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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 속에도 대학병원 접수처는 북적거린다.
 무더위 속에도 대학병원 접수처는 북적거린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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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나 법원은 멀리 할수록 좋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곳에는 즐겁고 행복한 일보다는 살 속 깊이 엄습해오는 두려움과 고통이 있어서다. 당사자보다는 덜하겠지만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72세의 연세에 심장 수술을 해야 하는 어머니나 가족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지난 1월에 뇌동맥류가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고령이라며 수술을 하지 않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처방약과 벌침치료로 5개월 만에 거의 건강을 회복하셨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다시 뇌동맥류가 왔다. 어눌한 말씨에 계속 "정신이 없다"라는 말만 반복하신다.

7월에는 가족 여행을 가서 행복한 모습을 도화지에 그리자고 가족들과 약속을 했는데, 가족여행은커녕 근심과 걱정의 그림자가 집 안으로 길게 드리워졌다. 병원에서는 처음 뇌동맥류가 왔을 때처럼 다시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뇌동맥류라고 한다. 뇌동맥류가 다른 쪽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생겼다. 심장초음파촬영에서 뇌동맥류의 원인을 찾은 것이다. 심장에 혹이 있었다.

담당의사는 뇌동맥류 원인이 심장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의 경우 심장이 펌프질을 할 때마다 그 혹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 뇌동맥을 막는다는 것이다. 심장수술을 해야 한다. 어머니는 대학병원으로 옮겨 4시간의 수술을 했다. 4시간동안 가슴 졸이는 시간이었지만 수술은 잘 끝났다.

 어머니가 입원하셨던 6인 병실
 어머니가 입원하셨던 6인 병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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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다. 수술이 잘 되어 우리가족은 편한 마음으로 병실을 지킬 수 있었는데 병실에서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었다. 노부부의 망태 사랑을 보면서다.

74세인 할머니가 흉부외과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었다. 아니, 병원의 퇴원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계속 입원을 하겠다는 분이다. 할아버지는 화장실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쉬지 않고 할머니의 등과 어깨 다리를 주무르신다.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하시면 저러실까. 그러면서 괜히 궁금증이 살며시 고개를 들고 나온다. 잠시 할아버지가 화장실을 가셨을 때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젊으셨을 때도 그렇게 할머니를 챙겨주셨어요?"
"아니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한다.

"마을 이장을 15년 하셨는데 그럴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정말 잘하셔요. 늦게 속이 들으셨는지."

할아버지 자랑을 하면서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신다. 내가 할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어머니 제가 다리 좀 주물러 드릴게요"라며 무릎을 주무르자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신다. 그래, 언제 어머니 등이나 다리를 주물러 드렸는가. 놀라고 어색할 수밖에 없다. 막 화장실에 다녀오신 할아버지께 나는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젊으셨을 때도 그렇게 할머니를 챙겨주셨어요?"
"아니. 내가 마을 일 본답시고 돌아다니기도 많이 했고 손님들도 집에 많이 왔지. 할멈이 고생 많이 했어."

"그래서 그렇게 정성으로 간병을 하신가요?"
"집에 가면 아무도 없어. 할멈하고 나뿐이지.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할멈이지. 할멈 없으면 얘기할 사람이 있겠어. 늙어서는 말동무가 최고여."

좁은 침대로 올라가서 다시 할머니 전신을 주무르신다. 자식들은 다 제 살길 찾아 떠났고 덩그러니 남아 있는 시골집에서 할머니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할머니와 건너편에 할머니도 내일 퇴원하셔야 합니다. 교수님이 에어컨 가동으로 감기나 감염에 환자들이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며 꼭 퇴원 하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담당 간호사의 말이다. 건너편 할머니는 내 어머니다. 집 가까운 곳으로 병원을 옮겼다. 전날 할아버지 할머니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해로하시라는 인사도 했다. 할아버지의 늦은 사랑이었지만 온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대학병원으로 향하면서 무겁기만 했던 걸음이 가볍게 돌아올 수 있어서 그런지 35도가 넘는 날씨가 덥지 않다. 병원을 옮기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건강도 기원하고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이 철지난 바닷가라도 가야겠다는 여유도 생겼다.

덧붙이는 글 | 할아버지 할머니의 다정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못 한 것이 아쉽습니다.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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