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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에 안 들면 시작 중이든 진행 중이든 완성작이든 무조건 찢어버리고 폐기시켜 버렸죠. 가족, 친구들이 와보면 아까운 그림을 사정없이 두드려 부숴놓으니까 '그림 찢지 말라고' 거부감을 많이 일으켰어요."

도예가도 아닌데 자신의 그림을 찢고 깨는 남자 김완수(52·남) 화가. 이렇게 자신의 손에 안타까이 죽어가야만 했던 그림만 4000여 점, 혹독한 관문을 통과해 어렵게 살아남은 그림이 겨우 50여 점. 40년 세월 동안 그에게서 힘들게 목숨을 부지한 그림들이 호암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3.15아트센타 등에서 안도의 휴식을 취하며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동래야류(영감과 제대각시) 영감이 할미 몰래 제대각시를 어르는 장면이다. 각시 표정이 수줍은듯 새침하고, 영감은 작업에 열심이다. 표정, 손동작 등이 아주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도 형태묘사의 정확성에 많이 고심했다고 한다.
▲ 동래야류(영감과 제대각시) 영감이 할미 몰래 제대각시를 어르는 장면이다. 각시 표정이 수줍은듯 새침하고, 영감은 작업에 열심이다. 표정, 손동작 등이 아주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도 형태묘사의 정확성에 많이 고심했다고 한다.
ⓒ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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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처럼 소중한 그림을 과감히 찢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김완수 화백이 창원시의 '준갤러리'에서 전시회를 끝내고 연이어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서울예고 근처의 '갤러리인'에서 7월 21부터 7월 31일까지 '아버지의 고향'이라는 제목으로 초대개인전을 가진다. 7월 14일 오후 창동거리와 자신의 집을 오가며 힘겹게 살아온 인생에 대해 긴~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대인은 서울대 미대를 나와 경상남도미술협회장을 지냈고, 삼촌은 미술평론가로, 고모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 집안이다. 선대인은 생전에 그림쟁이의 삶은 고달프다며 화가의 길을 반대했지만 삼촌은 조카에게 그림 그리는 방법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삼촌이 '열심'에 대한 잣대가 너무 엄격하신 거예요. 그 양반은 미술공부를 할 적에 길에서 만 장 정도 크로키를 했다는 거예요. 그것도 펜촉에 잉크를 찍어서. 하루는 삼촌이 이런 말씀을 하데요. '같은 핏줄이라도 못난 놈은 절대 안 밀어준다'고. 이런 삼촌 밑에서 크니까 숨도 못 쉬죠."

그는 미술대학에 입학하자 삼촌에게서 다작과 집중을 통해 기본 테크닉과 실력을 갖추도록 훈련받았다.

"벽에 10~20개씩 그림준비를 해요. 스케치 밑그림이 끝나면 그다음 밑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쭉 돌거든요. 그런 후 색칠하고. 한 바퀴 돌면 그림이 말라있거든요. 그럼 계속 연이어 칠하고. 그러니까 쉴 시간도 없이 할게 너무 많은 거예요."

김완수 화백 우리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김완수 화가는 우리춤의 움직임에는 내면의 깊은 울림이 묻어나온다고 말한다. 격렬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으면서 춤사위와 화려한 원색의 오방색이 어우러지는 우리춤에는 신명나는 흥겨움과 해학적 여유로움, 인간적 따뜻함이 스며있어 좋다고 한다.
▲ 김완수 화백 우리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김완수 화가는 우리춤의 움직임에는 내면의 깊은 울림이 묻어나온다고 말한다. 격렬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으면서 춤사위와 화려한 원색의 오방색이 어우러지는 우리춤에는 신명나는 흥겨움과 해학적 여유로움, 인간적 따뜻함이 스며있어 좋다고 한다.
ⓒ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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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업을 시작하면 그는 보통 14~16시간씩 쉬지 않고 그림에 몰두했다.

"커피 마시고 화장실 가는 것 빼고는 그림에 집중했어요. 심지어 밥을 먹으면 머리가 둔해지니까 밥도 안 먹을 때도 많았어요. 하루는 쉬지 않고 36시간 그린 적이 있는데요, 토요일 점심때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까지 그렸죠. 그때 사람이 핑~ 돌더라고요."

