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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노모리 호슈는 어떤 사람인가?

 이즈하라 쇼핑센터
 이즈하라 쇼핑센터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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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즈미 신사를 보고 나서 우리 모두는 다시 이즈하라로 간다. 그곳 쇼핑센터에서 필요한 물건과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다. 그러나 나는 아메노모리 호슈의 흔적을 찾기 위해 혼자 길을 찾아 나선다. 호슈는 대마도에 거주하면서 조선 후기 한일 문화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외교관이자 역관이다. 나는 먼저 아메노모리 호슈를 현창하기 위해 만든 성신교린비를 다시 한 번 찾아간다. 이 비석은 고려문 옆에 있다.

그는 1689년 대마번주의 가신이 되어 에도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마번주의 명령으로 나가사키로 가 중국어를 배우게 된다. 1693년에는 대마번으로 건너가 대조선 업무를 담당하는 보좌역이 된다. 이때 아메노모리 호슈는 대마번의 재정상황, 대마번의 대조선 약조와 전례, 조선어 역관 등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 1702년에는 소우 요시자네의 은퇴를 알리기 위해 조선을 방문한다. 그리고는 1703년과 1705년 조선어를 배우기 위해 부산으로 건너간다. 그렇게 해서 그는 정치, 경제, 의전, 언어 등 모든 측면에서 조선통이 된다.

 아메노모리 호슈 초상
 아메노모리 호슈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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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711년과 1719년 대마도를 통해 에도로 가는 조선통신사들을 접대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것이 그를 당대 최고의 외교관으로 만들었다. 1711년 조선은 도쿠가와 이에노부(德川家宣)의 습직을 축하하기 위해 통신사를 파견했다. 이때 정사는 조태억, 부사는 임수간, 종사관은 이방언이었다. 이때의 기록은 부사였던 임수간이 <동사일기>로 남겼다.

통신사 일행은 7월 4일 부산을 떠났으나 정사와 종사관 배만 대마도 사스나우라(佐須奈浦)에 도착했다. 부사의 배는 부산으로 돌아와 15일 아침 다시 출항해 밤늦게야 사스나우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들 통신사는 8월 9일 이즈하라를 떠나 이키도의 유모토우라(風本浦)에 도착한다. <동사일기> 내용을 보면, 통신사 일행이 대마도에 체류하는 동안 우삼동(雨森東)이라는 인물이 두 번 이들을 방문한다. 그 우삼동이 바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의 조선식 이름이다.

1719년에는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습직을 축하하기 위해 홍치중을 정사로 하는 통신사가 파견되었다. 이때 제술관으로 신유한이 선택되어 가게 되었고, 그는 <해유록>을 통해 저간의 사정을 자세히 기록했다. 6월 20일 부산포를 떠난 통신사 배는 저녁에 사스우라에 도착한다. 이들 일행은 27일 대마도주가 있는 이즈하라에 도착하여 서산사 등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다음 날 우삼동이 제술관으로 온 신유한을 방문한다.

 서산사에서 바라 본 이즈하라 풍경
 서산사에서 바라 본 이즈하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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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우삼동(雨森東)이 나의 사관에 나와 보기를 청하는데 머리에는 흙색 세모가 난 관을 쓰고 두 폭 아롱진 적삼을 입어 보기에 놀랍고 괴이하였다. 내가 서기와 더불어 서서 마주보며 두 번 읍하고 앉았다. 내가 본시 그 사람이 한어(漢語)에 능통하고 시와 문을 말할 줄 알아 일본에서 제일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오자마자 자진해서, 신묘년(1711년)에 사신으로 왔던 여러분들과 교분이 매우 깊었었다 하며, 이중숙(李重叔)의 문장과 풍채(風采)로 어찌 오래 살지 못하였느냐고 자주 말했으며, 또 이종사(李從事)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기에 내가 양자한 아들이 있는데 글을 읽었어도 과거하지 못했다고 했더니, 그가 슬퍼하기를 마지아니하였다.

내가 묻기를, '공의 시명(詩名)이 꽤 널리 알려졌는데, 그 동안 외우고 익힌 것과 저술한 것이 얼마 되는가?' 하였더니, 그가 놀라며 사례하기를, '젊을 때에도 남 같이 못했는데, 늙어버린 지금 어찌 감히 공의 말씀에 대답하겠습니까.' 하였다. 술과 과일을 대접하며 조금 이야기하다가 다시 읍하고 갈렸다. 그 형상을 보니, 얼굴이 푸르고 말이 무거우며 마음속을 드러내지 아니하여 자못 문인(文人)의 소탈한 기상이 없었다. 현재 나이가 52세인데 모발이 반쯤 희었다."

