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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경내 모습
 불국사 경내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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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토) 오후 2시, 경북 구미역사컨벤션웨딩홀에서 결혼식을 마친 6개국 8쌍의 부부는 곧바로 금오산 중턱의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불국사와 문무대왕릉 구경 길에 나섰다.

이들을 불국사와 문무대왕릉까지 태워준 사람들은 구미개인택시운전불자회 소속의 5명이다. 15년 전에 창설한 구미개인택시운전불자회 회원은 30명이다. 전날 결혼식 사회를 맡기도 했던 김태수 회장이 영업을 중단하고 꼬박 하루를 외국인들에게 봉사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진오스님이 우리들 모임의 지도법사입니다. 불교 행사가 있을 때 교통정리와 교통질서 지키기 봉사활동을 합니다. 오늘 이 기쁜 결혼식에 불자 택시운전사들이 동참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아침 9시(19일). 바쁜 일상을 접고 이틀간의 달콤한 휴가를 얻어 맛있는 음식과 한국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은 일행은 2쌍이 한 조가 되어 상기된 얼굴로 경주로 향했다. 이날따라 날씨가 좋다. 훤하게 뚫린 고속도로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산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일행들.

내 차에는 한국에 온 지 18개월 된 캄보디아 출신 승려 쏘펙이 옆자리에 동승했다. 그는 캄보디아의 승려대학을 졸업하고 진오스님( 꿈을 이루는 사람들 대표)의 도움으로 한국에 와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현재 이주민노동자들을 돕는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직원으로 이주민들을 도우며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잘 다듬어진 고속도로와 공장. 우뚝 솟은 아파트들을 본 쏘펙은 한국이 부러운 눈치다.
 구미개인택시운전불자회 회원 5명이 영업을 중단하고 신혼여행길에 나선 이방인들을 태워주고 있다. 이들의 행선지는 불국사와 문무대왕릉이다
 구미개인택시운전불자회 회원 5명이 영업을 중단하고 신혼여행길에 나선 이방인들을 태워주고 있다. 이들의 행선지는 불국사와 문무대왕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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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펙, 우리나라도 40년 전에는 산에 나무도,  뻥 뚫린 고속도로도, 공장도 없었어요. 내 어릴 적 점심시간이 되면 가난한 친구들은 먹을 게 없어 점심을 굶었어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국이 너무 가난하니까 미국에서 옥수수 가루를 원조해줘 옥수수 죽을 먹거나 분유를 먹기도 했어요. 국민들이 잘 살아보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이 이 정도로 살아요."

"정말이에요? 우리나라도 독재자 폴포트가 사람들을 많이 죽여 킬링필드를 만들었잖아요. 저 어렸을 때인데 당시는 처참했지요. 우리나라도 한국처럼 발전하기를 희망해요. 옛날에는 먹기 위해서 학교를 다녔지만 지금은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 부자가 되기 위해 학교에 다닙니다. 중학생 때부터 하루에 두 시간씩 영어를 배워요. 영어를 배우면 외국계회사에 들어갈 수 있고 월급을 많이 받아요. 지금 캄보디아에는 한국회사가 많아요. 그래서 한국어 배우는 붐이 일었죠."

"진오스님이 캄보디아 농촌에 사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러 가니 같이 가자"는 초청 얘기며 자신의 가족과  불교에 대한  얘기를 하는 사이에 어느덧 불국사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불국사에는 주차할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관광객들이 많이 왔다.

 합동결혼식을 올렸던  이주민노동자 부부들의 신혼여행지로 불국사를 택했다. 왼쪽부터 구미개인택시운전불자회장 김태수씨, 캄보디아 승려 쏘펙, 구미 외국인노동자센터 스탭 김호영씨
 합동결혼식을 올렸던 이주민노동자 부부들의 신혼여행지로 불국사를 택했다. 왼쪽부터 구미개인택시운전불자회장 김태수씨, 캄보디아 승려 쏘펙, 구미 외국인노동자센터 스탭 김호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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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사람들은 대부분이 기독교도 이지만 무슬림과 불교도도 있다. 방글라데시는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기독교와 불교 신자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국에서 본 절의 모습과는 약간 다르다는 게 이방인들의 설명이다. 필리핀 출신의 그레첸의 얘기다.

"TV에서만 봤던 한국의 절을 어제에 이어 오늘이 두 번째로 봅니다. 우리나라의 절과 약간 달라요."

주마간산 격으로 돌아본 불국사에 대해 얼마나 느꼈는지는 모른다. 다만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서 깊은 문화재를 보여 줌으로서 한국 문화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하려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길 빈다.