이런 생활을 40대 초반까지 했단다. 엥~,  수십 년간 계속 이런 생활을 했다고. 조금 의심이 갔다. 확인하는 수밖에.

- 사람인데 이게 가능한가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밥도 안 먹고?
"그게 가능하데요. 며칠씩 계속 몰입해서 작업하고 난 후 밥을 먹든지 술을 먹든지 했어요. 그리곤 하루 이틀 뻗어버려요. 내가 다른 것은 할 줄 몰라도 그림 하나로, 좋은 그림 그려서 세상에 내놓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래서 할 수 있었던가 봐요. 근데 주위에서는 산삼빨이라 그랬어요."

- 어, 산삼빨이라니, 그게 뭔 이야기인가요.
"아, 할아버지가 함양에서 유명한 한의사였는데, 제가 종손집 장남이라 어릴 적에 저에게 비싼 '동삼'을 구해서 먹였어요. 할아버지 아버지 고향이 지리산자락의 함양군 마천리에요. 저도 어릴 적에 함양에서 자랐고요."

승무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조지훈의 승무에서) 여인의 왼쪽허리에 묶인 끈 사이에 하얀 점이 이 여인의 몸매를 살려주는 포인트다.
▲ 승무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조지훈의 승무에서) 여인의 왼쪽허리에 묶인 끈 사이에 하얀 점이 이 여인의 몸매를 살려주는 포인트다.
ⓒ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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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동삼'을 먹은 화가였다. 의심이 조금 수그러든다. 내가 아는 사람이 어릴 적 천종산삼을 먹었는데, 정말 감기 안 걸리고 지치지 않는 정력을 소유한 것을 봤기 때문이다. 산삼 먹고 열심히 그림에 매진한 결과, 그는 경상남도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학 3학년 때 중앙미술대전에 특선을 받게 된다.

그런데 내공을 증가시키며 명성을 얻을 수 있는 30세 초반에 아픔이 닥쳐왔다. 정신적 지주며 경제적 후원자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고등학교 미술교사였던 아버지가 별세한 이후 그는 계속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제 작업실이 부모님집 근처 중국집 2층에 있었어요. 작업에 집중한다고 문을 잠그고 창문으로 들락날락하던 때였는데, 하루는 햇빛도 쐬고 사람도 보고 싶어 가까운 거리로 나갔어요. 입을 옷이 없어 여름에도 군용잠바에 청바지를 입고 나갔어요. 더우니까 맨발로 걸어나갔죠. 근데 친구들이 맨발로 길거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저를 봤던 모양이에요."

김완수가 그림에 미쳐 살더니 여름철에 겨울옷 입고 맨발로 다닌다고, 드디어 미쳤다고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다. 심지어 길가의 아이들도 그를 미친 사람, 거지라며 툭툭 장난으로 건드렸다. 사실 그는 수중에 단돈 2천 원 가졌을 때가 별로 없었다. 소주 한 잔 먹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그는 스님들 고행한다 생각하고 그림에 매달렸다.

"주변은 잘 돌아가고, 다들 잘 먹고 잘 살고, 미술학원 운영하는 대학 동기들 찾아가면 실력을 갈고 닦을 소중한 시기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물감 수십 개의 금액이 왔다 갔다 하는 고스톱이나 치면서 히히덕거리고. 작업하다 인생이 뭔지, 그림이 뭔지, 죽음이 뭔지 마음이 갑갑해지면 밤에 사람들 없는 산속 공동묘지에 올라가 고함을 치고 울었어요. 산속에 올라가 고함치지 않았으면 아마 폭발해서 진짜 미쳤을 거예요."

