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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시티에서는 설계변경과 부실시공에 따른 대성산업과 입주예정자의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디큐브시티 전경.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시티에서는 설계변경과 부실시공에 따른 대성산업과 입주예정자의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디큐브시티 전경. ⓒ 선대식


국내 최대 환승역인 서울 신도림역을 나서면,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주거·상업·문화 복합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대상산업이 오는 8월 완공을 목표로 짓는 '디큐브시티'다. 51층 아파트 2개 동과 42층 호텔·오피스 동을 비롯해 백화점·뮤지컬 공연장 등이 들어선다. 대성산업 소유의 부지 가격을 제외한 사업비만 1조 원이다.

대성산업은 디큐브시티에 세계 3대 패스트패션 브랜드와 세계적 호텔 체인 등이 들어선다며 연 2000만 명 이상이 디큐브시티를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주거시설이 '명품 아파트'임을 강조했다. 전체 524세대 중 60%가 전용면적 105㎡(45평)형 이상 규모로, 3.3㎡당 분양가는 2200만 원대다.

최근 이 '명품 아파트'를 두고 대성산업과 입주예정자들의 분쟁이 커지고 있다. 입주예정자들은 설계변경과 부실시공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최대 수천억 원대의 소송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회사 쪽은 "집값이 떨어지니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누가 10억 원을 주고 건물 벽만 보이는 아파트 분양받겠나"

박지민(가명)씨는 지난 2007년 7월, 디큐브시티 아파트 20층 105㎡형을 10억 원에 분양받았다. 박씨는 "당시 인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3.3㎡당 1700만 원 수준이었는데, 이보다 400만~500만 원 이상 더 비싼 돈을 냈다"며 "신도림에서는 매우 비싼 분양가였지만, 품격 높은 아파트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입주예정일을 한 달 앞둔 지난달 4일 사전점검 때 자신의 집에 들어선 박씨는 깜짝 놀랐다. 거실 창 바깥 풍경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비주거시설의 건물 외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는 "일조권과 조망권이 훼손됐을 뿐만 아니라, 사생활 침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디큐브시티의 설계 변경으로, 일부 아파트 세대 거실에서는 비주거시설 벽면이 보인다.
디큐브시티의 설계 변경으로, 일부 아파트 세대 거실에서는 비주거시설 벽면이 보인다. ⓒ 디큐브시티 입주예정자모임 제공

2007년 9월 계약 당시 사업승인 도면에 따르면, 아파트 앞 비주거시설의 높이는 52.4m로 아파트 16층과 같은 높이였다. 하지만 대성산업은 같은 해 11월 사업계획을 변경해, 비주거시설의 높이를 74m로 올렸다. 아파트 23층 높이까지 비주거시설이 올라간 것이다.

박씨는 "대성산업은 아파트 분양과 계약이 끝나자마자, 분양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교묘하게 설계변경을 감행했다"며 "거실 창 앞에 건물 벽만 보이는 집을 누가 10억 원에 분양받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비주거시설의 높이를 올릴 생각이었다, 명백한 사기분양"이라고 강조했다.

입주예정자들은 부실시공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입주예정자대표인 심철호씨는 "장맛비가 내렸던 지난달 29일 구로구청 공무원들과 함께 8세대를 방문했는데, 그 중 7세대에서 물이 샜다"며 "같은 시각 대성산업은 구로구청에 준공허가를 신청했다, 너무나도 부도덕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성산업 "설계 변경 이미 고지했다... 142억 원 입주지원금 제안"

설계 변경과 관련, 조민수 대성산업 이사는 "분양 당시 비주거시설 기본 설계가 진행 중이었다, 설계가 바뀔 수 있다는 내용을 입주자모집공고와 공급계약서를 통해 고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계약해지 요청을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입주자모집공고에는 '주택부문이 상업 및 문화시설로 인하여 일조 및 조망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이라는 조항이 담겼다. 또한 공급계약서 17조 8항에는 '주거시설 외의 업무·호텔·상업·문화시설 등은 사업계획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사용 검사 전 설계 변경에 대하여 주택 부문 분양 계약자의 동의를 받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대성산업은 부실시공 논란과 관련, 일부 하자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조민수 이사는 "협력업체가 일부 세대의 실리콘코킹작업(실리콘으로 균열을 메워 누수를 방지하는 공사)을 누락했기 때문에, 누수가 발생했다"며 "입주 때까지 모두 보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입주예정자들의 문제제기의 주 원인은 설계변경이나 부실시공이 아니라, 집값 하락"이라며 "회사는 부동산 침체 상황에서 수천만 원의 집값 하락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총 142억 원의 입주지원금 지급을 입주예정자들에게 제안했다"고 전했다.

 2007년 9월 계약 당시 사업승인 도면(왼쪽)에 따르면, 아파트 앞 비주거시설의 높이는 52.4m로 아파트 16층과 같은 높이였다. 하지만 대성산업은 같은 해 11월 사업계획을 변경해(오른쪽), 비주거시설의 높이를 74m로 올렸다. 아파트 23층 높이까지 비주거시설이 올라간 것이다.
2007년 9월 계약 당시 사업승인 도면(왼쪽)에 따르면, 아파트 앞 비주거시설의 높이는 52.4m로 아파트 16층과 같은 높이였다. 하지만 대성산업은 같은 해 11월 사업계획을 변경해(오른쪽), 비주거시설의 높이를 74m로 올렸다. 아파트 23층 높이까지 비주거시설이 올라간 것이다. ⓒ 선대식

공정위 "설계변경 책임회피 조항은 무효"... 수천억 원대 소송 예상돼

입주예정자들은 "대성산업은 고분양가를 책정하고 설계까지 변경했다,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이라며 "입주지원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윈윈'하고 싶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회사에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건설사가 홍보한 내용과 다르게 시공을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든 조항은 무효라는 결정이 난 바 있다. 2009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메타폴리스 설계 변경과 관련, 입주예정자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메타폴리스는 포스코건설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55~66층 주상복합아파트 4개동과 미디어센터·벤처센터 등의 업무시설을 짓는 사업으로, 홍보와는 달리 업무시설 규모를 줄였다. 이에 대한 책임 회피를 위해 분양계약서에는 '업무·상업시설 등은 사업계획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주거부문 계약자는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을 넣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관련 조항은) 계약의 주요 내용인 아파트 및 그 부대시설의 외형 및 재질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게 하므로 불공정한 약관"이라며 "또한 아파트 계약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제한하므로 무효"라고 결정했다.

심철호씨는 "대성산업이 입주예정자들의 요구를 귀담아듣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며 "디큐브 시티 아파트 총 분양금액은 5000억 원이 넘는다, 디큐브시티 입주예정자 다수가 계약해지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수천억 원에 달하는 소송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국책사업팀장은 "집값상승기에는 소비자들이 부실시공이나 설계변경을 용인했지만, 집값 하락기에는 이를 더 이상 참지 않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아파트 품질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분양받는 선분양제도와 감리업체들이 제대로 된 관리감독을 못하는 문제 등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큐브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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