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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형 얼숲두레 촌장
이인형 얼숲두레 촌장 ⓒ 이인형
작년 9월, 그는 뒤늦게 소셜네트워크인 페이스북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9월 말 배춧값 폭등 사태에 대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폭풍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의 반응에 힘입어 계속 후속 글을 올렸다. 10월 초에는 '배추 값 폭등에 대한 대책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폭락 사태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올해 봄에 현실이 되었다.

"한겨레 칼럼 쓰는 이정우 교수보다 훨씬 낫다."
"페북 논객이 떴다."

글을 올릴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는 배춧값 문제의 근본 원인은 물론, 정부 대책의 문제점, 언론 보도의 문제점까지 지적했다. 정책 당국은 수입이라는 극약 처방만 내놓는다. 하지만 수입 배추는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미 중국산 김치가 들어와서 싼 시장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을 안정시키기는커녕 폭락만 부추길 거라는 점을 지적했다.

지나치게 선정성만 강조하는 언론의 과잉 보도가 배춧값 폭등을 더욱 부추겼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배춧값 폭등은 심리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말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해보자."

소셜네크워크의 힘은 놀라웠다. 10월 16일, 그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그룹'을 만들고 간판을 내걸었다. 페이스북 내 댓글과 포스팅 수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룹 '얼숲 두레'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난 4월 25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임시 사무실에서 이인형 얼숲두레 촌장(50)을 만났다.

"'두레'는 서울대 농대 풍물패 '두레'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풍물패 두레가 올해 40주년이 되는데, 제가 12기거든요."

두레는 농번기 협력을 위한 농촌 사회의 전통 조직이다. 얼숲두레라는 이름에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 만남, 도농교류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설립자의 뜻이 담겨 있다.

페이스북 안에 열린 도농 교류의 장

"사람들이 모인 김에 도농교류를 넘어서 문화적인 사업도 같이 하고, 앞으로 생산자 소비자 직거래 시스템으로 계속 발전시켜보려는 생각이 있어요. '이야기마당'이라는 이름으로 회원 간 만남의 행사를 계속 추진했죠. 처음엔 서울에서 했고, 그 다음엔 양평, 지리산, 앞으로 제주도, 강진 등 회원들이 있고 사람이 모일만한 곳이면 어디든 갈 겁니다.

회원이 3천 명을 넘었을 때 서울 여성프라자에서 첫 이야기마당을 열었고요, 이어서 자청한 회원들에 의해 양평에서 이야기마당을 열었는데 스물세 명이 왔어요. 하얀 술 막걸리 만들기 체험, 유정란 생산 농가의 이야기, 그리고 밤새 얼숲두레의 발전 방향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지방을 도는 이유는 얼숲두레 회원들과 현지 농가의 교류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지요."

이야기마당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모여서 '우리가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토론한다. 직거래 시 포장재 문제는 어떻게 할까 같은 구체적인 문제들도 주제가 된다. 오프라인 모임이 많다는 것, 관심사가 될 만한 이슈가 끊이지 않고 제기된다는 것이 얼숲두레가 '잘나가는' 비결이다.

작년 말에는 송년잔치를 했고, 100일이 됐을 때도 기념잔치를 벌였다. 그때마다 얼숲두레에 애정을 가지고 달려오는 회원들이 적지 않다. 일산에서는 지역 회원들끼리 모여 '번개'를 갖는다. 현재 페이스북 내 그룹들 중 포스팅 수, 댓글 수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얼숲두레는 곧 5천 회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는 '소 나눔 행사'라는 것을 진행하고 있어요. 회원 수가 천 명이 됐을 때 소를 한 마리 잡아서 나눠먹었어요. 회원들이 원하는 부위를 원하는 만큼 주문하면, 저렴한 값에 고기를 배송했죠. 3천 명 돌파 때도 한 마리를 잡았고요.

이제 회원 수 5천 명 돌파를 앞두고 세 번째 소 나눔 행사를 진행 중입니다(인터뷰 도중 이 촌장에게 쇠고기 배송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70~80명이 참여하면 소 한 마리를 나눠먹어요. 얼숲두레를 널리 알리고 재미있게 만드는 일이죠."

소 나눔 행사는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할 생각이다. 매달 한 번, 수요가 늘면 매주 한 번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꾸러미'라고 해서 야채 등을 같이 포장 배달할 계획도 갖고 있다. 배송비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옛날에는 큰 잔치를 벌일 때 소를 잡았죠. 소 나눔 행사는 옛날 가족 공동체를 부활시키는 문화적 의미도 크다고 봐요. 얼숲두레는 단순한 직거래 단체는 아니에요. 이야기 마당도 1박 2일 행사로 만들어서 도농 간 문화 교류의 장으로 발전시킬 거고요. 찾아가는 공연 같은 행사도 기획할 생각이에요."