송파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중에서 먹중 둘이 나오는데, 하나는 북을 들고 하나는 북채를 들고 서로 춤을 춘다. 한 먹중이 북채로 북을 치러하면 살짝 피하여 못치게 만든다. 넓은 공간에서 배경에 배치된 포도문양이 무게 중심을 잡아주면서  그림에 부드러움과 율동감을 느끼게 만든다.
▲ 송파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중에서 먹중 둘이 나오는데, 하나는 북을 들고 하나는 북채를 들고 서로 춤을 춘다. 한 먹중이 북채로 북을 치러하면 살짝 피하여 못치게 만든다. 넓은 공간에서 배경에 배치된 포도문양이 무게 중심을 잡아주면서 그림에 부드러움과 율동감을 느끼게 만든다.
ⓒ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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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작업은 정말 열심히 했다. 세상에 복수할 생각에. 하지만 집세 생각, 물감 걱정, 오늘은 어디 가서 돈을 구하나, 술은 누구한테 얻어먹을까 생계형 근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우스워요. 수중에 돈이 있을 때랑 없을 때랑 그림이 달라져요. 수중에 돈이 있으면 구도도 잘 잡히고, 스케치도 마음먹은 대로 되고, 그림도 이쁘게 나오고. 돈이 없으면 색깔이 과격해져요. 구도가 짜증 나고 뭔가를 억지로 나타내려고 그러고. 그림은 속일 수 없어요. 그게 그림 속에 다 나타나요."

계속되는 고통과 괴로움에 그는 해서는 안 되는 마음마저 먹게 된다.

"늘 열심히 살려고 해도 뭔가 안 되는 거예요. 집세는 1년씩 밀리고, 작품은 뜻대로 안 되고, 먹고 사는 것도 너무 힘들고. 그래 한번은 죽으려고 술을 잔뜩 먹고 천장에 못을 친 후 줄을 걸려고 책상에 올라갔는데 그만 넘어졌어요. 죽으려고 했는데 죽지는 못하고 떨어져 다치기만 했죠."

이런 고통스러운 생활이 1~2년도 아니고…. 해서 그림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해 볼 생각하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근데 의외로 대답이 단호했다.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제가 제일 절망했던 때가 결혼 후 돈 벌기 위해 마누라와 사천시의 버섯농장에서 두 달간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림을 못 그렸어요. 곰팡이 낀 방 한 칸짜리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을 했는데, 일 외에 다른 것을 전혀 할 수 없었어요. 손은 굳어가고 그림은 그릴 수 없고. 이제 끝나는 것인가… 너무너무 절망했어요. 그때 하늘 보고 결심했어요. '반드시 살아남자!'고."

양주별산대(애사당과 말뚝이) 애사당은 어린 여자 사당패를 말하는데, 애사당은 승무와 비슷한 옷차림새로 말뚝이가 왜장녀의 딸인 애사당을 사서 기뻐하며 등에 업고 서로 한바탕 노는 모습이다. 근데 즐거워야 할 애사당과 말뚝이의 표정에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있는 듯하다.
▲ 양주별산대(애사당과 말뚝이) 애사당은 어린 여자 사당패를 말하는데, 애사당은 승무와 비슷한 옷차림새로 말뚝이가 왜장녀의 딸인 애사당을 사서 기뻐하며 등에 업고 서로 한바탕 노는 모습이다. 근데 즐거워야 할 애사당과 말뚝이의 표정에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있는 듯하다.
ⓒ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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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세월 속에서 그는 85, 86년경에 소재변화를 시도했다. 그동안 그려왔던 할아버지, 아버지, 자신의 고향이었던, 행복하고 즐거운 어릴 적 추억 속의 지리산 풍경을 포기하고 한국전통춤으로 시야를 돌린 것이다.

"어느 날 꿈에 사람들이 나타나 아주 생생하게 제 화실에서 탈춤을 추는 거예요. 신기했죠. 아버님께서 대학교 다닐 적에 '서양화는 한국적인 소재에 접목을 못 시키면, 한국화는 서양에 접목을 못 시키면 앞으로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게 떠올랐죠. 사실 제 핏속에 한국인의 혼백이 흐르잖아요."

처음에 한국적인 소재가 좋겠다고 생각해 막상 들춰보니 분야가 너무 방대하고 어려웠다. 춤도 탈춤 승무 학춤 살풀이 도살풀이 무굿 궁중무 등등… 자료도 부족하고, 있는 사진마저 전신상은 없고 주로 상반신뿐이었다.

"책방에서 자료 구하면 오려서 스크랩하고, 돈 생기면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행사장 다니면서 사진 찍으러 다니고. 한 장면에서 좋은 동작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것만 찍어도 몇백 장 몇천 장씩 되는 거예요. 경비도 많이 들지만 당시 아날로그 사진기로 순간 동작을 잡아내는 것도 너무 힘들었죠. 이렇게 수집한 사진이 7000장이 넘고, 한국의 전통춤에 대한 알음알이가 차츰 깊어졌죠."

