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무림제국의 탄생 이전의 카오스(혼돈)와 제국의 탄생
현실은 냉혹했다. 니뽄훈또시빤쓰국의 총리맹부령 출신으로 세계 제2차 무림혈전에서 '하일히틀러오른손진격권'으로 무장한 히틀러콧수염공이 이끄는 나치독일무림제국과의 무림군사동맹을 지지하지 않아, 니뽄훈또시빤쓰국 통청장왕제가 이끄는 무림군사권의 종용으로 사임한 자가 조선무림국을 암흑으로 만든 니뽄하청방(조선총독부)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짱(阿部信行 : 일명 아부천리방)'이었다.
총리맹부령 사임 후 절치부심하다가 조선무림왕국을 강제로 삼킨 악마권법의 소유자인 명치급소랑[니뽄훈또시빤쓰국의 개항자 메이지천황?(NO, 그냥 왕)]의 손자인 히로히토짱의 '유인(裕仁)비결'을 전수받은 덕분에 점령한 조선무림국의 마지막 총독장으로 부임한 아부천리방은 '악질민족말살권'과 '조선쇳덩이거덜권' 그리고 '조선어패댕이권'을 마구마구 사용, 위대한 조선 무림의 혼을 짓이긴 아주 저질의 니뽄훈또시빤쓰국의 대장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미연합무림대국의 B-29비행편대공이 떨어뜨린 가공할 위력의 '원자폭탄권'을 사용한 두 번에 걸친 니뽄훈또시빤쓰국 본토(히로시마, 나가사끼) 소멸작전으로 인하여 히로히토짱의 '유인비결'도 무의미하게 세계 무림혈전에서의 항복이라는 절대절명의 방송을 듣고 기절하고도 초풍하기 직전의 일이다.
패전을 예감하고 무림자객답게 할복권을 제대로 사용하여, 현대화되어 점점 줄어가는 니뽄국 특유의 '자결의식권'을 멋들어지게 지켜내려던 그는, 자신을 제외한 니뽄훈또시들의 나머지 병력을 지켜 줄 조선무림의 맹주를 찾았으니, 그가 바로 군웅할거하던 초대 조선무림의 대빵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몽양줄타기권'의 종결자 운형공산노자(共産老子)다.
이미 니뽄하청방의 몰락을 예언하고 자신과 더불어 노숙걸식하며 동락을 같이 한 동지비무자들과 함께 '건국동맹권'을 발동하고 있던 운형공산노자는 아베짱의 '애교미팅권'을 제재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아베짱은 케안습의 표정으로 니뽄훈또시 특유의 90도 '정중인사권'을 활용, 운형공산노자를 맞는다.
"공산노자, 당신은 훌륭한 무림 맹주이시무니다. 젤라(제발) 이노무시키(나)와 저노무시키(쟤)들의 안죤을 지켜주신다면 이 아베짱 노자께 조선을 드리겠스므니다."
운형공산노자는 노숙하고 노련했다. 산전, 수전에 공중전(?)까지 치루고 무림맹주들의 영광된 휘호인 노자 직위를 거뜬하게 획득한 산정 거성이었다.
"아베짱. 뉘들 니뽄훈또시빤쓰 나라는 거덜 났고, 당신도 곧 죽을지 몰라. 어케 해야 하는지 알지?"
"하이! 잘 알고 있스므니다. 조선을 냉큼 가지시고, 우리만 잘 내비 두신다면 아리가또오 고자이마시다네. 하이, 하이."
'몽양줄타기권'으로 일제강점 무림 조선국 내에서 거칠고 긴 암흑의 시기를 내공으로 버틴 운형공산노자였다. 그는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짱이 '무조건항복권'을 발동하자마자 전국의 무인들을 모아놓고 당당히 외쳤다.
"이제부터 조선무림국은 이 공산노자의 세상이야. 자 모두 내가 잘 차려 놓은 밥상들이나 맛나게 먹고, 조선무림제국의 영화를 다시 찾을 건국준비도방을 쨉싸게 차리자우야."
리북 함경도가 고향인 함양 무림의 맹주는 걸쭉한 함경도 말로 도방 맹주의 취임사를 대신했다. 이미 해방 전부터 신흥무관도방에, 임시 의정청에, 공산주의 동맹령에다 무림신문사 사장까지 역임한 그의 이력에 무림대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러나 '건국준비도방'은 거기까지였다. 연이어 결성한 '조선인민공화방'과 '민주주의민족전선권'의 섣부른 사용은 오히려 화만 불러, 그는 결국 '우익결사권'으로 무장한 지근암약창(한지근) 처단권의 첫 희생자가 되었으니, 어두운 시대에서도 겹겹이 쌓아올려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그의 공력이 채 시험대의 발판도 디디어보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객사는 현우권총자(한현우)의 딱콩권법에 무너진 '고하권'의 도반 진우야신자(송진우)의 뒤를 이어 한독당우방 출신들의 행위로 의심되는 세 건의 암살권[진우야신자, 몽양공산노자, 덕수교령침방(장덕수)]으로 이어지는 조선 암살 무림의 어두운 시절 슬픈 노래였다.
"조선무림국의 자치적인 황제 시대의 도래를 위하여"라는 캐치 플레이스를 내걸고 점령한 미연합무림대국과 쏘련공산무국의 '신탁통치권'으로 나라는 양분됐다. 성수고려통감(김성수), 덕수교령침방(장덕수) 등의 '한민당처방'을 위시한 승만박사공의 '국민촉성맹방', 중화인민무림국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임시대한무림제국의 기틀을 닦느라 후리자케트(점퍼) 하나로 수십 년을 연명한 사람들이 임시통정 부대다.
이들 일제 강점기 무림의 비밀결사들이 개인 자격으로 하나둘 돌아와 '백범비결록'과 '창수들배지기권'의 김구천하도랑을 중심으로 도방을 결성한 '한독당우방' 또한 '절대반탁목숨권'을 초개와 같이 던졌다.
그러나 운형공산노자와 규식동자(김규식)의 '중도좌파권자'들과 '조선공산도방'의 헌영식자우환공(박헌영)은 무림국을 양분한 '38도선가시철망권'으로 인한 쏘련공산무국의 지시로 '찬탁환영권'을 목에 두르고 나와 좌우익, 두 세력의 수련자들 간의 피의 혈전은 나날이 계속됐다.
'38도선가시철망권'의 최대 수혜자는, 북조선인민공화공방의 맹주로 짜짠하고 등장한 자와 미연합무림대국의 박사공이었다. 쏘련공산무국에서 길러서 데려온 로마넨코코생자의 사생아로 '독립활로권'과 '쏘련장교특권'을 적절히 활용한 36세의 뚱보공자 일성광분자와 미연합무림대국이 인정하는 '외교출량권'과 '원조박사권'의 선두주자인 70이 넘은 고령도반 승만박사공.
선천적인 아부기질권의 애용자인 니뽄훈또시빤쓰국의 정신적 지주가 된 맥아더총령의 신임을 등에 진 승만박사공은 북조선공산무림국 '절대반대권'을 사용했다.
그후 타고난 공력을 바탕으로 완성한 한반도 남한만의 '단독무림정권구축론'은 1946년 정읍비무대회부터 서서히 탄력을 받더니, 급기야는 반대세력들인 좌익사수권 도방 수호자들을 미군정신탁청이 '신탁맹호권'으로 가차 없이 제압하고 있는 틈을 타 38선 이남만의 대한무림제국 선포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같은 시기 일성광분자를 필두로 한 쏘련공산무국이 한반도 이북에 '공산주의권'으로 강력한 펀치드링크를 날렸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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