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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보면서 나는 매우 의아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은 군에 의해 적어도 2002년에 공식적으로 제기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투표도 있었고, 당연히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다. 이 반대에 한 군관계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군의 입장에서 보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또 당연한 것이었다는 말로 들린다.

 

이 '당연한 반대'와 '놀라운 반대'는 그 후 주민들의 '당연한 반대'로 이제나 저제나 하다가 2005년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언되면서 '당연한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군에서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어야 한다고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공식적인 거론, 즉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은 앞서 밝혔듯이 2002년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되고, 그 계획이 고시 된 것이 2001년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논의된 시기와 제주 '국제자유도시'가 논의 된 시기가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해군기지'와 '자유도시'가 해당부처 간에 설왕설래 했다고 치자. 그 후 제주가 2001년에 '국제자유도시'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은 해군기지 건설이 무효화 되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국제자유도시는 성격상 군사도시의 얼굴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군대는 특정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런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에 국제자유도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막대한 군사적 이익에도 싱가포르가 영국 해군기지를 버리면서까지 싱가포르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어 오늘날의 성공을 이룬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행정부의 복수극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군에서 이야기하는 "안전 없이 자유 없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 만큼 제주 남해상의 교역로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칭기즈칸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가장 안전한 동서 교역로가 보장되었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분단상황에서 제주 남방항로는 부산, 여수, 광양, 울산, 목포 등 우리나라의 주요항구로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다.

 

군에서 되풀이해서 주장하는 "군사적 요충", "유사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과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이와 같은 비상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군사적으로 극히 타당한 말이고, '비상상황'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비상상황'을 대비해 몇 시간 더 빨리 출동이 가능하다는 걸 두고 더 소중한 인류의 자산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군의 입장에서 보면 귀에 피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온 생태 환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국제자유도시', 해군기지건설계획, '평화의 섬', 그리고 다시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뭐가 뭔지 모르게 부처 간에 아무 합의도 없이 마구잡이로 추진되어 온 행정부의 무능을 탓하려는 것이다.

 

결국 좌파 운운하며 잃어버린 10년을 보상 받으려는 행정부의 복수극이 다시 제주에서 재현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고, 거기에 부응해 이 참에 접어 두었던 계획을 다시 밀어 붙이려는, 군의 입장을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제주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제주 해군기지건설 찬성자이든 반대자이든 내용의 핵심 대 핵심으로 한 번도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군'이란 단순논리에서 벗어나자

 

 

군에서 흔히 하는, "군대는 싸우지 않으려고 만드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순환논리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되겠지만, 군의 목적은 자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다. 군사팽창주의가 위험한 것은 군사적 팽창을 위해 군이 사용되면서 자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한다는 군의 논리는 그래서 이런 순환오류의 위험성이 있다. 중국은 세계2차대전에서 제주도로부터 이륙하는 공군력에 크게 당한 바가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면 중국쪽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하다. 중국에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있다. 제주 해군기지가 아무리 평화적인 안전을 위해 사용한다고 주장해도 이미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은 중국에 있어 솥뚜껑이다. 군은 "안전 없이 자유 없다"는 말로 '안전=군'의 뻔한 관계로 규정하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안전이 왜 꼭 군사적 행동으로만 등항관계가 성립하겠는가?

 

앞서 든 예처럼 "싸우지 않으려고 군대를 만든다"는 농담이 순환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군은 철저하게 국제관계의 인드라망(한없이 넓은 그물.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도 영원한 우리의 우방일 수 없고, 중국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국제자유도시의 하나인 싱가포르는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알다시피 싱가포르는 말레카 해협을 통과하는 관문이다. 중요한 해상로였고,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리고 1965년 당시 싱가포르에 있던 영국의 해군기지는 싱가포르 지역경제를 지탱해 주는 핵심이었다. 그런데 영국은 이 해군기지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리콴유 수상이 해군기지 철수를 막기 위해 "안전 없이 자유 없다"는 논리로 영국군의 철수를 막으려 하다 실패하자, 사람들은 모두 싱가포르가 곧 붕괴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남겨진 군사시설과 토지의 효율적 이용으로 세계의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전력을 다했고, 지금은 가장 찬란한 국제자유도시로 성장했다. 힘의 논리가 싱가포르의 안전을 지켜준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국익, 평화 논리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군의 말처럼 제주 남방항로가 이론의 여지가 필요없을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중요성을 어떤 방식으로 지키는가 하는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언된 이곳에서 인접 국가를 위협하는 해군기지가 세워지는 것이 과연 옳은가? 오히려 제주 남방항로의 중요성은 정말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듦으로써 더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군은 '수유갑병 무소진지(雖有甲兵 無所陳之:갑옷과 군대가 있어도 진칠 곳이 없다)'는 노자의 말을 잘 새겨야 할 것이다. 노자의 말과 손자의 병법은 한 끗 차이다. '무위(無爲)'와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말은 같다. 군은 우리의 해군이 인접국가에 비해서 약하다고 말한다. 강해지려면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져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의 국익은 군사적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의 논리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제주도에서 지키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태그:#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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