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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 이원면 '이원방조제'를 장식하고 있는 '희망벽화'는 거대한 율동의 파노라마다. 미술이 만들어 내는 명확한 감동의 실체다. 일정 부분 자연훼손의 실체이기도 한 길이 2.7Km, 높이 7.2m, 면적 19440㎡의 방조제에 '에코', '그린에너지', '희망'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장대한 벽화를 그리게 된 것은 발상부터 매우 신선하며 창의적이다.

 

그 일은 태안의 미술인들이 안을 내었고, 주도적으로 앞장섰다. 그만큼 고생도 많았다. 따라서 태안군 이원방조제의 '희망벽화'는 고장 미술인들의 노고와 긍지와 향토애의 응축물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전국의 많은 미술인들이 참여하였지만, 고장 미술인들이 하나같이 사명감을 갖고 주선과 뒷바라지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이원방조제 '희망벽화' 제작 당시 한국미술협회 태안지부장으로서 민간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책임을 지고 모든 일에 앞장을 섰던 문연식씨(현 태안예총 2대 회장)의 노고를 필자는 환히 기억한다. 사상최악의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로 큰 시련을 겪은 군민에게 극복의 의지와 희망을 갖게 하고, 전국에서 달려와 기적을 일구어 낸 123만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원방조제를 태안군의 관광명소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그는 뜨겁게 불태우고 있었다.

 

태안 '희망벽화' 태안군 이원면 내리와 원북면 방갈리를 잇는 '이원방조제' 전면 전체에 그려진 '희망벽화'
태안 '희망벽화'태안군 이원면 내리와 원북면 방갈리를 잇는 '이원방조제' 전면 전체에 그려진 '희망벽화' ⓒ 가우현

필자는 처음에는 이원방조제 자체에 대해 어느 정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훼손의 실체이기도 한 이원방조제에 에코(자연/생태)니, 그린에너지니 하는 말들이 과연 어울리는 것일까? 모순과 부조화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문연식 미술협회 지부장의 명확한 목표를 접하고 '희망벽화'를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다를 막은 방조제를 그냥 시멘트 덩어리 상태로 두지 않고, 다시 말해 자연훼손의 실체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방조제 자체를 '미술작품화' 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정신적 가치창출이 되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태안군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미술협회 지부장으로서 이원방조제 '희망벽화' 민간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문연식씨가 희망벽화에 쏟은 열정과 동분서주한 노고에 대해서는 긴 얘기를 하지 않겠다. 그의 노고는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서 한 것도 아닐뿐더러, 그런 봉사 노고의 질량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들어도 제대로 실감을 할 수 없는 법이다.

 

민간추진위원회와 민간추진위원회를 적극 지원한 태안군 당국의 긴 노고 끝에 드디어 2009년 11월 13일, 이원방조제에서는 '태안 희망벽화 준공 및 세계 기네스북 도전 선포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원방조제 '희망벽화'는 아직 세계 기네스북에는 등재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가장 긴 벽화로 한국기록원의 인증서를 받았다. 재산권은 태안군으로 귀속되었고, 태안의 문화적 자산과 주요 관광 코스가 되었다. 태안군은 '휴양태안'과 '에너지 특구'를 홍보하는 일에 '희망벽화'를 적극 활용한다.

 

포털 사이트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태안군 이원방조제의 '희망벽화'는 수많은 블로그들과 카페들을 장식하고 있다. '태안'을 검색해서 '희망벽화'를 보는 사람들도 많고, '희망벽화'를 통해 '태안'을 조망하는 이들도 많은 것이다.

 

그런데 이 '희망벽화'로 인해 민간추진위원장으로 고생을 한 문연식 현 예총회장이 큰 곤경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14일치 <태안신문>은 '기획취재' 면인 11면 전체를 할애해서 상세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근로자 임금 체불문제로 문 위원장과 박 아무개 사무국장이 피소를 당해 재판을 받게 된 사정과 공판 과정, 또 사업 추진 중에 항목에 맞지 않게 예산이 집행되었다는 이유로 태안군이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민사 판결에 따라 2500여만 원을 문 위원장의 개인 재산에 압류를 건 사실 등을 상세히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의 1500만 원은 2009년 11월 13일 이후 연 20%의 연체료를 적용하면 6000여만 원에 이르는데도 사업주체인 태안군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한다.

 

<태안신문>의 보도 중 후반부를 소개해 본다. 

 

태안 '희망벽화' 태안군 '이원방조제]에 그려진 벽화들 중의 한 작품
태안 '희망벽화'태안군 '이원방조제]에 그려진 벽화들 중의 한 작품 ⓒ 가우현

그렇다면 문 위원장이 길거리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는데도 태안군은 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걸까? 게다가 도의적인 책임으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항목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미 집행한 1,500만원까지 개인 재산을 압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을 거슬러 희망벽화 사업과 관련해 근로자들이 임금을 체불했다며 희망벽화추진위를 상대로 진정서를 제출했던 사건에 대해 최종 3차 공판이 열렸던 지난 2월 9일로 되돌아가보자.

 

당시 근로기준법 위반 재판을 주재했던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형사1단독은 1심 재판을 마무리하면서 책임회피성 발언을 일삼은 태안군 관계자들에 대해 호된 질책을 하며 최종 심리를 마쳤다. 이어 2주 후인 23일 법원은 사업진행과정에서 태안군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 "검찰이 구형한 벌금 3백만 원을 선고하되 2년간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최종판결을 내렸다.