 지난 3월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얼숲두레 '이야기 마당'
지난 3월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얼숲두레 '이야기 마당' ⓒ 이인형

북적북적, 소 잡아 잔치 벌이고 문화 교류하고

자칭 '딴따라 출신'인 이 촌장은 특히 문화 교류 활동에 관심이 많다. 실제로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이해가 간다. 서울대 농대 풍물패 두레 활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이후 의대 풍물패를 만들 때 초청 강사로 부름을 받아 활동했다. 전국 대학교 동아리 출신들이 모여 만든 '애오개소극장' 등 민중문화운동에도 관여했고, 이후 경영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영화 사업에 손을 댔다. 지금은 영화 <화려한 휴가> 제작사인 (주)기획시대 대표로 있다.

"우리 회원들 중에는 실제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생산자도 있고, 도시 소비자도 있어요. 이 공간 안에서 자연스레 어울리면서 자기가 생산한 유정란이나 곶감을 올리면 필요한 사람들이 사는 거죠. 팔고픈 사람은 팔고, 사고픈 사람은 사고 그래요.

어떤 이들은 품질에 대한 검증 시스템을 만들자고 하지만, 품질 관리하는 MD가 생기면 생협이나 다를 것이 없잖아요. 생협은 불가피하게 MD에게 권력이 부여되죠. 저는 생산자의 스토리와 삶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믿고 먹어보고, 좋으면 추천하고, 입소문이 퍼지면 소비자가 인정하는 그런 체제로 갔으면 해요."

최근에는 <페이스북 길라잡이> 등 페이스북과 관련한 신간 서적 두 군데에 얼숲두레를 소개하는 내용이 담겼다. 언론의 관심도 뜨겁다. <한겨레>, <중부매일> 등 일간지와 월간 <샘터>에 얼숲두레 기사가 실렸고, <울산노동뉴스>에는 "부자 농부의 환상에서 벗어나자"라는 제목으로 이 촌장이 쓴 칼럼이 게재됐다.

인터넷신문 <위키트리>에서는 '소 잡는 날'을 크게 다뤘다. 많은 매체에서 얼숲두레를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쿠팡'의 반값 이벤트와 비교해, '진정한 소셜 커머스는 무엇인가'에 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재미있는 일도 많아요. 전북대 교수 한 분은 도농 교류를 주제로 한 강좌을 페이스북 그룹에 개설하여 소셜 네트워크 방식으로 학생들과 네트워크 토론식으로 진행하는데, 저를 자문 역으로 끼워 넣었어요. 그룹에 참여하여 답변도 하고 나중에는 학교에 시간되면 학생들과 대화도 해달라는 거죠.

외국에서 공부하고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다 온 엘리트 출신 CRM(고객관계관리) 전문가도 있어요. 40세 노처녀인데 우리 소 잡는 날 잔치에 처음 나타났어요. 소를 잡고 나서 여자들이 방에 모여 생간을 썰어 먹었는데, 이분이 간을 너무 좋아해서 피를 뚝뚝 흘리며 그걸 먹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았지 뭐예요. 그 뒤에 별명이 '생간녀'가 되었지요. 얼숲두레 맹렬 회원이 된 것은 물론이고요."

회원들이 합심해서 유정란 생산자를 도운 감동 사례도 있다. 이 생산자는 몇 달 전에 계란을 포장하고 발송하는 작업실이 화재로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를 알게 된 얼숲두레 회원들이 앞 다투어 일 년치 계란을 선구매해주었고, 그는 재기에 큰 도움을 받았다.

폭등과 폭락은 배추 값의 숙명? 소비자가 말한다, No!

얼숲두레의 바쁜 이야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 4월 23일부터 30일까지 일주일간은 '배춧값 폭락 저지를 위한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올봄 예상대로 배추 값 폭락이 현실화되면서, 갈아엎기 직전의 배추 16만 포기를 모두 살려 김치를 담그자는 운동이었다. 10~20포기씩 사겠다, 김치 담그는 데 봉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회원들도 있었다.

"이거 가능하겠느냐고 걱정들도 많이 하시지만 저는 그래도 합니다.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하는데, 뭐든지 처음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로 시작하죠. 얼숲두레도 처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줄 몰랐거든요. 한나라당 여성위원회 중앙위원한테서도 전화가 왔어요. 한나라당 여성위원회 차원에서 배추 수매에 협조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16만 포기 모두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은 얼숲두레가 최소한의 역할을 하고, 앞으로는 계약 재배의 발판을 만들어 안전한 재배와 안전한 수매, 유통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데 노력할 예정이다. 향후 노지 배추, 가을 배추가 출하되면 그때그때 이번과 같이 대응을 할 생각이다.

