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권일 해군기지반대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이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트럭을 막고 있다.
고권일 해군기지반대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이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트럭을 막고 있다. ⓒ 최지용

"이 트럭 절대 못 들어갑니다. 움직이기만 해봐. 내가 사이렌 울려서 동네 사람들 다 나오게 할 테니까. 어서 차 뒤로 빼세요."

허름한 복장의 한 사내가 호통쳤다. 하얀 안전모를 쓴 서너 명의 사람들이 둘러쌌지만 그는 단호했다. 협박하듯 노려보는 그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문 순간, 정면에 서 있던 트럭 바퀴가 안달이 난 것처럼 움찔했다.

"아니 저 자식들이…."

그는 거침없이 담배를 집어던지고 달려갔다. 한쪽 다리를 범퍼에 걸치고 다른 한쪽은 트럭 아래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운전자가 엔진을 끌 때까지 대치는 계속됐다. 고권일 제주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대책위) 공동위원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수도 없이 그렇게 몸을 던졌다.

 12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제주도 강정마을 해변에 들어온 굴착기를 주민들이 막아서고 있다.
12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제주도 강정마을 해변에 들어온 굴착기를 주민들이 막아서고 있다. ⓒ 최지용

지난 12일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 강정마을 해안에는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려는 주민들의 사투가 이어졌다. 이날 새벽부터 굴착기 두 대가 해안가로 내려와 바위를 깼다고 한다. 우선 해안가에 설치된 대책위 천막에 있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몸으로 저지했다.

이후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는 상황이 계속됐다. 주민들까지 합세해 해안 밖으로 나가라고 요구했다. 공사는 중단됐지만 육중한 중장비는 꼼짝하지 않았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오후 2시께에도 양측의 힘 싸움은 팽팽했다.

그날 제주도의 바다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푸른 바다와 검은 바위가 선명한 대조를 이뤘고 파도는 잔잔했다. 그 위에 굴착기는 어울리지 않은 그림이었다. 마치 강 한복판에 고개를 처박고 모래를 퍼올리던 그 모습처럼.

주민들이 미처 막지 못한 사이 군데군데 굴착기가 깨부순 바위의 흔적들이 보였다. 모나게 잘려나간 자리에 하얀 바위 속살이 드러났다. 곳곳에 앞으로 깨야 할 곳을 표시한 붉은 원들이 그려져 있다. 이날 주민들이 막지 않았다면 산산이 부서졌을 바위들이다.

마을 주민들이 일상에 몰두해 있을 시간. 공사업체의 양동작전이 시작됐다. 해안에서 300m 가량 떨어진 공사장 입구에서 또 다른 시비가 붙었다. 둥그런 모양의 철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이 연달아 현장으로 들어왔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드는 틀이었다.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굴착기 옆에 주민 두 명만 남고 나머지는 입구로 향했다. 그래 봤자 네 명이다.

고권일 위원장이 몸을 던지면서 차량의 진입을 막기 전까지 시공사인 삼성물산 관계자들과 주민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고 위원장이 잠시 제주시에 나가 있던 와중이다. 고성이 오가다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자칫하다가는 누군가 다칠 수도 있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극도로 흥분한 한 공사 관계자는 "다 죽이겠다"며 날카로운 연장을 꺼내 들기도 했다. 경찰이 왔지만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지정한 '절대보존지역' 해지 논란

 강정마을 해안가 바위. 공사 시행을 위한 표시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강정마을 해안가 바위. 공사 시행을 위한 표시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 최지용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시킨 고 위원장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강정마을 앞바다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발가벗고 뛰놀던 곳"이라며 "제주도가 우리나라의 보물이라면 강정마을은 제주도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까지 이곳에서 나온 그는 서울에서 살다가 지난 2008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해군기지 문제로 마을이 한참 시끄러울 때다. 그는 "처음에는 그냥 지켜만 봤는데 보다 보니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반대운동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강정마을은 '보석'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곳이다. 세계적 희귀종과 멸종위기종 동식물이 다수 발견돼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특히 강정마을 앞바다에 위치한 범섬은 연산호 군락으로 문화재청이 지정한 문화재보호구역(천연기념물421호 및 442호), 해양수산부(현 국토해양부)가 지정한 '생태보전지역'이다.

