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이 내각 총리대신으로 확정된 후 이토는 1907년 5월 30일 대신들을 모아놓고 "한국의 존립에 있어서 가장 적절하고 긴요한 방침은 성실히 일본과 친목하여 일본과 존망을 함께하는 데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이에 대해 이완용은 "국가로서 독립할 실력이 없이 독립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회답했다. - 책 속에서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동료가 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 말에 빈말은 없다고. 무심코 한 말에도 잠재의식이 담길 수 있고, 농담으로 던진 말이라도 일정한 목적과 의도가 묻어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 끄덕였다.
<이완용 평전>을 읽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격변의 근현대사에서 매국노의 간판스타로서 달리 겨룰 상대가 없을 정도로 굳건한 위치를 점한 이완용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더구나 필자는 정통으로 역사를 전공한 사학자였기에 거는 기대가 더 컸다.
기대는 무너졌다. 이완용에 대한 좀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있었지만 이완용이 합리적, 근대적 인물이라는 필자의 주장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미리 합리적, 근대적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억지로 그 결론에 꿰어 맞추려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술자리 동료의 생각이 떠올랐다. 빈말은 거의 없다는 말, 어찌 말뿐이랴. 글 또한 다르지 않겠지.
오히려 그는 합리적인 근대인이었다. 충군과 애국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위해 용기를 내거나 또는 제국주의 폭력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다수가 문명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절대로 분노하지 않는 이성적 인간이었다. 왕실과 국가, 개인과 민족 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빚어질 때 이완용이 선택한 것은 어느 한 쪽도 아니었다. 균열을 직시하고 그것을 파열시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고 용기를 내기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가치를 미래로 밀어내고 왕과 개인이 살아갈 현실을 끌어안으려 했다. - 책 속에서
머리말에서 매국노가 아닌 합리적 근대인으로 이완용을 평가하는 이유를 밝힌 대목이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다수의 문명화와 혜택을 누리기 위해 제국주의의 폭력에 분노하지 않았던 게 이성적 행동이었다는 말인가. 당시 문명화와 근대화의 명분을 앞세워 폭력과 지배를 정당화했던 게 제국주의 국가들의 본질이었다. 더구나 문명화와 근대화의 명분 속에서 생존권조차 잃어야 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다수가 문명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절대로 분노하지 않았다"는 대목의 '다수'와 생존권을 잃고 몰락했던 '대다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국가와 민족의 가치를 미래로 밀어냈다"는 말도 납득하기 어렵다. 매국노 이완용을 구출하기 위해 '국가와 민족의 가치'란 말이 필요했던 걸까. 글 내용대로라면 미래로 밀어낸 국가와 민족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이완용은 나중에라도 노력해야 했어야 옳다. 하지만 그런 적이 없다. 일제 침략에 순응 또 순응했을 뿐이다.
국가와 민족의 가치를 밀어내고 추구했던 게 왕과 개인이 살아갈 현실을 끌어냈다는 표현도 적절치 않다. 이완용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왕을 이용했을 뿐이다.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고종의 퇴위를 주장한 사람이 다름 아닌 이완용이었다.
"일본이 요구하는 합병과 이토 통감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 고종의 퇴위"란 명분을 내세웠다지만 왕과 개인이 살아갈 현실을 끌어냈다는 인물의 행동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현실을 명분으로 내세워 고종을 버리고 자신의 살길만 도모했던 인물로 평가해야 옳다.
이완용이 합리적 인물이라면 이승만을 국부로 떠받드는 사람들의 말도 맞다.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면서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대통령이 되어 독재의 씨를 뿌렸던 이승만의 행동 또한 그를 추종하던 세력 앞에서는 얼마든지 합리적 이성적 모습으로 보일 테니까.
역사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한 인물의 삶자취 또한 마찬가지다. 독재자 이승만을 변호하기 위해, 독립협회 활동을 하다 구속되었던 이승만의 과거를 들먹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거가 있다고 해서 독재자로서의 이승만의 행적이 사라질 수는 없다.
이완용 또한 마찬가지다. "독립할 실력이 없이 독립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본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부강한 국가를 건설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 이완용의 진심이었다고 해도 국권을 송두리째 일제에 넘기고 매국의 길을 걸어간 그를 합리적 근대적 인물로 미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매국노의 수렁에서 이완용을 건져내려는 필자의 의도가 더 궁금해진다. 기존의 통념을 깨고 발칙한 연구자가 되어 주목받고 싶은 학자적 용기에서였을까. 그럴 수는 없다. 이완용이 합리적 근대적 인물로 평가된다면 그 반대편에서 독립을 위해 모든 걸 바쳐 싸운 이들은 전근대적 비합리적 인물로 낙인 찍혀 끝 모를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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