불국사에는 별난 것도 있다

석가탑을 돌아보는 데 재미있는 모습이 보인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석가탑기단부에 웅크리고 앉아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어도 도망가지 않는다. 국보 제21호인 석가탑은 당대 최고의 탑으로 여겨지는 한국의 대표적 탑으로 한국인들에게는 신성시의 대상이다. 하긴 고양이 눈에 국보가 무슨 상관이랴. 자신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면 그만이지!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새끼 고양이들이 국보 제21호인 석가탑 기단부에 올라가 웅크리고 있다. 한글이나 영어를 해득하지 못해서 일까?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새끼 고양이들이 국보 제21호인 석가탑 기단부에 올라가 웅크리고 있다. 한글이나 영어를 해득하지 못해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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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극락전 현판 바로 뒤에 황금복돼지 상이 보인다
 불국사 극락전 현판 바로 뒤에 황금복돼지 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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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지붕 바로 아래 현판 뒤에는 돼지 형상을 한 나무가 조각되어 있다. 극락전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곳이다. 극락정토의 주불로서 중생의 고난과 고통을 살피고 구제하는 부처님이며 아미타불의 48대원은 마흔 여덟 가지의 큰 원으로 중생제도의 서원을 담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의 24대원에 "모든 것에 만족하기를 원합니다"라는 원이 있다. 만족한 삶은 의식주의 구족과 더불어 욕심의 끝을 알아 스스로 절제하라는 경계의 뜻도 내포하고 있다. 세간에서 돼지는 제물과 의식의 풍족함을 상징하며 복을 가져다주는 길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극락전을 나와 화장실을 가려는데 이상한 모습의 돌들이 땅바닥에 놓여 있다. 가운데가 둥그렇게 패여 있고 둥그런 부분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홈이 있는 돌과 맷돌처럼 가운데가 둥그렇게 패여 있고 그 아래 부분에 물 빠지는 구멍만 보이는 돌의 2종류가 있다.

 불국사 극락전 화장실 가는 길에는 사진과 같은 돌들이 놓여 있다. 움푹 가운데 패인 중앙을 중심으로 양쪽에 가는 홈이 패인 것은 수세식 대변기다. 끝 부분에 둥글게 패인 돌은 소변기로 나무로 구멍을 막았다가 소변이 모이면 한꺼번에 처리한다고 한다 .
 불국사 극락전 화장실 가는 길에는 사진과 같은 돌들이 놓여 있다. 움푹 가운데 패인 중앙을 중심으로 양쪽에 가는 홈이 패인 것은 수세식 대변기다. 끝 부분에 둥글게 패인 돌은 소변기로 나무로 구멍을 막았다가 소변이 모이면 한꺼번에 처리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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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도 아니고 뭘까? 궁금해 문화해설사에게 물었다. 가운데가 움푹 패이고 양옆으로 흠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대변기다. 이른바 신라시대에 있었던 수세식 대변기. 양옆으로는 물이 흘러 변이 흘러내려가도록 만들었다. 가운데가 맷돌처럼 움푹 패인 것은 소변기다. 물 빠지는 구멍을 나무로 틀어막았다가 소변이 차면 틀어막았던 나무를 빼서 한꺼번에 처리했다. 

수중에 계신 문무대왕 동해를 청정바다로 지켜줄까?

불국사 구경을 마친 일행은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있는 문무대왕릉으로 향했다.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은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동해에 장례하라. 그러면 동해의 호국용이 되어 신라를 보호하리라"라는 유언을 남겨 이곳에 모셨다. 대왕암은 바닷가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길이 약 20미터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현재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은 아쉬움이다.

 합동결혼식을 마친 이주민 노동자들이 문무대왕릉을 방문했다. 뒤에 보이는 조그만 섬에 문무대왕릉이 있다
 합동결혼식을 마친 이주민 노동자들이 문무대왕릉을 방문했다. 뒤에 보이는 조그만 섬에 문무대왕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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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천진한 키스에 어른들이 박장대소하고 있다. 구미 '꿈을 이루는 사람들'에서는 어려운 외국인 가정의 임신출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아이들의 천진한 키스에 어른들이 박장대소하고 있다. 구미 '꿈을 이루는 사람들'에서는 어려운 외국인 가정의 임신출산에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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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문무대왕릉까지 이르는 길과 울산으로 가는 길가에는 약 50여개의 현수막이 걸려있고 집단 농성을 하는 천막이 보인다. 대부분의 플래카드가 이와 비슷한 내용이다. "방사능 위협에 목숨과 바꾼 한수원 보상 목숨 걸고 지킨다" 주민에게 저게 무슨 뜻인가를 물었더니 "어디서 왔는데 이런 것도 모르냐?"며 화를 냈다.

자초지종을 듣고 화를 내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며 투사가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무대왕릉에서 3분만 가면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월성원자력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반대하고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본사를 양북면에 유치한다는 약속을 해놓고 경주 도심에 재배치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경주시에서 문무대왕릉까지 가는 길에서 만난 플래카드.  양북면 양남면으로 가는  길가에는 50여개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경주시에서 문무대왕릉까지 가는 길에서 만난 플래카드. 양북면 양남면으로 가는 길가에는 50여개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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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폐장을 유치하는 대신 양북에 한수원 본사를 주기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경주시장이 바뀌면서 시내권으로 가져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약속도 지키지 않으면서 이제 쓸 만한 것은 시내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세계가 친환경으로 가고 후쿠시마 이후에는 아예 반핵으로 돌아섰어요. 수명이 다한 원전의 연장에 동의할 수 없어요."

핏대를 올리며 정치권을 성토하는 주민들과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이방인들 속에서도 무심한 플래카드는 바람에 펄럭인다. "방폐장 웬 말이냐 문무대왕 분노한다"라는 플래카드를 보면서 바닷 속에 잠들어 있는 문무대왕이 동해바다를 청정바다로 지켜줄지를 생각해봤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합동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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