비공식 부분에서도 이름이 높다. 강정마을이 포함된 제주 올레 7코스는 올레꾼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풍광으로 각광받는다. 이날도 한시간 가량 있는 동안 50~60명의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일 강정'이란 말도 있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논농사가 가능할 정도로 흙이 좋고 물이 맑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때는 도에서 지정한 '절대보전지역'이기도 했다. 게다가 1등급이었다. 2009년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도의회에서 공사 진행을 위해 해제시키기 전까지.

경관이 뛰어나고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에 지정하는 절대보전지역은 제주도 전체면적에 10% 정도다. '제주특별자치도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상 절대보전지역인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설 수 없게 돼 있었다. 조례개정안은 야당의원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에 의해 사실상 '날치기' 통과됐다.

이 같은 결정은 최근 1년 3개월여 만에 다시 뒤집어졌다. 의회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이 당시 조례개정안 통과 과정에 문제를 지적하며 지난 1월 '절대보전지역 변경·해제에 대한 취소 결의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강정마을 공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우근민 도지사가 의회에 재의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우 지사는 지난해 당선인 시절 "해군기지 착공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태도를 바꾼 상태다.

대책위 "반대와 찬성 8대 2 정도" - 해군 "찬성 쪽으로 대세 넘어와"

 강정마을을 지나가는 올레꾼들이 남긴 글. 주민들이 반대 농성 중인 천막에 걸려 있다.
강정마을을 지나가는 올레꾼들이 남긴 글. 주민들이 반대 농성 중인 천막에 걸려 있다. ⓒ 최지용

고 위원장은 도의회의 결정도 문제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마을 주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초기에 해군기지 건설에 야합한 일부 주민이 잘못된 절차로 유치를 결정해 버렸다"라며 "명백히 향약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주민 동의 절차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제주해군기지 유치를 위한 주민들의 의사결정은 지난 2007년 4월 26일 마을 총회에서 이뤄졌다. 1900여 명이 되는 마을 주민 가운데 단 87명이 참석했다. 마을 내 일부 자생단체 대표들이 주축이었다. 애초부터 찬성하는 사람들만 모인 이날 총회는 투표 없이 참석자들의 박수로 가결됐다. 총회는 단 사흘만 공지됐다. 마을 규정에는 1주일 동안 하게 돼 있다.

고 위원장은 "마을에 콘도를 건설할 때도 8번이나 총회를 열어서 결정했는데, 해군기지는 주민투표도 없이 결정됐다"며 "당시 총회는 규정상 120명 이상 모여야 성사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같은 해 8월, 마을회는 자체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720명이 투표에 참가해 680명이 반대했고 36명이 찬성했다. 반대의견이 94%를 넘었다.

그 후 마을은 조용할 틈이 없었다. 공사를 강행하려는 해군과 업체는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회유했고 정부도 토지강제수용으로 압박했다. 마을의 여론은 갈라지기 시작했고 3년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주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하며 '중립'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제주도 해군기지 왜? 
국방부가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립을 처음 추진한 것은 1993년이다.  '1997~2001 국방중기계획'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반영됐다. 처음에는 서귀포시 화순항이 물망에 올랐으나 반대 여론이 높아져 지지부진해졌다.

사업은 2006년 방위사업청에서 해군전략기지 건설 강행방침이 발표되고 당시 김태환 도지사가 해군기지 실무팀을 구성하면서 재개됐다. 그해 9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가 선정됐지만 역시 마을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렇게 부지 선정이 난항을 겪는 사이 2007년 강정마을이 유치를 신청하게 된 것이다.

해군은 남방해역 방위를 위해 유사시 기동전단을 배치해 운영할 수 있는 유리한 지점임을 들어 기지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조직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필요한 기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건설되는 해군기지는 미 해군의 기지가 돼 중국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 된다. 사실상 제주기지가 수원·오산·평택·군산·광주로 연결되는 미국의 서해안 MD(미사일방어체제) 벨트의 일환이라는 지적이다.

