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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지만 군 시절의 기억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번 기회에  잠시나마 위대했던 군 생활을 반추해 본다.

1987년 12월 24일. 참으로 운(?)좋게도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논산 제 2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훈련소는 동기들만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내부반에서 구타는 없다. 조교들이 군기를 잡기 위한 폭력은 있었으나 자대 배치 후에 자행되는 고참들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는 사실 이 시기가 제일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그렇다. 나 역시 행복한 시간은 얼마가지 못했다. 시위진압 경찰부대로 배치받은 나는 그런 세상이 있는지 처음으로 경험했다. M-16과 군장 대신 방석복, 방폐, 소화기, 사과탄 등 그 당시로서는 생소한 장비들의 사용법은 물론이고 내무부장관부터 분대장에 이르기까지 관등성명을 자대 배치 후 일주일 이내에 머릿속에 집어 넣어야 했다.

구타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관등성명을 한번이라도 더듬거릴 경우, 제한시간 안에 진압장비를 착용하지 못할 경우는 물론이고 군화나 구두에 광이 고참들의 기준(?)에 미달할 경우, 군복의 다림질과 모포가 각이 칼(?)같지 않을 경우, 동기 중 누군가가 고문관 짓을 했을 경우에도 어김없이 구타는 수반되었다.

대학시절 고교 동문회에서나 간간히 경험했던 줄빠따가 일상 생활이 된 것이다. 당시는 군부 독재와 비민주적 요소가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었던 터라 지금 생각해도 그럴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러나 민주화된 사회라고 자부하는 지금 구타의 악습은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 단체생활에서 필요악인 구타는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다.

잠시 생과 사를 넘다들었던 당시 전장터를 회생해 본다. 87년 12월에 입대하여 무사히 제대할 때까지 수많은 격전지(?)를 거쳐왔다. 88년 1월 노태우 대통령 취임, 88 서울 올림픽 개최, 89년 5월 전국적인 파업사태, 9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 10주기를 전후하여 시위와 정치사회적 갈등은 극에 달했다. 당시는 민주화가 진행되던 시기라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시위는 과격했고 반대로 진압방식도 가혹했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던 시기였다.

당시에 구타의 악습을 제거하기 위해 나는 고참 서열에 들기 직전 내무반의 실세 역할을 하면서 많은 조치들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운 점이 많아서 실효를 거두기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구타는 후배들에게 답습되었고 나는 제대했다.

20년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자. 먼저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이 거의 사라졌다. 518 광주사태가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제자리를 찾으면서 광주의 시위가 없어졌다.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군복무 기간 역시 당시 30개월 전후에서 24개월 전후로 단축되었다. 대학시절 전방입소와 병영훈련 과목이 사라진 지 오래다. 병영생활의 의식주 역시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타 문제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군이나 경찰은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타율적인 집단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하는 군과는 달리 경찰은 범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명령과 복종을 중시하고 외부와 단절된 단체생활에서 구타는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구타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방법은 없다고 감히 단언한다. 왜냐하면 미군이나 나토군에도 구타는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결방법 중 하나는 바로 구타 유발자들을 철저히 발본색원하는 것이다. 단체생활에서는 한 사람이나 소수의 의지로는 악습을 제거할 수 없다. 반대로 극소수의 의지만으로도 쉽게 악습에 빠져들 수 있는 곳이 바로 단체 또는 집단이다. 예를 들어 민주화 이후 화두로 대두되는 부패 척결 문제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소위 5대 사회 지도층의 주류를 이루는 정치계, 법조계, 교육계, 의료계, 공무원 사회 등에 만연된 부패를 보자. 소수의 전문 부패꾼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악습이 대다수가 침묵하고 죄의식 없이 따라하고 있는 형국이다. 구타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구타를 유발하는 자들을 찾아내야 한다. 아니 구타 유발자를 찾아 내는데 책임과 권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력을 다하지 않는 사람부터 색출해야 한다. 군과 경찰은 명령과 복종에 강한 조직이기 때문에 구타 유발자를 찾아내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여하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구타가 조직내에서 발생한다면 최상위자를 엄벌해야 한다. 엄벌에 처할 사람은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이 아니다. 그럼 과연 누구일까?

또 다른 방안으로는 구타를 다른 방식으로 양성화하는 것이다. 정당하지 못한 구타는 항상 음성적으로 나타난다는데 문제가 있다. 명령과 복종을 추종하는 폐쇄적인 조직에서 육체적 폭력은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왜냐하면 가장 손쉬운 방법이고 머리를 쓰지 않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효과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양성화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강구해야 한다. 훈련과 교육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경연이나 운동경기도 구타를 대신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장성이 대령을 집무실로 불러 얼차려나 가혹행위를 하는 조직이라면 사병 내무반에서 구타는 아주 당연한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모독도 자행될 수 있다.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상위자가 현명하게 하위자를 따르게 하는 방법은 강압적인 방법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복종을 유도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2년간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대신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는 만큼 구타의 악습을 배우고 제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희생정신, 국가관 등을 기르고 사회로 돌아오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병영구타의 추억 응모글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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