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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목 '창가의 그리움'을 바라보는 관람객.  누군가 그리워하는 모습입니다.
 작품 제목 '창가의 그리움'을 바라보는 관람객. 누군가 그리워하는 모습입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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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부터 군산 시민문화회관 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중견 서양화가 채억(52)의 여섯 번째 개인전에 다녀왔다. '시간, 계절, 그리움'을 테마로 엮은 작품 전시회는 30일(목)까지 계속된다.

전시실에는 '나무 자화상-도시'를 비롯하여 '겨울, 빛에 물들다', '나의 바다', '겨울 연가', '창가의 그리움' 등 따뜻한 사람 냄새가 풍기는 작품들과 '빛-장미의 정원', '작약', '정원의 빛-수국' 등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 35점이 선보이고 있었다.

'흑백사진'으로도 색채 잡아냈던 '아버지'

제목: 창가의 그리움. 꽃과 악보를 배경으로 깔아 희망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제목: 창가의 그리움. 꽃과 악보를 배경으로 깔아 희망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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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서 만난 채억 작가는 아버지가 현상도 하고 인화도 하던 암실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과 약 냄새, 전시회를 앞두고 작품을 준비하는 모습 등을 어려서부터 지켜보면서 사진과 그림 그리는 일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며 4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젊으셨을 때 만든 아마추어 사진 모임 '일요사진동호회', '영70', '포커스' 등의 회원전이 있을 때는 작품 디스플레이도 하고, 액자 만드는 작업을 도와드렸다는 것. 채 작가는 찾아온 문하생들과 함께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나가시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평생을 사진 예술에 몸담았던 아버지 영향을 받아서일까? 채 작가는 빛 관련 작품을 유난히 추구한단다. 빛의 원천인 하늘, 태양, 무수히 찢어지는 빛과 그리움의 포말, 계절, 시간 등 이번 전시회에 등장하는 테마들이 아버지의 작품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사진작가로도 활동하는 채 작가에게 아버지를 따르지 않고 그림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사진은 영상메커니즘의 기기, 즉 카메라로 구도와 빛의 순간을 잡아내지만, 그림은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깊은 영혼의 색까지 재생산하여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과 그림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적도 있었다며 그렇다고 아버지가 일생을 바친 사진의 깊이가 그림보다 덜 하다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명토 박았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흑백사진으로도 색채를 잡아내셨던 분이었다며 영원의 컬러사진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엄격히 말해 사진과 그림은 장르가 다를 뿐이라는 것.

채 작가가 말하는 아버지 채원석(1918년-2007년)은 한국사진작가협회(사) 운영자문위원과 국전(사진 부분)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평생을 한국 사진예술 발전과 후진 양성에 몰두하다 생을 마감했다.

눈길 끌었던 그림 두 점. '나무 자화상'1. 2

나무 자화상1
 나무 자화상1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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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자화상2
 나무 자화상2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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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거의 같으면서도 달리 느껴지는 풍경화 두 점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 작품은 색상이 고우면서 부드러움을, 한 작품은 강한 인상을 풍겼고, 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는데 좌우로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 작품의 크기도 달라 채 작가에게 설명을 요청했다.

"두 작품 모두 군산시 창성동에서 내려다본 시내입니다. 빛과 어둠을 표현했는데요. 어둠의 마을과 밝은 마을로 하나는 새벽, 하나는 오후 4시를 그렸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가난,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는 부(富)를 상징하지요. 교회는 부와 가난의 메신저 역할을 의미하고요. 나무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나무 아래 민들레는 봄과 희망을 얘기하지요. 민들레의 갈채가 나무에게 용기와 힘을 넣어주니까요."

채 작가는 그림 속 나무는 상처투성이의 우리 모습이라고 부연했다. 수없이 아픈 가지치기에 옹이가 생기고, 상처를 입고, 그럼에도 고통의 흔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의연하게 나를 삼켜버린 도시를 바라보는 한 그루 나무는 바로 나라는 것이다.  

채 작가는 나무 자화상은 화면에 자신을 그려본 거라고 했다. 바람타고 날아와 주변의 민들레처럼 피어난 아내와 너무 예쁜 아이들, 사랑하는 지인들과 친구라는 존재 그 안에서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은 민들레의 작은 예찬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채 작가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스케치를 위해 멀리 떨어진 산이나 계곡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주제를 주변 생활 속에서 찾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설경도, 꽃 그림도, 풍경화도 작품 배경 대부분 군산 부근이라고 설명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의 노래'

제목: 2011년 봄- 빗속을 날다 2 생명력을 더하기 위해 쇼팽의 야상곡 악보를 배경에 깔았다고 합니다.
 제목: 2011년 봄- 빗속을 날다 2 생명력을 더하기 위해 쇼팽의 야상곡 악보를 배경에 깔았다고 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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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빛-장미의 정원 그림에서 흰색 처리하는 작업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장미 작업이 더 힘들다는군요.
 제목: 빛-장미의 정원 그림에서 흰색 처리하는 작업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장미 작업이 더 힘들다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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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평론가 이승우는 채억의 그림들은 재현의 표현으로 사실에서 사의로 나아간 작품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로 보고 듣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말했다. 나무 자화상으로 표현되는 일련의 나무 그림도 사의적이지만, 서정적 사실주의에 입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채억의 그림을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의 노래'로 표현했다. 쇼팽의 야상곡 악보를 배경에 깔고 그 위에 다양한 꽃을 클로즈업시킨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학창시절부터 통기타 연주가 수준급이었던 채 작가의 청아한 노래가 들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이 평론가는 '상류사회와 빈곤사회의 대비', '문명', '정신적 불구의 현대인', '황무지 위를 나는 새', '아버지의 밥', '나무 자화상' 등을 시리즈로 그려오며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어나가는 채 작가는 앞으로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제목: Morning Glory(나팔꽃) 주님의 기도를 나팔꽃 꽃말인 아침의 영광으로 표현했다 합니다.
 제목: Morning Glory(나팔꽃) 주님의 기도를 나팔꽃 꽃말인 아침의 영광으로 표현했다 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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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술협회 군산 지부장으로 환경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는 채 작가는 환경의 중요성은 백 번을 외쳐도 지나치지 않다고 강조했다. '환경'이라고 하면 흔히 자연환경을 말하는데 우리 주변 모두가 환경에 해당되고 이를 보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주대 미대를 졸업(79학번)한 채억 작가는 2007 대한민국미술평론지 선정작가 전 대상 수상을 비롯하여 대한민국회화대전 특선에 입상했으며, 러시아 상태부르크에서의 '허브아트전'과 중국 섬서성의 '평화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데 채 작가가 다가오더니 정확한 날짜는 잡혀 있지 않지만, 오는 8월중에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에서 국내 원로 작가들과 합동으로 부스전이 예정되어 있다고 귀띔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채 억 개인전, #아버지, #시간, 계절,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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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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