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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강정마을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폭염의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왔고, 어떤 이는 프랑스에서 왔고, 또 어떤 이는 날 때부터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평화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강정마을 찾은 이들을 '자발적 평화유배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자발적 평화유배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열 한 번째로 '강정당' 당수가 된 '춤추는 날라리' 김세리씨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아무 생각없이 '날라리 치마' 입고 2박3일 일정으로 강정마을에 온 '춤추는 날라리' 김세리씨. 이제 그는 소환장을 네개나 받은 '확신범'이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날라리 치마' 입고 2박3일 일정으로 강정마을에 온 '춤추는 날라리' 김세리씨. 이제 그는 소환장을 네개나 받은 '확신범'이 되었다.
ⓒ 김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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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전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날라리'라는 단어를 한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넣었더니 '언행이 어설프고 들떠서 미덥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그나마 진화된 풀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안 하는 학생으로 말썽을 일으킴'이다. 이 풀이엔 '오픈사전'이란 단서가 붙어있다.

하지만 근래 날라리에 대한 사회적 관계 풀이와 해석은 사전의 의미와 크게 다르다. 사전은 날라리를 매우 부정적인 사회적 존재로 규정한다. 그런데 2011년 한국 사회에서 날라리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발랄하고 똑똑하며 재능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날라리는 매우 긍정적 존재이며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배우 김여진씨와 방송인 김제동씨 등이 오늘날 날라리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제주 강정마을에도 날라리가 있다. 그 스스로의 안내처럼 "한때 무용을 했으나 전문 무용은 접은, 그렇지만 여전히 세상과 춤추고 있는" 날라리 김세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배우 김여진씨가 '외부세력'을 몰고 다닌다면, 그는 '당원'을 몰고 다닌다. 그는 '온라인 강정당'의 당수이다. 그는 벌써 약 400명이 넘는 '진성당원'을 거느리고 있다. '강정당'이라는 당명이 말해주듯 '당 강령'의 핵심은 강정마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강정마을 '날라리', 눈물의 힘을 믿다

"2011년 4월 1일에 생명평화결사가 강정마을에서 주최하는 문화제가 있었어요. 영화상영을 초대 받아서 왔지요. 그래서 한 2박 3일 정도 일정으로 '날라리 치마(그는 길이가 길고 주름이 많으면서 너풀거리는 치마를 이렇게 표현했다)' 입고 아무 생각 없이 왔지요.

마을 의례회관에서 4.3을 다룬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터>를 상영했는데, 영화평론가 양윤모(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으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석방) 선생님이 엄청 우는 거예요. 동네 할아버지들과 함께 봤는데 양 선생님이 '너무 위대한 영화'라고 극찬을 하시면서 '내가 이곳에 왜 있어야 하는지 알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 어떤 진정성이 그분으로 하여금 3년 동안 바닷가를 지키게 했을까,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럴까…. 

그 다음날 새벽에 일출을 보러 중덕해안에 갔죠. 구럼비를 맨발로 걸었어요. 그때의 충격이란…. 그 거대한 바위에 파도가 치는데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이었어요. 봄이라 야생화는 바위 주변에 지천으로 피었구요. 꽃 하면 미치는 여자인데 운명 같은 날이었고, 운명 같은 아침이었어요. 구럼비를 반쯤이나 걸었나... 눈물이 줄줄 계속 나오는 거예요."

왜 운명의 순간엔 항상 그렇게 벼락 치듯 눈물이 쏟아지는 것일까. 우연의 뒤에 숨은 인생의 필연을 스스로 지켜보는 게 그렇게 눈물나는 일인 줄 예전엔 알았을까.

