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아침, 오랜만에 산에 오릅니다. 구봉산을 향하며 하늘을 봅니다. 금방이라고 비를 뿌릴 듯 구름이 가득합니다. 아침더위는 구름 덕분에 피했습니다. 장마전선이 제주도와 남부지방을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덕분에 바람이 불어 산행에 도움을 줍니다.
더위 대신 시원한 바람 맞으며 산행하니 아침이 상쾌합니다. 평소엔 정상 욕심이 별로 없는데 오늘은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정상으로 향합니다.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흐릅니다. 기분 좋은 고생입니다.
그 기분도 잠시, 가파른 계단을 오른 후 정상부근 바위지대를 지나자 육각형 전망대가 보입니다. 눈에 티 들어간 것처럼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5일 오후 산에 오를 때 공사가 한창이더니 어느새 다 지었습니다.
그날은 요란한 전기톱 소리와 드릴 소리가 귀를 자극하더니 오늘은 다 지어진 전망대가 눈을 자극합니다. 전망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정상을 오르며 옆으로 고개 돌려면 여수 앞바다가 고스란히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야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 그림엔 구봉산 정상에 막대기 꽂혀 있을 듯...
그 생각을 하며 위쪽을 바라보니 정상이 꽤 복잡합니다. 각종 안테나와 입간판이 비좁은 정상에 경쟁하듯 늘어 서 있습니다. 복잡한 정상을 보니 갑자기 아이들이 구봉산을 그리면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해집니다. 상상하기는 둥근 삼각형 모양의 산을 그린 후 정상에 큰 막대기 하나 꽂아 놓지 않을까요.
가끔 비가 와서 산을 못 오르면 먼발치로 정상을 봅니다. 그럴 때면 항상 눈에 들어오는 안테나가 마뜩치 않았습니다. 필요 때문에 설치했겠지만 볼 때마다 눈에 티 들어간 것처럼 꺼끌꺼끌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티 하나가 더 생겼습니다. 등산객 편의를 위해 설치했다는 육각형 전망대가 제 눈엔 보기 불편합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정상에 굳이 전망대까지 세워서 등산객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화장실도 필요하고 음료수 자판기도 설치해 주세요.
아래쪽 숲속에 쉼터가 여럿 있는데 정상에 또 하나의 쉼터를 만들었습니다. 이러다 화장실도 만들고 음료수 자판기도 설치하지 않을까 하는 괜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나친 생각일까요?
되짚어 생각해 봅니다. 왜 자꾸 가만있는 산에 이런 시설물이 들어서는 걸까요? 산에 오르는 일이 집 앞 산책하듯 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불편한 여러 가지를 해결하려고 하니 끝이 없습니다. 결국, 편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이 일을 만듭니다.
구봉산은 도심 가운데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합니다. 그만큼 여수시민에게는 소중한 산입니다. 제 생각에 소중한 산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은 인공 구조물을 늘리기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려다 복잡한 구봉산을 만났다
구봉산은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 각종 시설물로 가득 찼습니다. 각종 운동기구와 친절한(?) 입간판 그리고 숲속 이곳저곳에 자리한 쉼터가 셀 수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정상에 육각형 전망대와 하늘 향한 안테나가 있습니다.
인공 구조물이 있는 그곳에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서 있으면 안 될까요? 자연을 느끼려고 산에 들었다가 온통 인공의 냄새만 맡고 오면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듭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리를 듣고자 그 아침 구슬땀을 흘리며 정상에 올랐는데 복잡한 구봉산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