이후 신유한과 우삼동은 에도까지 동행하며 고운 정 미운 정을 다 겪는다. 그리고 대마도로 다시 돌아와 12월 28일 우삼동과 작별하면서, 신유한은 다음과 같은 전별시를 지어준다. 

오늘밤 정을 못 잊어 나를 전송하는데             今夕有情來送我
이승에서는 다시 그대를 만날 길이 없겠구려.   此生無計更逢君

 홍치중의 국서
 홍치중의 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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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우삼동은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지금 늙었습니다. 감히 다시 세간의 일에 참여할 수 없고, 아침이나 저녁에 마땅히 섬 가운데에서 귀신이 될 것입니다.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원하건대, 여러분은 본국에 돌아가 조정에 등용되어 영화로운 이름 떨치기 바랍니다."

그러나 신유한은 우삼동에게서 큰 뜻을 펴지 못하고 늙어가는 노회한 외교관의 면모를 찾아낸다.

"내가 그 형상을 보니, 험하고 독하여 평탄하지 못하였고, 겉으로는 문장을 한다고 핑계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창과 칼을 품고 있다. 만약 그로 하여금 국가의 높은 지위에서 권력을 잡게 하였더라면, 반드시 이웃 나라에 일을 내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국법에 국한되어 작은 섬의 한 개의 기실(記室)에 불과하여 그 땅에 살다가 늙어 죽게 되는 것을 부끄러이 여기는 것이니, 이별하는 자리의 눈물은 곧 자신의 처지를 슬퍼한 것이다."

아메노모리 호슈의 흔적을 찾아

 장수원
 장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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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아메노모리 호슈가 잠들어 있는 장수원(長壽院)을 찾아 간다. 장수원은 이즈하라 시내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시내를 관통하는 382번 도로를 따라 하치만구 신사를 지나서 대마 남경찰서까지 가야 한다. 거기서 길을 건너 농협을 끼고 하천을 건너면 장수원으로 이어지는 똑바른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200m쯤 가면 왼쪽으로 장수원이 있다.

절 앞에는 아메노모리 호슈에 대한 글과 묘를 찾아가는 지도가 있다. 나는 지도에 표시된 대로 절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중간 중간 아메노모리 호슈의 묘라는 일본어 표지판이 있고, 한 군데는 우리말 표지판도 있다. 길에 나무가 우거져서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산하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니 길이 끝나는 지점에 우삼방주선생묘(雨森芳洲先生墓)라는 비석이 보인다.

 아메노모리 호슈의 묘
 아메노모리 호슈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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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아메노모리 호슈의 가족묘다. 선생의 오른쪽으로는 부인인 소하유인묘(小河孺人墓)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우삼현철거사묘(雨森玄澈居士墓)가 보인다. 아마 현철이 아들이나 자손인 것 같다. 호슈의 묘에는 꽃과 물이 놓여 있다. 그는 1755년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고,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그는 <린교시말물어>라는 논문을 써 조선과 일본의 교린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일본 최초의 조선어 교재인 <교린수지>를 집필했다. 더욱이 1728년에는 교린을 통한 외교 실무를 다룬 기본서 <교린제성>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성신교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의 실용주의적 외교노선을 알 수 있다.

 성신교린
 성신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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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이라는 것은 진실한 뜻을 말한다. 서로 속이지 않고 싸우지 않고 진실로 교류하는 것을 성신이라 한다. 그리고 서로의 실익을 존중하는 태도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신사를 접대함에 있어서는 알기 쉽게 설명하고,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준비해야 한다."

숯불 바비큐를 즐기는 시간

아메노모리 호슈를 만나고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으로 숯불 바비큐가 마련되어 있다. 숙소 마당 한가운데 숯불이 피워져 있고, 우리가 구워먹을 해산물과 고기가 마련되어 있다. 5명이 한 조가 되어 숯불 주위에 둘러앉는다. 먼저 고등어와 가리비가 석쇠에 올려지고, 이어 고기와 호박, 가지 등이 올려진다. 고기에는 양념이 되어 있다.

 숯불 바비큐
 숯불 바비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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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축하는 의미에서 소주와 맥주도 한잔씩 돌린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마당에서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작은 파티를 연다. 민박이 호텔만 못한 점이 있지만, 이렇게 회원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장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조금은 긴장을 풀고 대마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늦게까지 담소를 나눈다.

파티가 끝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낮동안 햇볕이 아주 강했는데, 그 더위를 식혀주려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와 소나기 쏟아지는 바다를 바라본다. 마당에는 또한 생선과 고기 냄새를 맡은 고양이들이 왔다 갔다 한다. 내일은 상대마 쪽으로 올라가 그곳의 문화유산과 우리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고 히다카츠항을 통해 부산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메노모리 호슈#성신교린#조선통신사#신유한#우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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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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