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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세대들의 나홀로 식사는 흔히 목격되는 장면 중 하나다.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젊은 세대들의 나홀로 식사는 흔히 목격되는 장면 중 하나다.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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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이세요?"
"혼자 왔어요."

식당에서 모처럼 외식을 하는 날이면 으레 접하는 광경 중의 하나가 바로 '홀로' 식사를 하러 오는 '젊은 세대'를 보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식사를 홀로 해결하는 '나홀로 식사족'이 늘어나 청·장년층의 식문화를 바꾸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백지장'마저도 '맞들면 낫다'는 세계관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판국에 식사를 혼자 해결하러 오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식사는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사람 간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기능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 덕분에 '나홀로 식사족'은 사회의 통념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게다가 타인의 시선 역시 식사를 혼자 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강남역 주변에서 만난 김기혁(25)씨는 "지금은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지만 옛날에는 '저 사람은 얼마나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저럴까'라고 생각한 적 있다"고 말했다.

 나홀로 식사족의 활동영역은 단순히 식당뿐만이 아니다.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 여러 장소에서 나홀로 식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나홀로 식사족의 활동영역은 단순히 식당뿐만이 아니다.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 여러 장소에서 나홀로 식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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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회적 통념과 타인의 시선들 속에서도 자신만의 식문화를 영위하는 '나홀로 식사족'은 증가 추세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대입구역에서 주먹밥 가게를 운영하는 박우종(44)씨는 "출·퇴근 시간에 주먹밥을 사 가는 20~30대 직장인들이 우리 가게의 주 고객"이라며 "이들의 수요가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 속 '나홀로 식사족'은 어떤 모습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을까.

"밥 먹을 때까지 위계질서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강사인 최보혜(27, 가명)씨. 자기 관리에 누구보다 철저한 잣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녀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인다.

그녀는 고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한다. 일주일에 이틀은 대학원 수업, 사흘은 학원 강의에 나가야 한다. 결국 이동 중에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떠드는 일은 얼마나 에너지 소비가 큰가. 덕분에 허기를 자주 느끼는 그녀. 그녀에게 저녁식사는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소'나 다름없다.

오늘은 학원에 강의를 하러 나가던 길. 나른한 오후, 지하철을 타고 학원으로 가는 길은 '제2의 출근길'이다. 그녀는 지친 몸을 출입구에 기대며 저녁식사 메뉴를 고민한다.

'아, 오랜만에 규동을 먹고 싶네. 쇠고기 먹어본 지도 오래됐고, 뭔가 담백한 음식을 먹고 싶기도 하고….'

그녀는 나홀로 식사의 최대 장점을 '메뉴 선택의 자율성 보장'으로 꼽는다. 그녀는 주변 지인들에게 "나홀로 식사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만족도를 높여주는 메뉴 선택이 가능해서 좋아"라고 늘 상 말해왔다.

그녀는 학원 주변 가까운 일본음식 가게에 발을 들여 놓는다.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식사 소요 시간을 점쳐보는 그녀. 시간이 조금 넉넉히 남았음을 인지하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가끔은 그래. 사회생활은 동료나 상사와의 관계 속에 놓여 있잖아.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이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밥 먹을 때까지 그 위계질서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그녀가 곰곰 생각하던 중 규동이 나온다. 규동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음식이 나오기 전 아껴뒀던 맑은 우동국물은 그녀의 식욕을 자극한다. 규동을 반 그릇쯤 비웠을까. 가게 직원이 다가와 그녀에게 친절하게 묻는다.

 더 필요한 것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직원의 모습. 장소는 강남역 주변의 한 돈부리집.
 더 필요한 것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직원의 모습. 장소는 강남역 주변의 한 돈부리집.
ⓒ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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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식사는 입맛에 맞으세요?"
"예. 맛있네요. 소스 좀 더 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저기요, 잠시만요. 저 맥주 한 잔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잠시 생각한다. 아무리 수업 전이긴 하지만, 하루 고되게 일한 자신에게 잠깐의 휴식이라는 상을 주고 싶었던 터였다. 얼마 후 맥주가 나오고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켠다. 규동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맥주는 조금 남긴다. 첫 모금의 시원함에 쌓였던 갈증이 싹 가신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 아직도 수업까지는 30분가량 남았다. 주변을 산책하다가 학원에 들어갈 요량이다. 잠깐 동안의 시간, 이는 동료 강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서 식사를 했다면 누리지 못할 짧은 여유다. 시간이 되고 수업 준비를 위해 약간 일찍 학원으로 향하는 그녀. 하루에 두 번 하는 출근이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아침처럼 가볍다.

"주위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 쿨해지세요"
[나홀로식사플랜] 기자가 묻고 나홀로 식사족이 답하다

최보혜씨의 사례만 봐도 나홀로 식사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마주치는 예상치 못한 시선 때문에 나홀로 식사를 스스로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요청하지 않은 동정·연민의 시선'이 바로 그것. 강남역 주변에서 취재를 진행하던 도중, 홀로 식사를 하고 나오는 '나홀로 식사족' 이신혜(25)씨를 만나 기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녀에게 어떻게 '나홀로 식사족'의 삶을 영위하는지 물어봤다.

