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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민이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한 시민이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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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보강 : 2일 오전 9시 40분]

# 3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장실

김옥주 부산저축은행 비상대책위원장은 한나라당 부산 국회의원들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김무성 원내대표와 김정훈 부산시당 위원장은 얼굴만 비추고 10분도 안 돼 자리를 떴다. 허태열 정무위원장과 이진복 의원은 "왜 (예금 보호 한도인) 5000만 원을 초과해 예금을 했느냐"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의원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비꼬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 4월 28일 부산 동래구 복천동 이진복 의원 사무실

피해자들이 몰려들었다. 한나라당 부산 국회의원 3명이 영업정지 직전 돈을 인출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는 터였다. 이진복 의원은 27일 <부산일보>에 "동명이인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피해자들은 "진상을 규명하고 제대로 된 피해자 보상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한나라당을 박살내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부산 민심이 심상치 않다. 지난 2월 영업정지를 당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았지만, 정부·여당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이 VIP 고객 특혜 인출을 도왔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피해자뿐 아니라 부산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부산을 찾았다. 

"열심히 산 엄마 돈 못 찾아주는 이 나라가 참 싫대요"

 황진애(가명·46)씨가 가지고 있는 2000만 원어치의 부산저축은행 후순위채권은 현재 휴지조각이다. 그는 "서민들 '나 몰라라' 하는 이명박 정부가 참 무섭다"고 했다.
 황진애(가명·46)씨가 가지고 있는 2000만 원어치의 부산저축은행 후순위채권은 현재 휴지조각이다. 그는 "서민들 '나 몰라라' 하는 이명박 정부가 참 무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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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애(가명·46)씨는 연제구 거제동에서 남편과 23㎡ 남짓한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딸린 단칸방에서 지낸다. 황씨는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가 내려진 이후, 식욕을 잃었다. 최근에는 한 끼도 먹지 않는 날이 많다. 툭 하면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 2000만 원짜리 부산저축은행 후순위채권이 휴지조각이 됐기 때문이다.

참 어렵게 모은 돈이었다. 고아인 황씨는 살면서 옷 한 벌 산 적 없다. 아파트와 절에서 얻어 입었다. 아이들 교복도 마찬가지다.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며 사고를 당해도 병원에 제때 못 갔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 걸린 남편 치료비 때문에 돈을 모으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들한테 사줬던 유일한 옷이 만 원짜리 트레이닝복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후순위채권은 부산저축은행 창구 직원의 권유로 보유하게 됐다. 3개월마다 이자를 주는 5년 만기 상품으로, 일반 예금보다 더 좋다고 설명했을 뿐이다. 아이들 학비로 고민하던 황씨를 위한 맞춤형 상품이라고도 했다. 직원은 후순위채권이 예금 보장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이 돈에는 황씨 가족의 미래가 걸려 있다. 지난해, 전교 1등하던 딸이 외고에 진학했다. 반액 장학금을 받지만, 학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자로 학비를 대신하고, 만기가 되면 딸의 대학 등록금으로 사용하려던 계획은 뒤틀렸다. 무엇보다 외교관이 꿈인 딸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얼마 전 딸과 같이 펑펑 울었어요. 딸이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엄마 돈을 찾아주지 못하는 이 나라가 참 싫대요. '엄마 인생 46년이 담긴 이 돈을 못 찾으면 엄마는 남은 인생 비관하며 살 텐데,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싶었는데, 이젠 이민가자면서…."

황씨는 "이명박 정부가 감세해서 서민 잘 살게 해준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정부로부터 혜택 받아본 적 없다"며 "적지만 세금 꼬박꼬박 내며 살고 있는 서민들 '나 몰라라'하는 이 정부가 참 무섭다"고 말했다.

올해 저축은행 영업정지로 인한 피해의 2/3, 부산에 집중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이 27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금융감독원 부산지원 앞에서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에서 불법 인출사태를 불러온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갖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이 27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금융감독원 부산지원 앞에서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에서 불법 인출사태를 불러온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갖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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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식 한나라당 의원이 예금보험공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영업정지가 내려진 8개 저축은행의 예금자는 모두 45만5964명으로, 이들이 보유한 예금액만 8조1576억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5000만 원 초과예금 2537억 원(3만7495명)과 후순위채권 1514억 원(3632명)은 현재 손실이 불가피하다.

부산 민심이 악화된 이유는 이 같은 피해가 부산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부실 저축은행의 5000만 원 초과 예금액 중 63.6%인 1614억 원이 부산·부산2·중앙부산 등 부산 지역 3개 저축은행 예금자의 돈이다. 부실 후순위채권의 경우, 전체의 69.4%인 1052억 원을 부산 지역 저축은행 고객들이 보유하고 있다.

이들 피해자가 주축이 된 비상대책위원회가 부산진구 부전동 금융감독원 부산지원 앞 등에서 매일 수백 명이 참석하는 집회를 열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저축은행 후순위채권 1000만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는 박희자(가명·65)씨 역시 생계유지를 포기한 채 매일 집회에 참석한다.

박씨는 "25년 동안 파출부 생활하면서 모은 돈이다, 저축은행 직원의 권유로 후순위채권을 샀다"며 "내게 1000만 원은 부자들 100억 원보다 더 큰 돈인데, 피눈물 나는 돈을 찾을 수 없다고 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말했다. 그는 "서민이 있어야 정부와 대통령이 있다, 아무런 대책 없는 대통령이 내 앞에 있으면 머리를 쥐어뜯을 것"이라고 했다.

장미정(가명·50)씨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노래방과 식당에서 시급 5000원 받으며 모은 3000만 원을 날리게 생겼다"며 "4대강 주변에 땅 있는 사람들은 앉아서 수억 원씩 돈을 챙겼다, 4대강 사업에 쓸 22조 원은 있고, 서민 도와줄 돈은 없느냐"고 했다. 그는 "돈 못 찾으면, 부탄가스 들고 청와대와 국회에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부산 민심 악화... "한나라당 찍은 내 손 부수고 싶다"

김옥주 위원장은 "한나라당은 부산저축은행 예금자 중 피해자가 얼마 안 된다고 무시하고 있지만, 예금자 전체, 더 나아가 부산 시민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5000만 원 이하 예금을 대상으로 예금보험공사 가지급금 신청을 받고 있는 부산 지역 저축은행 영업점에서는 분노하는 예금자와 시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 예금자는 "친서민 정부라면서 고통 받는 서민은 안중에도 없다, 선거 때마다 한나라당을 찍은 내 손을 뿌수고(부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 시민은 "전 재산 다 잃은 서민은 놔두고, 부자들 돈 미리 챙겨주도록 방기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미 부산에서 민심을 잃었다"고 했다.

손동호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동남권 신공항 거짓 공약에 이어 이번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에서 보여준 무능력과 부도덕함에 반한나라당 정서가 거세다"고 밝혔다.

김옥주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구제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내년 한나라당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2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국회의원들과 면담을 하고, 오후 1시에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집회를 연다. 피해자들은 피해자 구제 대책과 진상규명을 강하게 촉구할 예정이다.


#저축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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