현애자 민주노동당 제주도당 위원장은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이지스함, 전투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대형수송선으로 구성되는 전략기동함대를 한국해군 독자적으로 공해상에 파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한미동맹을 명분으로 한 미국과의 공동작전이 유일한 가능성인데, 문제는 이 경우 대상적국이 중국이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 위원장은 "아직도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훨씬 많다"며 "지금이라도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주관하는 투표를 실시해 주민들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여론은 8대 2 정도"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반대 여론과 관련, 공사를 주관하는 해군은 "마을 주민들의 의견 차이는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반응했다. 지난 14일 해군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찬성 의견도 있고 반대 의견도 있지만 그 부분은 마을 공동체의 문제이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면서도 "현재는 유치를 찬성하는 쪽으로 대세가 넘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 반대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외부에서 온 시민단체들로 (찬성여론이 많아져) 동력을 많이 상실했다"며 "우리도 다시 투표해서 결정하기를 바라지만 주민들의 중지가 모이지 않고 있다. 만약 투표하게 되면 찬성하시는 분들이 목소리를 잘 내지 않기 때문에 반대쪽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의회에서 '절대보존지구 해제 취소 결의안'이 통과된 것과 관련, 이 관계자는 "도지사가 재의결을 요구한 상태라서 아직은 효력이 없다"며 "그밖에 법적인 문제에서도 판결이 공사에 무리가 없게 나오고 있어, 공사중단가처분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한 사업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 4월 임시국회 회기 내 법안 통과시킬 계획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진행 중인 해군기지 건설 공사. 바다 위 보이는 섬이 연산호 군락으로 천연보존지역인 범섬이다.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진행 중인 해군기지 건설 공사. 바다 위 보이는 섬이 연산호 군락으로 천연보존지역인 범섬이다. ⓒ 최지용
최근 해군기지와 관련한 소송에서 주민들은 잇따라 패소했다. 지난 3월 법원은 주민들이 부산지방해양항만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공유수면매립 집행정지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효력 정지로 인해 신청인들에게 생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그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법원은 강정마을을 절대보전지구에서 해제한 당시 의회의 결정이 위법하다며 주민들이 청구한 절대보전지역변경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원고의 자격이 부적하다"며 취하했다. 또한 2009년 주민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한 '해군제주기지사업 실시계획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법원은 국방부의 손을 들어줬다.

해군 관계자는 "현재 공정률은 9% 정도다. 해군도 2014년까지 돼 있는 공사기간을 맞추지 않으면 예산을 집행할 수 없기 때문에 공사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며 "마을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공사기간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법적인 문제가 없으면 공사를 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해군기지주변지역 발전지원계획을 담은 제주특별법은 영리병원허용도입 법안과 맞물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지난 4·3항쟁 추모식 연찬회에서 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밝힌 것처럼, 정부는 여야의원들을 설득해 4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여전히 높고, 일부 야당과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있어 통과 여부는 사실상 불투명한 상태다. 강정마을회는 지난 11일 '서귀포시 강정마을회 대도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저희들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죽음을 각오하고 막아내고자 한다"며 "저희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공권력의 횡포에 불과한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반대하는 운동에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삼성물산과 강정마을 주민들 19일에도 충돌
해군기지 건설공사를 강행하는 공사업체와 이를 저지하려는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 등은 지난 19일에도 크게 충돌했다.

오전 9시40분경 삼성물산의 하청업체 직원들이 공사장 입구부터 해안까지 이르는 도로 개설을 작업을 위해 굴착기 두 대를 앞세우고 공사 현장으로 진입했다. 입구에는 지역주민과 시민단체가 설치한 돌무더기와 현수막이 있었지만 업체 측은 이를 강제로 철거했다.

주민들은 공사장 입구에 매일 집회신고를 내놓고 있었다. 공사관계자들은 "집회를 해도 공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계속 진입을 시도했고 주민들은 몸을 던져 이를 저지했다. 이 같은 충돌은 오후에도 계속 이어져 고권일 위원장이 포클레인 아래로 들어가 쇠사슬로 몸을 묶는 등 공사업체와 격렬하게 대치했다.

한편,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다 구속된 양윤모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은 제주교도소에서 14일째 옥중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천주교 제주도교구에 따르면 19일 양 전 회장을 면회한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는 "양 전 회장이 단식으로 체중이 10㎏ 이상 줄었고, 밤에 잠을 잘 못자는 등 많이 쇠약해졌다"며 "싸우는 방법이 단식만 있는 것은 아니니 건강을 생각해 달라"며 단식중단을 간접적으로 요청했다.

신구범 전 제주지사도 강정마을 해안에 설치된 천막농성장에서 지난18일부터 단식을 벌이고 있다. 신 전 지사는 "양 전 회장에게 같이 살아서 싸워나가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며 "그가 단식을 철회할 때까지 함께 단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절대보전지역까지 매립하며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오늘의 현실이 과연 적절한지 도민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도#강정마을#해군기지#서귀포#MD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