당위가 아닌 눈물로 새 길 떠난 이들에겐 특징이 있다.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든 사회구조든 위력을 발휘해 제압하고 관철하려들면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힘센 자가 아닌 여린 이를, 많이 가진 자가 아닌 가난한 이웃을 눈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구분할 수 있다면, 분별할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니다. 가늠지어 말할 수 있다면 계산되어 행할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니다. 말로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 몸으로 결코 증명할 수 없는 바로 그것, 사랑! 해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그가 맨발 걷기 좋아하는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있는 구럼비 바위. 한 바위가 무려 1.2km에 달한다. 해군은 이 바위를 깨 평평하게 고른 다음 해군기지 부두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가 맨발 걷기 좋아하는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있는 구럼비 바위. 한 바위가 무려 1.2km에 달한다. 해군은 이 바위를 깨 평평하게 고른 다음 해군기지 부두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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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여기 구럼비가 시멘트로 덮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내 자신에게 충격받았어요.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그래서 이제까지 내 머리에 입력된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대한 정보는 전부 다 지우고, 다시 보자 마음을 먹었어요.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가 한낱 문자일 뿐이고, 이런 정보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안의 진실'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사실 하나만 따져도 충분했다. 한  두 푼도 아니고 9800억 원 들여 국책사업을 한다면서 찬반 의사를 묻기는커녕 그 흔한 요식 절차인 사업설명회나 공청회 한 번 하지 않았다. 주민 725명이 투표에 참여해 680명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했는데 공사는 강행되었다. 차마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 국가라는 이름과 힘으로 버젓이 자행되었다. 명백한 국가폭력이었다.

이를 항의하는 주민들은 하나둘씩 범법자 취급을 받았다. 잡혀가고, 벌금 내면 또 소환장이 날아오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국가 폭력을 강정마을 주민들은 4년 넘도록 당했다.

"4년을 싸운 사람들이 이토록 맑다니..."

도와주는 유력 정치인 한 명 없었다. 함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 하나 없었다. 도와주러 왔다가도 사흘 지나면 다 뭍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4년을 외딴 섬마을 사람들은 섬이 되어 버텨냈다. 그랬다. 그것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하루만 더 있다가 가자, 하루만 더 있다가 가자. 나라도 저 분들 동무가 돼 드리자.' 그렇게 열흘이 흘렀고, 한 달이 갔다. 이제는 머물기로 했던 날과 머물렀던 날들을 계절로 기억할 뿐이다. 봄에 와 여름을 나고 이제 가을의 첫 자락을 만나고 있다.

"4월 5일이었어요. 공사 강행을 막던 양윤모 선생이 폭행당하고 연행되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언론사에 다 전화를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 거예요. 화도 나고 분하기도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트위터를 통해서라도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리자고 마음 먹었어요. 원래 트위터를 많이 했고 그때 마침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 트위터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죠.

열 받아서 올린 트위터 글에 친구들의 반응이 오기 시작하더라구요. '이런 일이 있는지 몰랐다' '다 끝난 줄 알고 있었다'... 그때 한 트위터 친구가 제안을 했어요. 온라인 강정당을 만들어서 조금 더 조직적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사실 저는 별로 원하지 않았어요. 제가 어떤 모임 만들어 리더를 해본 적이 없고, 또 사람들 지시하며 끌고 다니는 체질도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름 이상을 고민하다가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함을 알리는 길은 트위터 외엔 방법이 없겠다싶어 5월 1일에 개설했죠."

'날라리 친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강정당 첫 사업은 제주도지사에게 공사를 직권으로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자필 서명운동. 온라인 서명운동도 아니고 자필로 서명해서 우편으로 부쳐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는 내심 '한 5000명만 모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그의 기대와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한 달 만에 무려 2만6313명이 자필로 서명한 용지를 우편으로 제주로 보내온 것이다.

"홍보 프린트 하나 없이 오로지 트위터를 통해 140자로만 홍보를 했어요. 그리고 제가 대중들의 인기가 높은 스타 연예인도 아닌데 전국에서 그렇게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다니…. 얼마나 감동했는지 몰라요.

보수언론들이 떠들듯 저는 외부에선 온 '전문 싸움꾼'도 아니고 제 멋대로 사는 기 세고 유별난 여자일 뿐이에요. 군사문제니 국책사업이니 이런 것들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사회 문제에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고 살아오지도 않았죠. 하지만 최소한의 상식은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든, 누가 하든지 부당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상식이 있어요. 상식이 짓밟히면 사람은 누구나 분노하죠. 저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일 뿐이에요."

