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 "어머니는 저한테 공부하라고 한 번도 말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연스레 철은 드나봐요.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깐 너무 자식들한테 공부하라고 하진 마세요."김어준 : "그렇다면 본인이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나요?"박원순 : "하하하, 그래요. 철이 안 들어서 이러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박장대소가 터졌다. 21일 저녁 서울 중구 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박원순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팬미팅 현장에서다. 팬클럽 '박원순과 함께 꿈꾸는 서울'의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는 450여 명의 회원들이 박 예비후보를 만나러 왔다.
팬미팅에 모인 이들은 박 예비후보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촛불집회 당시 활약했던 '시민악대'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삶이여, 감사합니다' 등을 합주하며 흥을 돋우었고, 시민 박철웅(40)·권미애(45)씨는 '러브레터' 낭송으로 박 예비후보의 새 길을 응원했다.
대표 질문자로 나선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인간 박원순'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팬들의 질문과 자신의 질문을 섞어가며 "왜 사모님이랑 결혼했나", "자신의 외모에서 매력적인 부분이 뭐냐"라고 공격했다. 공식 출마선언을 한 그에게 "왜 (서울시장 출마를) 하려고 하나"며 직구를 던지기도 했다.
박 예비후보는 머쓱해하며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어머니가 서울에 오셔서 '저 많은 가게들 어떻게 먹고 사냐', '말만한 처녀들 어떻게 결혼하나' 걱정하시곤 했다. 나만 즐겁다고 행복한 건 아닌 거다. 다른 사람도 함께 행복해야 진짜 행복한 거다. 이건 어머니만의 생각, 저만의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서울이 언제부턴가 살벌한 도시가 됐지만 우리 모두의 고향 같아야 하지 않나.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지 않겠나."김 총수는 이를 "결국 출마 이유는 가족력 때문이네, 철도 안 들었다"고 간단히 정리했다. 다시 한 번 박장대소가 터졌다.
"'나쁜 남자' 박원순, 업무적으로 괴롭겠지만 서울시민이 덕 볼 것"
박 예비후보는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사적인 질문도 잘 받아가며 솔직하게 답해나갔다.
그는 "저서를 많이 낸 편인데 (다른 누군가가) 대필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절박함을 가지면 빠르게 글을 쓸 수 있다"며 "(3개월 만에 써낸 <야만의 시대>의 경우) 너무 끔찍한 기억을 떨쳐내기 위해 밥과 화장실을 오가는 것 외에 책 쓰는데만 시간을 썼다. A4 용지 1700장 정도로 정리하니 (양심수들에 대한) 부채감에서 해방됐다"고 말했다.
"여러 단체를 창립하며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인재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냐"는 질문에는 "사람의 능력에 큰 차이는 없다, 2~3년 밤낮없이 뒹굴다 보면 모두 유능해지더라"며 "사람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인생의 멘토를 묻는 질문에는 고 조영래 변호사를 특별히 꼽았다. 박 예비후보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분이 살아계셨더라면'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분이 계셨다면 제가 이런 일 안 하고 그 분이 (여기에) 나서시고 저는 그 옆에서 심부름 열심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대란은 어떻게 해결하나"라는 질문에는 "누구나 비 안 맞고 추위를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주거는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거권은 누가 보장해 주는 게 아니라 권리"라며 "여러 가지 현실 여건을 다 고려해야 하지만 이런 마음을 잊지 않고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총수는 박 예비후보의 답변에 "잘난 척 한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그의 삶을 높이 평가했다. 김 총수는 "박원순은 너무 직업이 많다. 가끔 그처럼 직업분류표로 규정할 수 없고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출현한다"며 "그래서 박원순의 직업은 '박원순'이다. 세상에 더 많은 '박원순'이 출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팬미팅 사회를 맡은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는 참여연대 간사로 근무 당시의 노동 강도를 소개하며 "박 예비후보는 나쁜 남자"라고 수차례 꼬집었다. 그러나 "나쁜 남자지만 서울시의 미래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 나쁜 남자일 것"이라며 "부서지고, 흩어지는 작은 우리의 마음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분"이라고 칭찬했다.
동영상을 통해 팬미팅에 참석한 조국 서울대 교수는 "박 예비후보는 너무 꼼꼼하게, 또 많이 일을 시킨다"며 "그런 경험에 기초해서 봤을 때 (공무원들은) 업무적으로 매우 괴롭겠지만 결국 서울시민이 그 덕을 보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그런 점에서 박 예비후보를 믿고 성원한다"며 "박 예비후보 혼자서 할 수 없다.여러분이 밀어주고 박수치고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