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섰다. 그냥 걷고 싶을 뿐이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요즘, 폐지수집하시는 분들이 많이 보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더해 고령화, 여성화되었음을 본다. 할머니는 힘이 부쳐 이보다 더 큰 것은 끌 수도 없다고 했다.
어릴적 뛰어놀던 그곳을 가보고 싶었다. 공기 맑고 살기 좋은 도시 1위를 했다는 송파구에 속해있지만, 십년 이상 재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해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거여동재개발지구가 그곳이다.
집에서 그곳으로 가는 동안 만난 리어카들이다. 오르막 길을 넘어가는 아저씨는 자기 동네에서는 차마 폐지를 줍지 못해서 다른 동네로 간다고 했다.
한번 끌고 나가면 가득 채워 고물상까지 들렀다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안 되어 몇 번을 나가야 겨우 고물상에 갈 수 있을 만큼이 모아진다고 한다. 그렇게 한 리어카 채워야 돈 만원이란다.
계산을 해봤다. 폐지를 모아 한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족히 2년은 걸려야할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부모노릇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힘들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 조차도 편가르기하는 몰지각한 이들이 있다.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좌파, 빨갱이란다. 그 사람들은 지구별에 사는 이들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이들만 따로 모아 특별공화국이라도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
애써 찾아다니지 않아도, 줄줄이 보이는 리어카. 리어카를 끌고 걸어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하신다.
초등학교때 함께 조간신문을 돌리던 친구의 집 앞을 서성였다. 나는 한 달도 하지 못하고 나자빠졌고, 그 친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곧 유리공장으로 취업을 해서 노동자가 되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까? 나를 기억하기는 할까?
녹슬고 구멍난 자전거도 한 때는 쌩쌩 달렸던 적이 있을 터이다. 그런 날이 다시 오길, 과거에 잘 나갔던 추억을 먹고 사는 이들의 삶도 다시 한번 꽃 피는 날이 오길.
카메라를 들고 좁은 골목길을 서성이니 그곳에 살고 있는 분의 심기가 불편한가보다.
"어릴적 제 고향이에요.""그래요? 저거(연탄보일러) 사기 전에 재개발되면 좋겠어."
골목을 나왔다. 심호흡을 하려고 하늘을 바라보니 커다란 십자가탑이 들어온다. 지금은 다니지 않는 나의 고향교회다. 그곳에서 뭐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아는 여학생 하나는 술에 취해 밤에 저 담을 넘다가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당했었다. 섬뜩하다. 이젠 저런 풍경도 볼 수 없을 터이다.
세상엔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세상은 왜 그렇게 풍요롭다못해 넘쳐나는 것 같을까? 서너시간을 걷고 돌아왔어도 일용할 양식 이상의 것을 먹어서 더부룩한 배가 부끄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