강정마을에서 그는 누구 못지 않게 바쁘다. 희한한 것은 그를 포함 강정마을 사람들 표정이 한결같이 밝다는 것이다.
 강정마을에서 그는 누구 못지 않게 바쁘다. 희한한 것은 그를 포함 강정마을 사람들 표정이 한결같이 밝다는 것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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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강정마을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또 다른 면을 발견했다며 웃었다. "머리나 마음으로 떠올리는 발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려 하고, 부당한 것과 싸우려는 싸움꾼의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 풋내기 '날라리 싸움꾼' 앞으로 4개의 소환장이 날아와 있다.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다. 겪어본 적이 없어서 소환장이 뭔지를 잘 모르겠다고 한다. "뭘 모르니까 무모할 수도 있겠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감수해야 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마음이 내 안에 있다"고 했다.

'춤추는 날라리'를 '확신범'으로 만들어버린 주범은 누구일까. 그는 "군사주의와 부당한 공권력"이라고 단박에 말했다. 그는 "어떤 무력도 나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고 했다.

"해군은 강정마을 사람들에게 진다"

"원래 여행을 좋아해요. 제 안에 집시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여행은 내 밖의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여행을 하다가 뭔가 문제를 만나게 되면 또 싸우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번에 깨달았는데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면 싸우게 되는 것 같아요. 싸우면서 심연이 깊어지고 단단해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풍부해지고….

강정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구럼비가 내 감각의 세포를 살아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여기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요. 마을 주민도 그렇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그렇고요. 이익을 통해 맺어진 관계가 아니고 사랑과 믿음, 신뢰를 통해 맺어진 아름다운 관계죠. 사람들을 보면서 또 사람들의 관계에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삶을 경험하고 있어요."

한 번이라도 강정마을을 걸어본 이들은 누구나 안다. 험한 싸움을 4년 넘게 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표정이 밝다. 얼굴엔 미소가 그윽하고, 건네는 말엔 살가움이 가득하다. 무엇이 이들을 이처럼 평온하게 하는 것일까.

"구럼비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말예요. 구럼비와 강정마을을 인간인 우리가 바동바동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구럼비는, 강정마을은 바다가 지킵니다. 이번에 태풍이 불었잖아요? 태풍을 보면서도 인간의 자본과 힘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강정바다는 느끼게 해주잖아요. 강정바다는 평화 그 자체예요. 4년 동안 지옥을 살듯 처절하게 싸워 오신 분들이에요. 지금도 논밭에서 일하다가 싸우러 오시죠. 처음엔 이해를 못했어요. 어떻게 저렇게 맑을 수 있을까···.

바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순환되고 치유받고 위로받는 것 같아요. 만약 이 싸움이 도시에서 벌어졌다면 다들 정신병자 돼서 다 떨어져 나갔을 거예요. 그런데 강정마을 사람들 보세요. 어느 지역 싸움하시는 분들보다 에너지 넘치고 밝고 즐겁잖아요. 바다라는 이 거대한 공간이 주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 싸움은 10년 갈 수도 있고, 20년 갈 수도 있어요. 분명한 것은 먼저 지쳐 떨어져 나가는 것은 해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을 사람들은 강정바다에서 기운을 받고, 해군은 그런 바다를 힘으로 지배하려기 때문이죠."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는 요즘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글쓰기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몸으로 내 안을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과 춤추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물론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강정바다. 바다는 그에게 민살풀이 춤의 명인 조갑녀가 춤꾼에게 강조하는 '대범함'을 선물했다. 인생이라는 그의 춤이 자유로운 것은 대범하기 때문은 아닐까.

"춤이 안겨 오면 힘든 줄 몰라. 춤이 안겨 오려면 가슴을 넓게 열어야 해, 대범하게! 큰 마음에 큰 춤이 깃드는 것이여." - 민살풀이춤 명인 조갑녀.


태그:#강정마을, #해군기지, #제주도, #김세리, #날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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