 

이는 법원이 내릴 수 있는 가장 낮은 형태의 처벌로 법원은 추진위의 핵심간부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책임을 물었지만 태안군의 책임도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판결문에서는 태안군의 책임한계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결국 희망벽화 사업의 흠집을 냈던 근로자 임금체불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검찰이 고등법원에 제출한 항소심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근로자들이 추진위만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재판에서 법원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고, 손해배상은 결국 추진위의 몫이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태안군은 도의적인 책임은커녕 희망벽화 준공검사를 하면서 군이 지원한 보조금 중 항목에 맞지 않게 집행했다며 1500만 원에 대해 문 위원장에게 압류를 걸어버렸다.

 

이와 관련해 태안군 관계자는 "재판 결과에 따라 본인(문 위원장, 박 사무국장)들이 알아서 해결을 해야 한다"며 "군에서는 규정대로밖에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내 지갑을 털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잖느냐."는 냉담한 반응이다.

 

문 위원장은 "군수와 면담을 가졌지만 군에서 재산압류를 미뤄주겠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 뾰족한 해결방안은 나오지 않아 답답한 심경"이라며 "사업추진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한국기록으로 인정받은 인증서도, 재산도 모두 군으로 귀속돼 (희망벽화가) 군의 홍보에 기여를 하고 있는데도 모른 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격앙된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기네스 등재, 휴양태안 홍보 등 태안군 홍보에 일조하고 있는 희망벽화. 사업추진 과정에서 근로자 임금체불로 흠집이 나긴 했지만 결국 태안군의 대표적인 관광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희망벽화에 얽힌 실타래가 과연 태안군을 배제한 추진위만이 책임져야 할 몫인지 곱씹어 볼 때다.

한국기네스북 인증서 ‘태안 희망벽화 준공 및 세계 기네스북 도전 선포식’ 행사(2009년 11월 13일) 때 '한국기록원'으로부터 '한국 최장벽화' 인증서를 받고 기념촬영을 했다. 오른쪽 문연식 민간추진위원장, 진태구 군수, 맨 왼쪽은 이용희 당시 태안군의회의장.
한국기네스북 인증서‘태안 희망벽화 준공 및 세계 기네스북 도전 선포식’ 행사(2009년 11월 13일) 때 '한국기록원'으로부터 '한국 최장벽화' 인증서를 받고 기념촬영을 했다. 오른쪽 문연식 민간추진위원장, 진태구 군수, 맨 왼쪽은 이용희 당시 태안군의회의장. ⓒ 가우현

태안신문의 보도를 통해 사건의 전후좌우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마지막으로 남는 생각은 '고장을 위해서 한 일이 덫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고장을 위해서 한 일이 결국은 덫이 되고 마는 현상 앞에서, 앞으로는 유사한 일에 군민들은 몸을 사려야 할 판이라는 생각도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사업추진과정에서 항목 외 예산 집행과 임금 체불이라는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런 과실에 민간추진위원회의 공과 노고는 송두리째 묻혀 버린 느낌이다. 왜 민간추진위의 공과 노고는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그런 과실에만 태안군은 집착하고 몰두하는 것일까?

 

공은 공이고, 과실은 과실이라고 보는 것일까? 과실만을 생각하고 공은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일까? 공과 과실을 균형 있게 보고 융통성을 발휘할 수는 없을까?

 

과실만을 보고 공과 노고는 도외시하는 그런 태도 속에 혹여 모종의 '미운 털'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혹 미운 털이 박힌 점이 있다면, 그것을 대범하게 감싸 안는 것이 더욱 대인적인 행동양식이 아닐까?

 

이원방조제 '희망벽화'는 말 그대로 '희망'을 포유하고 발산하는 벽화다. 동기도, 주제도, 내용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런 '희망벽화'의 사업추진을 담당한 민간추진위의 책임자가 큰 곤경에 처한 사실은 이율배반이고, 희망을 거스르는 음영이다. 그것을 말끔히 치유하고, 모두 함께 희망벽화 앞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 일에 태안군이 앞장서야 한다. 어차피 열쇠는 태안군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마치면서 2009년 11월 13일, 이원방조제 현장에서 거행되었던 '태안 희망벽화 준공 및 세계 기네스북 도전 선포식' 행사 때 필자가 낭송했던 축시를 소개한다.      

       

               

축시

 

 

태안의 희망, 무지개 잔치를 보다

 

                      

오늘, 2009년 11월 13일

아스라이 펼쳐진

태안 이원방조제 위에서

형형색색의

무수한 꽃잎들을 본다

억만 송이, 만개한 꽃들이 연출하는

거대한 율동의 파노라마!

율동은 율동을 낳고

생동은 생동을 부르며

서로 힘껏 껴잡고 이어져서

한달음에 온 태안 땅을 휘감더니

돌연 힘차게 날아올라

하늘을 뒤덮는 새떼가 된다

온 하늘을 현란하게 장식하는

억만 마리 새들의 군무!

그 군무 속으로

빛다발 같은 용오름이 보이더니

용오름은 찬란한 쌍무지개가 되었다

무지개 속에는 오색 빛깔이 있다

열정이라는 이름의 빨간빛

수확이라는 이름의 노란빛

생명이라는 이름의 초록빛

희망이라는 이름의 파란빛

영광이라는 이름의 보랏빛

검은 기름이 가져왔던

재앙과 시련의 언덕 위에서

저 오색 무지개를 만드는

태안 이원방조제 희망벽화

오늘 이곳의 희망벽화는

우리 태안의 자랑이며 상징이다!


#희망벽화#태안군#이원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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