해군기지 강정동 유치결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2007년 8월 20일 강정마을 주민투표에서 총 725명이 투표하여 680표가 반대했다. 투표자의 94%가 반대할 정도로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이처럼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임에도 어떻게 소수만이 모여 만장일치로 유치결의를 하고 여론조사 결과는 주민 다수의 찬성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여하튼 해군은 강정마을 주민들이 유치를 원했으므로 그렇게 결정했다고 강변을 하며 해군기지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넷째, 법과 절차의 준수에 대해 살펴보면, 강정마을 해안가는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는 이유로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절대보전지역은 제주도 총 면적의 약 10%를 차지하며 제주의 자연환경보전체계의 근간을 이룬다. 더군다나 제주는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을 자랑하고 세계7대 경관에 도전할 정도로 뛰어난 자연환경을 간직한 곳이다.

 

자연환경이야말로 그 누구도 부인 못할 제주의 보물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책사업인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이유로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강정해안가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해 버렸다. 제주의 자연환경보전체계의 근간을 흔들어버린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처사를 납득하겠는가. 그러나 법원은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주민들은 소송할 자격이 없다고 하며 위법성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각하판결을 했다. 절대보전지역해제처분에 대해 면죄부를 준 셈이다.

 

다섯째, 평화의 섬과 양립가능성에 대해 살펴보면, 제주는 국가권력의 잘못으로 수많은 도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4·3의 비극이 있는 곳이다. 그런 비극을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해 2005년 1월 27일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평화의 섬은 제주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일방적으로 강행함으로써 제주도는 갈등의 섬으로 전락했고 강정마을공동체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났다. 강정마을회의 표현대로 해군기지 문제는 이제 제2의 4·3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처럼 폭력적이고 반 평화적인 방법으로 들어오는 해군기지가 어떻게 평화의 섬과 양립할 수가 있겠는가.

 

위와 같은 점들을 종합하여 보면 해군기지 건설은 총체적으로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어 문제투성이다. 그러기에 강정주민들은 해군기지 건설은 제도적 폭력이자 공권력의 횡포에 불과하다고 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주말 강정마을 해안가를 둘러보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보다 보니 가슴이 저미듯 아파오며 자태를 뽐내던 구럼비 바위들이, 그리고 멸종위기종인 붉은발 말똥 게를 비롯하여 수많은 생물 군상들이 필자를 보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구속된 양윤모씨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지자 1년 전 제주로 내려와 강정마을 해안가에 천막을 쳐 놓고 거기서 계속 생활했다고 한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강정마을 해안가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았을 것이고 수많은 바위들과 생물 군상들의 아우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가 크레인 차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해군기지#제주#양윤모#강정#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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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헌법가치가 온전히 구현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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