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인 개념이나 사물을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냄. 또는 그렇게 나타낸 표지(標識)·기호·물건 따위"를 일컫는 말을 "상징"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 사회를 잘 드러내주는 상징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물어본다면 다양한 대답을 나올 것이다. 4대강 사업, 무상급식주민투표, 평창동계올림픽, 갤럽시탭의 독일 판매 금지 등.
그럼 한국의 노동 현실을 잘 보여주는 상징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자본과 노동,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어떤 상황에 놓요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이라는 말이다.
지난 목요일 (8월11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멀리서나마 보았다. 3번에 걸쳐 부산을 향했던 희망버스에는 동승하지 못하고, 내가 가서 본다고 상황이 바뀔 것도 없지만 "그래도 그런 상징 앞에 서서 마음에 가지고 있던 죄송한 마음이라도 씻어야지"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영도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때 김진숙 위원장과 지인으로 지내면서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을 음으로 양으로 돕고 있던 "Soo"님을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내려갔다. 하지만 딱히 몇 시라고 하는 정해진 약속 시간이 없던터라 오후 즈음에 혼자서 한진중공업 정문에서 하차해 85호 크레인 맞은편까지 천천히 걸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걸어가던 중에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조남호는 청문회에 출석하여 한진사태의 진실을 밝혀라."
플래카드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저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위치가 봉래초등학교 정문 근처였는데, 바로 담장 밑에는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세 명이 담장을 그늘 삼아 돗자리를 펴소 크레인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크레인 맞은편으로 점점 다가갈 즈음에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전경 두 명이 크레인 앞 담장을 왕래하며 순찰하고 있었다. 저렇게 높게 드리워진 담장을 왜 감시하고 있을까 하고 의구심이 들었지만, 직접 가서 물어볼 수도 없는 문제이고 해서 그냥 의문부호만 머릿속에 계속 붙이고 있었다. 크레인 맞은편 자리에서 보기만해도 어지러운 높이의 크레인을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약속했던 Soo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만나러 와주셨다. 그렇게 생전 처음 보는 분과 오직 한진중공업이 인연이 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기만 했다. Soo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Soo님께서 "트위터 하시면 김 위원장님께 멘션 날려보세요. 좋아하실예요."라고 하셨다. 순간적으로 "에이, 뭐 대단한 사람 왔다고 그래요. 괜찮아요." 했는데, "그럼, 통화라도 잠시 해 보실래요?" "에? 통화가 되요?"라고 말하자마자 버튼을 누르시더니 김 위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시고 바꿔주신다. 순간적으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안부도 묻지 못하고, "안녕하세요, 제 후배가 조그만 인터넷 신문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나중에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러세요." "아~ 감사합니다." 이게 무슨 경우인지. 속으로 얼마나 죄송했던지. 어쨌든 김 위원장님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서울에서 내려갈 때부터 기회가 되면 해봐야지 했던 인터뷰 약속도 잡을 수 있어 서울에서 내려 온 목적은 다 이루었구나 했다. 통화를 마치고 멈추었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해고 노동자 두 분께서 우리에게로 다가오셨다. 한 분은 Soo님께서 나를 위해 한진중공업을 둘러볼 수 있도록 부탁해 놓았던 "철"이라는 분이었고, 또 한 분은 이름도 여쭈어보지 못했던 분이다. 그렇게 네 명이서 모이자 화제는 당연히 모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네 명이서 한 목소리가 된 것은 "그 방송사가 어떻게 그런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지" 하는 것과 "그나마 한진중공업 사태의 사실에 제일 근접해 있다"는 평가였다. 그런데 통성명도 하지 못했던 노동자분께서 한 가지 억울한 사실과 웃기는 풍문 또 하나를 이야기해 주셨다.
"희망 퇴직자 받을 때요, 퇴직금을 한꺼번에 다 준 것도 아닌기라요. 그게 믄 말인지 알지요. 나중에 회사 어렵다카고 돈 읍다고 더 기다려 달라카면 퇴직금도 못받는 기라요. 그게 공수표 아니고 뭔교." "그라고 85호 크레인을 완전히 병신 만들라 한다 카데요. 85호랑 똑같은 크레인 하나 더 만들어 가지고 일 계속한다고 하든데, 크레인 만드는데 돈이 한 두푼 들어가야지. 하여간 그런 말도 있어요."
또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Soo님께서 일을 위해 돌아가셔야 하는 상황이라 철님과 나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철님께서 해고 노동자들의 숙소 겸 사무실에 잠시 들러 차라도 한 잔 마시자고 하셨다. 사무실 위치가 어디일까 했는데, 한진중공업 정문 바로 맞은편 골목 끝에 위치한 문을 닫은 식당이었다.
철님에 의하면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 정상화를 위해 사무실을 내려고 했을 때 어려움이 많았단다. 먼저는 사측의 방해가 심해 아무도 공간을 내주려고 하는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진중공업 회사 근처에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식당들이 제법 있는데, 한진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문을 닫는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그 중의 하나를 정말 어렵게 임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소나기를 맞으며 찾아간 사무실에는 마침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와 감자의 껍질을 열심히 벗기고 있는 분들도 계셨고, 손질한 양파를 잘게 써시는 분도 계셨고, 어머니 한 분께서는 쌀을 씻어 밥을 밥통에 넣고 계셨다. 솜씨들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면서 다들 이 생활이 오래되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사무실 들어가자 마자 시원한 물 두 잔 커피 한 자만 마시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준비하고 있는 음식에 들어갈 양파의 양이 엄청났던지라 연신 눈물을 흘려야했기 때문이었다. 커피 한 잔을 얻어마시고 양파의 위력을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 사무실 밖으로 나왔는데, 사무실에 들어갈 때는 무심했던 내게 쓰레기통 뚜껑을 철님께서 보여주셨다. 다름 아니라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여러 가지로 재정 문제가 많이 어려워 자구책의 일환으로 사용하고 있는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위한 쓰레기통의 뚜껑이었다. "돈이 많이 들어가고 돈을 구할 곳은 점점 없어지니까 아이디어를 하나 둘 내기 시작했죠. 쓰레기 분리수거 해서 나오는 재활용품 팔아서라도 버티자고 했죠."
그런 다짐을 표현했을까 쓰레기통 뚜껑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잠깐! 우리 복직을 위하여 분리수거 합시다! 폐지"
처음 쓰레기통 뚜껑을 보여주셨을 때 철님과 서로 웃기도 했지만, 동생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정말 어렵게들 생활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무겁기만 했다. 아직 회사 정상화까지 얼마의 시일이 더 소요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계속 생활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짐이라도 덜어 볼 이기적인 요량으로 찾아간 영도 방문은 완전히 실패한 채 서울로 상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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