"배춧값 폭락을 막으면 폭등도 막을 수 있습니다. 폭락이 되면 배추를 다 갈아엎죠. 그런데 소비는 꾸준하게 일어납니다. 그러면 곧 물량이 모자라게 되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에는 가격 폭등이 오는 거죠. 악순환입니다. 거미집이론이죠. 지금 배춧값이 비싸다고 씨를 뿌리면 팔 때쯤엔 값이 내려가죠. 폭락과 폭등은 항상 박스권에서 돌고, 이걸 막으면 안정권에서 돕니다."

이 촌장은 '한식재단' 등 정부 지원을 충분히 받고 있는 단체가 이럴 때 배추 수매에 나서야 하는데 정작 필요한 일에는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얼숲두레의 배춧값 안정화 노력이 시작은 미약하지만 거두는 성과는 적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얼숲두레 홈페이지에 올라온 배추값 폭락 방지 이벤트 사진
얼숲두레 홈페이지에 올라온 배추값 폭락 방지 이벤트 사진 ⓒ 얼숲두레

한나라당 여성위에서도 "배추 수매 돕겠다"

그의 계획은 끝이 없다. 일단 가을까지 회원 3만 명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안에 웹진 형태로 얼숲두레 소식지를 발행할 생각이다. 안전한 먹을거리 직거래 활성화를 위한 솔루션도 개발해서 탑재할 것이다. 얼숲두레에 접속하면 쇼핑몰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농 간 문화적 교류를 더욱 확대하는 일도 주요 관심사다.

"조직이 커지고 자꾸 일을 벌이니까 저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선도 없지 않아요. 얼숲두레가 지향하는 것이 유통업으로 돈을 버는 것이냐는 것이죠. 유통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거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제값 받기를 통해 제값 서비스를 하자는 거예요.

직거래 소셜 커머스를 통해서만 마케팅을 할 겁니다. 소셜 네트워크는 '친구 초대' 시스템을 활용하면 회원을 늘리기가 쉬워요. 회원들의 결속력과 충성도가 높아지면 조직은 자연히 발전하게 되어 있지요."

그가 바라는 '유통 혁명'을 위해서는 사회적 영향력도 필요하다. 때문에 얼숲두레의 몸집을 더욱 키울 것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한살림'과 같은 생협도 회원 수가 20만 명이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운영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하는 얼숲두레는 그보다 비용은 거의 안 들면서 결속력은 더욱 단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의 쇼핑몰과 우리 소셜 커머스의 차별성이 무엇이냐를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인터랙티브 인터넷 쇼핑몰이기 때문에 새로운 물건이 올라오면 동시에 회원 모두에게 전달이 됩니다. 커뮤니케이션 툴이 다르죠. 쇼핑몰은 소비자가 직접 찾아와야 되잖아요. 낮은 확률이지만 지속성이 있을 것이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할 거라고 봐요.

예를 들면 회원의 2%가 월 10만 원씩 정기적으로 구매를 한다, 이런 데이터가 생기면 유지가 되는 거죠. 10만 명이 모였다면 2%인 2천 명이 월 10만 원의 구매를 해도 2억 원어치의 직거래가 생기는 겁니다."

현재 진행 중인 소 나눔 행사도 사실은 앞날을 대비한 일종의 실험이다. 회원 수가 천 명이 되었을 때 소 나눔 참여율이 7~8%에 이르렀다. 그의 목표는 이것을 10%까지 늘리는 것.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면 참가 인원도 그의 예상치에 근접한다.

730만 관객 동원한 '화려한 휴가', 투자 자본의 배만 불려

이 촌장이 얼숲두레 사업에 쏟는 열정만 해도 대단한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흥미를 끈다. 현재 영화 <화려한 휴가> 제작사인 (주)기획시대 대표인 그는 세 편의 영화와 뮤지컬 <뮬란> 제작을 추진 중이다. <뮬란>은 장차 세계 시장을 무대로 세계적인 음악가 지박 감독을 섭외해 3년째 땀을 쏟고 있다.

"경영컨설팅 회사인 '비전링크글로벌' 대표로 있으면서 2005년부터 영화 사업을 했어요. 한국 영화시장이 세계로 나가야 된다는 생각에 한미 합작영화에 손을 댔죠. 장전호 전투와 원산 탈출을 배경으로 한 <가을의 해병대>라는 작품이 그중 하나에요. 할리우드 개봉을 목표로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랑 작업했고, 스태프도 모두 그쪽 사람들을 쓰려고 했죠.