- 급작스러운 인터뷰 제안에 응해줘서 고맙다. 그나저나, 혼자 식사를 자주 하는 편인가.
"그렇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동선이 넓다 보니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혼자 다니니까 혼자 먹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홀로 식사족이 아무리 쿨하다 한들, 여럿이서 먹어야 제맛인 음식을 일부러 골라 먹지는 않는다
 나홀로 식사족이 아무리 쿨하다 한들, 여럿이서 먹어야 제맛인 음식을 일부러 골라 먹지는 않는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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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본인만의 식당 선택 기준이 있을 것 같다.
"물론이다. 그런 기준은 개인마다 차이가 크긴 하지만, 대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피한다. 하지만 요새는 사람이 많은 식당도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한 좌석이 마련돼 있는 곳이 많아졌다. 이런 곳은 나름 괜찮다.

또한 메뉴 선택 역시 중요하다. '나홀로 식사족'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 절약을 위해 탕 종류나 돈부리 같은 '한 그릇 음식'을 먹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 자신 만의 기준이 명확한 것 같다. 그럼에도 나홀로 식사의 단점을 느낄 때도 있나.
"그렇다. 하루는 스파게티를 좋아해 사 먹으러 갔으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먹으면 좋은 음식을 혼자 먹으니 너무 빨리 먹어버렸다. 이는 어찌 보면 '나홀로 식사'의 단점이기도 하다.

때론 쌍쌍이 온 손님들의 동정 어린 시선에 난감함을 느끼기도 한다. 때문에 학교에 다닐 때에는 일부러 학교 주변에 있는 식당은 혼자 가지 않았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나 스스로의 의식 때문이었다."

 "동정이요? 가련이요? 그렇게 친절하실 필요 없어요. 우린 그냥 쿨하게 먹는겁니다!"
 "동정이요? 가련이요? 그렇게 친절하실 필요 없어요. 우린 그냥 쿨하게 먹는겁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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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느껴지는 난감함을 타개하는 본인만의 방법을 공개해 달라.
"비록 나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음악을 듣는다거나 신문이나 책을 읽는다든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결국 밥을 먹는 건 나 자신이다. 밥 먹는데 필요 없는 동정이나 연민을 날려주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배고프니까 먹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스스로 쿨해질 필요가 있다."

- 런치메이트 증후군이라는 증세를 아는가.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면 아예 굶어버리거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의 증세란다. 이런 증세를 가진 이들에게 '나홀로 식사족'으로서 조언을 한마디 해준다면.
"그런 증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밖에 없는 것 같다. '어느 누구도 당신이 혼자 밥 먹는 것을 신경 쓰지 않으니 편하게 식사하라'가 바로 그것. 솔직히 말해서 여럿이 오건 혼자 오건 간에 결국 하는 건 식사고 먹는 건 밥이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나홀로 식사족'의 궤적을 쫓아 봤다. 사실 나홀로 식사는 기성세대들의 삶 속에서도 응당 존재해 왔으나, 최근 '나홀로 식사족'의 특징은 연령대가 젊어지고, 식사의 공간이 주로 식당으로 한정됐다는 것이다.

"'나홀로 식사족'의 탄생은 사회문화적 변화의 한 부분"

그렇다면 과연 '나홀로 식사족'의 식문화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사회생활 5년차 김영경(28)씨는 "아무리 특정 세대의 성향이긴 하지만 결국 그들이 속한 곳은 사회"라며 "식사가 사회생활 속 대인관계의 질적 발전이나 인맥 형성 기능 같은 긍정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다소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나 홀로 떠나는 여행, 고된 현대사회 속에서의 자기치유 방법으로도 해석돼야
 나 홀로 떠나는 여행, 고된 현대사회 속에서의 자기치유 방법으로도 해석돼야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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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나홀로 식사족'의 존재에 긍정의 손짓을 보내는 의견도 존재한다.

건국대학교에서 문학치료를 강의하고 있는 강미정(41) 선생은 "홀로 식사를 하는 행위는 '홀로 떠나는 여행'으로서 고된 현대 사회 속에서 효과적인 자기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유연성 있는 관점으로 이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나홀로 식사에 익숙하다는 구현경(35)씨는 "이 현상의 본질은 삶의 양식이 점차적으로 개인주의화 돼 간다는 것"이라며 "'나홀로 식사족'의 탄생은 사회문화적 변화의 한 부분"이라고 해석했다. 자신의 욕구에 좀 더 충실하려는 '나홀로 식사족'의 식문화. 단순히 '가련해 보이는 식문화'로 치부하기에는 고찰해봐야 할 것이 더 많지 않을까.


#나홀로 식사족#시선#식사#쿨#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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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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