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정두언 의원 : "추가감세 철회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돌아섰다. 감세철회가 대세다."기자 : "감세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이고,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기조이기도 하다. 바뀔 수 있을까."정두언 의원 :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두었다고 (한나라당) 어디에 써 있나. 내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성린 의원은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걸 나 의원이 정하는 것도 아니고."지난 5월 12일 기자와 인터뷰를 할 당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소득세와 법인세에 대한 추가감세가 철회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기자가 계속 어깃장을 놓자 그는 "내기할래요? 내기하자"고 했다(관련기사:
형님 이상득 총선 공천 받으면 수도권 전멸…).
기자는 아무리 한나라당 소장파가 쇄신을 내걸고 황우여 원내대표를 당선시켰다 해도 감세철회를 관철시켜 낼 진정한 의지와 힘이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또 소득세 감세 규모가 5천 억 원에 불과(?)한데 비해 법인세는 3조2천억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여의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표가 소득세 감세철회에는 찬성하지만 법인세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박 전 대표의 2007년 대선 구호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도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감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정 의원은 "감세를 해줬지만 대기업들이 투자나 고용은 늘리지도 않고 중소기업만 쥐어짜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데, 추가 감세를 해준다면 국민 정서가 어떻게 되겠나, 박 전 대표도 그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달이 조금 지나 그의 말이 현실이 됐다. 한나라당이 16일 의원총회에서 2012년 소득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33%로, 법인세 최고 세율을 22%에서 20%로 낮추기로 한 방침을 철회하기로 '사실상 당론'을 정한 것이다. 앞서 실시한 소속 의원 169명 대상(응답 98명) 설문조사에서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철회 찬성이 각각 78.4%와 65.6%로 나타난 결과대로였다.
"감세가 결국 세수 증대? 동화책에나 나오는 이야기"내기에 응할 때 구체적인 금액까지 말을 안 한 것도 다행이지만, 이제라도 집권여당이 감세철회로 가닥을 잡은 것은 더 다행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앞으로 청와대에 굴하지 않고 이를 관철해낼 것인지는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트리클다운'(trickle down, 감세→투자 및 소비 확대→경제 성장→세수 증대)이론을 근거로 감세정책을 써왔지만 투자와 소비확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감세정책의 최대 수혜자인 대기업들은 투자보다는(영업활동이나 자본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사내에 얼마나 쌓아두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사내유보만 최대치로 높였다. 지난 4월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협의회 발표에 따르면, 자산총액 기준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 중 전년과 비교 가능한 72개사를 분석한 결과, 작년 말 현재 72개사의 유보율은 평균 1219.45%였다. 2009년 말 1122.91%보다 96.54%포인트 높아졌고, 2004년말 600%를 넘어선 지 7년여만에 두 배가 된 것이다. 현금으로는 300조 원이 넘는다.
"세율을 내리면 세수가 늘어나 세금이 더 걷힌다는 건 어디 동화책에나 있는 이야기"(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대기업이 돈 벌어야 서민한테도 혜택 간다고 했지만 결과는 거꾸로였다. 양극화만 더 심화됐다"(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노무현 정부의 반기업 정책 때문에 기업의 투자가 부진하다며 "우리가 집권하는 즉시 투자가 확대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친 이명박 정부는 감세조치에도 별효과가 없자 직접적으로 기업에 투자 확대를 압박하고 나섰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MB정부 개국공신이 추가감세 철회 주역으로
감세정책의 물줄기를 바꿔낸 주역 중 한 명인 정 의원이 이명박 정권의 개국공신이라는 점은 역설이다. 한나라당에서 추가감세 철회 주장의 원조는 김성식 의원으로 2009년부터 그는 상임위와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이를 주장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 최고위원인 정 의원이 최고위에서 이를 주장하면서 조금씩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결국 대세가 됐다.
정 의원은 16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친박 의원들도 이미 얼마나 많이 감세가 진행됐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동의했고, 박 전 대표도 이같은 대세를 인정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인터뷰에서 정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19대 공천 문제와 관련해 "공천을 줄 수가 없게 돼 있다, 공천하면 수도권이 전멸하는데 수도권 후보들이 가만히 있겠나"라고 했다.
감세철회 문제를 지켜보면서 이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나게 될지 궁금해진다. 한 사람의 거취가 달린 문제라는 점에서 더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고, 반대로 쉬울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정 의원이 말한 대로 이상득 의원의 거취가 내년 총선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