한중 합작영화 <공자와 왕후>, 아시안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다룬 <멜라니 바이올린>도 모두 시나리오까지 다 되어 있는 상태에요. <멜라니 바이올린>은 한중미 합작영화인데 유태인들이 나치의 핍박을 피해 상하이 유럽 조차지로 도망을 와서, 거기서 일본에게 또 박해를 받는다는 내용이죠."

영화 <화려한 휴가>를 인상 깊게 봤다고 말했더니, 이 대표는 쓴웃음을 짓는다.

"지금 기획시대는 식물 기업이 되어 있어요. 730만 관객을 동원하고 투자배급사인 CJ는 60억 원, 기타 투자사들도 30억 원 이상 수익을 올렸는데 제작사인 우리만 순 적자가 4억 원이에요. 우리가 기부받고 실질적인 기여를 받은 것까지 하면 손해액을 8억 원까지 볼 수도 있어요. 세트장도 문제에요. 철거하는 데 3억 원이 드는데, 그 책임도 제작사인 우리에게 떠넘겨졌죠."

이 대표는 기획시대가 <화려한 휴가> 이후 사실상 운영 정지가 된 2007년 8월 이후부터 대표직을 맡았다.

"법적인 해결이요? 불가능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기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라고 봐야 할까요. 제작비를 처음에 다 투자하지 않고 찔끔찔끔 주면서, 나중에 뭐 해주겠다는 식으로 공수표만 남발하는 것이 한국의 투자배급사들이에요.

제작비 추가 발생분을 제작사에게 넘기고, 배우들 출연료까지 떠넘기고 수익배분율은 7대 3에서 8대 2까지 바꿨죠. 한국에서 CJ랑 영화 하면 망한다고, 어느 제작사에 물어봐도 같은 얘기를 해요. 거대 자본은 투자, 배급, 극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1위가 CJ, 2위는 롯데, 3위는 메가박스, 4위가 시너스인데 지금 <중앙일보>에서 3, 4위를 합병 중이죠."

 영화 <화려한 휴가> 중 한 장면.
영화 <화려한 휴가> 중 한 장면. ⓒ ㈜기획시대

그의 꿈은 농민과 소비자가 협력하는 도시농업

이 정도로 '당했으면' 이제 영화에 질색을 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영화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한국 영화시장은 엄청나게 커졌지만, 진짜로 감동을 주는 영화는 몇 편 되지 않는다. 생각 없이 웃고 즐기면 끝이다. 그는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를 예로 들면서, 진짜 감동을 주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그런 것이 필요하니까.

"물론 더 가까이는 얼숲두레가 자리를 잡는 것이 소망이지요. 장차 공익적 사단법인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표는 제3의 농협이에요. 농민과 소비자가 협력해 도시농업을 함께하는 농협을 만들려고 합니다. 쿠바 농업혁명의 핵심 고리는 도시농업이었어요. 농민만의 농협을 만들면 소비자와 항상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섞여 있는 농협은 장기 생존할 수 있지요."

도시농업이 별것은 아니다. 도시의 골목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추나 간단한 엽채류를 키우는 것이 도시농업이다. 이 대표는 학교 급식도 학교 텃밭과 학교 콩나물 공장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것이야말로 먹을거리의 효율성과 안전성, 신선함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것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산지 농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안정적인 종자 공급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얼숲두레 소비자들을 도시농업 생산자로 교육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콩나물 재배기를 회원들에게 많이 공급했지요. 콩나물 키우기 체험을 해보자고 설득하고 실시했는데, 한마디로 난리가 났었죠. 너도나도 키운 것을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히트를 쳤어요(웃음)."

콩나물 키우기가 습관화되면 콩나물 콩 공급처가 필요해지고, 이 회원들은 앞으로 얼숲두레 쇼핑몰을 통해서 그것을 구매하게 될 것이다. 그는 쇼핑몰 운영에서 교과서적인 친환경 농업이나 유기농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귀농해서 이렇게 이렇게 했다.' 그 진실을 파는 거지요. 어쨌든 몹쓸 짓을 안 한 농산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제일 위해 요소는 제초제에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데 무균실이 필요하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약간의 때가 있어도 좋습니다. 너무 교과서적으로 친환경 인증에 집착하다 보면 곰팡이 피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농촌이 살아 숨 쉬어야 도시인이 건강하다는 것. 농촌이 병들면 누구의 삶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 관계의 상대성을 이해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려는 사람들은 오늘도 얼숲두레로 모여들고 있다.


#페이스북#얼숲두레#얼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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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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