영광우도농악 전라도 서남해지역 등에서 옛날 전문광대들인 낭걸립패들이 직업으로 해오던 굿으로 가락은 약간 느린 편이며, 가락을 조였다 풀었다 긴장과 이완을 잘 표현한다. 복색과 개인놀이 진법 등이 화려하고 다양하게 짜여져 있어 최고의 걸궁굿으로 손색이 없다고 전한다.
▲ 영광우도농악 전라도 서남해지역 등에서 옛날 전문광대들인 낭걸립패들이 직업으로 해오던 굿으로 가락은 약간 느린 편이며, 가락을 조였다 풀었다 긴장과 이완을 잘 표현한다. 복색과 개인놀이 진법 등이 화려하고 다양하게 짜여져 있어 최고의 걸궁굿으로 손색이 없다고 전한다.
ⓒ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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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2003년 마산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경남민속경연대회에서 연등바라춤 공연을 하기 위해 왔었던 지금의 부인을 만나게 된다.

"혼자 춤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나와서 춤을 추는데 집사람을 보고 제가 뻑 갔죠. 모델이 좋으니까 집사람만 계속 찍었죠. 당시 인솔자가 양산학춤 인간문화재이신 김덕명 선생님이었는데,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도 되냐고 여쭈어봤는데 허락을 하셨죠. 그 뒤로 계속 만나 결혼에 골인하게 됐죠."

부인을 만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마시던 술도 반강제적으로 끊게 되면서 작업량이 많아지고, 술만 먹으면 큰소리치고 열등의식에 젖어 있던 혼탁한 정신이 맑아지면서 그림 감각이 다시 새로워졌다. 전통무용을 전공한 부인에게서 춤에 대한 많은 조언과 정보도 수시로 얻게 되었다.

"제 그림의 표정, 동작이 격렬하고 강렬해서 무서웠거든요. 피색깔을 좋아하고. 근데 마누라를 만나면서 그림이 부드러워졌어요. 구도가 안정되고, 주제와 배경이 조화를 이루고, 여백미가 살아나고, 격렬하고 치열했던 색감도 가라앉고, 색감 분배도 제대로 자리 잡아 갔죠. 사랑을 나누면서 그림의 감이 잡혀간 거죠." 

양산학춤 양산학춤은 학의 24가지 동작을 춤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이 장면은 학이 사랑을 구하는 춤으로 사랑태, 짝어르기(짝어우르기)라고 부른다.  인간문화재인 김덕명씨에게 학춤을 이수한 김완수씨의 부인인 서남주씨가 이 그림의 모델이다.
▲ 양산학춤 양산학춤은 학의 24가지 동작을 춤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이 장면은 학이 사랑을 구하는 춤으로 사랑태, 짝어르기(짝어우르기)라고 부른다. 인간문화재인 김덕명씨에게 학춤을 이수한 김완수씨의 부인인 서남주씨가 이 그림의 모델이다.
ⓒ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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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조카를 혹독하게 훈련시켰던 삼촌인 김영재(61·남) 미술평론가는 개인전 '아버지의 고향' 서평에서 "익명성을 앞세운 가면은 감정처리를 완화하고 중화시켜주는 작용을 하지만, 김완수씨의 회화에서는 가면 속의 감정이 가면을 뛰어넘어 보는 사람의 가슴 속까지 파고 들어간다"며 "익명성의 무표정에 심오한 감정을 불어넣은 작가의 그림이 참으로 인상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준갤러리 대표 김동준(51·여)씨는 "빨강 파랑 노랑 등 오방색이 원래 강한 색이지만 김완수 화백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보기 좋게 색감을 뽑아냈다. 색깔에서 성공한 것 같다. 탈은 표정이 없고, 탈바가지를 쓴 안쪽의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탈자체가 생명력이 있고 살아 있다는 느낌, 편안한 기분이 느껴진다"며 "앞으로 기대되는 화가"라는 평가를 한다. 

"전통춤이 무시되고 무거운 감이 있잖아요. 이것을 아름답게, 예쁘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보통 명암을 가지고 입체감을 나타내는데 선과 두께로 입체감을 살리고, 잡다한 것을 단순화시켜 한국화적인 느낌을 주도록 노력했어요. 서양화지만 한국화처럼 춤추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선을 곱고 아름답고 기품있게 처리하고, 배경에 전통문양인 태극문양, 목단문양, 칠보문양 등을 적절하게 배치해 춤의 리듬감 입체감을 표현하려 애썼죠."

