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1차 희망버스를 타고 담을 넘었다. 그 때 김진숙 위원은 단호하지만 슬픈 목소리로, 이제까지 내가 들어 본 어떤 연설보다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기는 오는군요. 이런 해방감 맛본 게 얼마만입니까. 오작교가 돼 등이 벗겨지더라도 조합원과 여러분을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오갈 때 천수보살의 손으로 제 등을 받쳐준 여러분께 고맙습니다.' 그 때 내가 저 여자를 살려야겠다, 마음먹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을 읊었다.
9월 1일 오후 7시 30분,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52번째 10만인클럽 특강에서다. '정동영, 한진에서 길을 찾다'가 제목인 이번 특강은 그야말로 '한진중공업' 문제로 시작돼 '한진중'으로 이어져 갔다.
정 최고위원은 "1998년부터 시작된 정리해고 체제의 전환·종언을 고하는 신호가 한진중이요, 희망버스요, 김진숙"이라며 "내년 총선에서 민주진보세력이 약진해 여소야대 구조가 만들어질 때 정리해고 제한 규정을 구체적으로 못 박아 정리해고를 남용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내년 총선이 비정규직 문제를 가름할 계기"라고 말했다.
이어 그가 제시한 것은 '2013년 체제'다. 그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는 노동의 문제는 19대 국회의 최대 과제다, 사람과의 연대·공존·존엄이 중요한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연합 후보가 진보세력과 함께 조세 혁명의 대안·노동 개혁 청사진·복지 개혁 정책을 국민에게 내놓는 체제가 바로 2013년 체제"라고 설명했다.
정 최고위원은 "진보진영의 집권을 위해선 한 날개는 보편적 복지, 다른 한 날개는 경제 민주화로 날아야 한다, 시장지배력과 경제력 남용 방지를 위한 헌법 119조를 실현해야 한다"며 "이것은 경제가 아닌 정치의 문제로 연합정당체제로 가면 2013년 체제가 눈앞에 온다"고 강조했다.
한진중 문제와 이에 대한 연결선상에서의 2013년 체제를 논한 그는 지난 달 18일 열린 한진중 청문회장에서 튼 바 있는 한진중 사망자들의 장례식 동영상 상영을 마지막으로 강연을 마쳤다.
'대선 출마' 묻자 정동영 "잘못 가면 푼수 된다"
이후엔 강연 사회를 맡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청중들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먼저 얘기된 건 확실한 좌클릭 노선을 걷고 있는 그의 '진정성'에 대한 것이다. '타고난 순발력에 비해 신뢰감이 부족하다'는 평에 대해 묻자 그는 "정치 입문한 지 2년 만에 여당 (의원)이 됐다, 10년 여당 할 때 사람 사는 현장에 갔어야 했는데 붕 떠있었고 경솔했던 적도 있었다"며 "그동안 정치개혁과 남북문제에만 몰두해서 노동의 문제와 삶의 질 문제에 시선 돌리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고 '반성문'을 썼다. 2009년 재보선 당시, 전주에 무소속을 출마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그 때로서는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같은 입장은 아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권행보에 대한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2012년 대선 출마에 대한 질문에 "정치 행보를 할 때에는 말을 잘 골라야 한다, 잘못 가면 푼수가 된다"며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입장은 못 된다, 국민과 당에게 진 빚을 갚을 때"라며 말을 아꼈다.
'예비 대선 경쟁자'에게는 후한 평을 내렸다. 최근 진행된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약진하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에 대해서는 "당이나 정치세력은 관심을 먹고 사는데 문 이사장이 진보진영에 관심과 시선을 가져다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치판에서도 문 이사장은 잘 하실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손 대표 '팔 자른다' 더니 실제 어떤 행보했나"
다만,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대해선 "당의 자산"이라면서도 "한-EU FTA 합의처리와 KBS 수신료 표결 처리에 합의한 것을 두고 깜짝 놀랐다, 그런 지도노선은 아니다"라며 "이건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고 노선과 가치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손 대표가 보이고 있는 '야권 통합' 관련 행보에 대해서도 "내가 당 대표였으면 이렇게 끌고 오지 않았다,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이 얘기되는 데 진보 정당들이 민주당과는 통합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물은 데 대한 답이었다. 정 최고위원은 "손학규 대표는 통합을 위해 '팔을 자른다'고 하는데 실제 어떤 행보를 했다는 말을 못 들었다"며 "나는 이정희 대표와 열 번도 더 만났는데 당 대표가 그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레 최근 정치권의 핫 이슈로 떠오른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옮겨갔다. 천정배 최고위원에게 "나 같으면 (서울시장에 출마) 한다"고 조언했다는 그에게 오 대표는 '한명숙 후보도 계속 언급되는데 천 최고에게 출마하라고 했다는 건 한명숙 전 총리는 후보로서 적절치 못하다고 본 거냐'는 질문을 던졌다. 정 최고위원은 "작년 지방선거 때 한 후보가 경선을 통해 서울시장에 출마했으면 확실히 됐을 것"이라며 "이번에 박원순, 한명숙, 천정배 등 모두가 나와 경선을 거치면 우리 쪽이 100% 이긴다"고 장담했다.
'야권에서 서울시장 예비 선거가 지금 이뤄진다면 박원순·한명숙·천정배 중 누구를 찍을 거냐'는 짓궂은 질문에 그는 "직접·비밀·보통·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가볍게 응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