김완수 화가. 그의 젊은 시절은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림을 위해, 생계를 위해 막노동, 액자집 아르바이트, 호프집 아르바이트, 공공근로, 버섯농장 등을 전전했다. 물론 지금도 아이들 병원비가 없어 절절매고, 겨울 난방비가 부족해 추위 속에서 떨기도 하고, 작업실이 없어 아파트 조그만 방 한켠에서 오일냄새 맡으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도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고 더 불타오른다.

무당굿 무당은 죽은 자와 산자의 경계선에 서서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주고 산자의 행복을 도모하는 중개자 역할을 자처한다. 그림에서 왼편과 아래쪽에 그어진 선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상징한다. 청수그릇을 들고 해원굿을 펼치는 무당의 모습에서 저승과 이승,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이 어름풋이 보이는 듯 하다.
▲ 무당굿 무당은 죽은 자와 산자의 경계선에 서서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주고 산자의 행복을 도모하는 중개자 역할을 자처한다. 그림에서 왼편과 아래쪽에 그어진 선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상징한다. 청수그릇을 들고 해원굿을 펼치는 무당의 모습에서 저승과 이승,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이 어름풋이 보이는 듯 하다.
ⓒ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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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안 해 본 작가들이 어디 있겠어요. 다들 고생하죠. 저는 석유 떨어져도, 추위에 떨어도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행복해요. 아버님이 저에게 유산을 남겼는데 그게 '작업이젤'이에요. 그림만 그리라는 뜻으로 생각하죠. 저는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세계에 내어 보일 한국의 그림을 만들고 싶어요."

포기하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진다. 김완수 화가의 꿈이 빠른 시일 내에 꼭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화가 김완수(金完洙)는...
2011.김완수 "아버지의 고향" 초대개인전(창원 준 갤러리, 서울 Gallery 仁)
2011.향토작가 특별초대전(창원 대산미술관)
2011.제8회 안산국제아트페어AIAF 수상작가 초대전(안산문화예술의전당)
2011.경남도립미술관 신소장품전(경남도립미술관)
2011~1986.한국의 전통춤 제작전
2010.성산미술대전 초대작가전(창원 성산아트홀)
2010.동서미술의현재전(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
2010.안산국제아트페어AIAF 특별상(안산문화예술의전당)
2010.경남미술협회전(창원컨벤션 센터)
2010.소통과화합전(3.15아트센터)
2010~1998.미협여수-마산합동전, 미협전
2009.경남미술 초대작가전(거창 교육문화센터)
2008.세대공감-이어지는 예술혼(경남도립미술관)
2008.찾아가는 도립미술관 고성탈박물관 초대전
2008.3.15아트센터 개관기념전(마산)
2007.경남향토작가특별초대전(창원 대산미술관)
2005.전업작가 3인 초대전(대우백화점갤러리-마산)
2011~1986. 젊음,아름다운꿈전초대(마산 성안백화점갤러리)
           서울국제 방법전 도쿄전,  Group Question전
           젊음,열정전초대(마산 성안백화점갤러리), 갤러리M개관초대전(서울)
           개인전7회 2인전2회 그 외 다수
1984~83.중앙미술대전 특선,입선(덕수궁국립현대미술관)

작품소장
호암미술관-아버지의고향(120F)
          할머니의고향(150F)
경남도립미술관-바라춤(150호변형)
함안상공회의소-송파산대놀이(100F), (주)한국제강-승무(100F)
3.15아트센타-말뚝이(30호변형), 마산시청-나비춤,농악놀이

역임 경상남도미술대전 부운영위원장
    경남여성미술대상전 운영위원
    성산미술대전 운영위원

現. 한국미협 경상남도미술협회 부지회장. 전업화가.

E-mail. woo741690@naver.com

덧붙이는 글 | 양주별산대 등 사진 6개는 개인전 팜플렛에 실은 사진필름을 사용하였고, 양산학춤과 김완수 사진은 직접 찍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다음 블로그에도 기재합니다.



#김완수#아버지의 고향#서남주#양산학춤#양주별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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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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