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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은 지 8년도 넘은 도농통합지역의 주공아파트인데도 전세가격은 천정부지다.
 이미 지은 지 8년도 넘은 도농통합지역의 주공아파트인데도 전세가격은 천정부지다.
ⓒ 다음스트리트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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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처제는 요즘 울상이다. 처제 가족은 5년 전 광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밀려 인구 15만 전남의 한 소도시로 내려 왔다. 다행히 패스트푸드로 업종전환을 시도하여 그나마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했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가게를 마무리하면 파김치가 되어 주방 안쪽에 조립식으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두 평 남짓한 내실로 들어가 저녁상을 차린다. 그 작은 골방에서 세 식구가 기거한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임시로 잠깐 기거한다는 것이 벌써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은 바로 기막힌 전셋값 때문이었다.

밤잠도 설쳐가며 한 가게일이 실패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셋집을 구하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해 하루 이틀 머물던 내실 생활이 그렇게 흘러 버렸다. 집을 구해보려 갖은 발품을 팔았지만, 소득보다 더 빨리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혹시라도 전세 매물이 나더라도 전셋값이 1000~2000만 원 정도는 항상 부족했고, 계약 성사단계에 가면 집주인들이 반(半)전세나 월세로 돌리려고 했다. 온전한 전세 매물 자체가 없었을 뿐 아니라 몇 년 동안 모았던 돈을 고스란히 전셋값으로 갖다 바치는 것도 부족해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할 판이었다.

"아저씨, 저 OO엄만데요…. 혹시 (제가 말씀드린 금액에 맞는) 전세 나온 것 있어요?"
"아, 또 전화하셨네. 물건이 나오면 연락을 준대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뭄에 콩 나듯 나오긴 했는데 이젠 전세라는 자체를 찾기가 불가능하다니까. 혹시 나온다 해도 시세에 관계없이 바로 빠져 버려. 안 나와서 문제지. 매물 자체가 워낙 없다보니 중개업소 안 거치는 경우는 더 많아. 또 요즘은 전셋값이 오르면서 함께 높아진 중개수수료(거래금액×상한요율) 아낀다고 직거래를 해버리니까 우리도 힘들어…."

그랬다. 오늘도 처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해보지만 이변은 없었다. 오늘 따라 죄 없는 부동산 아저씨가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잘 사는 친구 집에서 놀고 온 후에는 풀이 죽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우리도 빨리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보챌 때면 함께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거는 더 이상 '살아가는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처절하게 한 사람을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만 만들어 버렸다.

'전셋값 1억 원'을 바라보는 지방 주공아파트... 갈 곳이 없다

전국적으로 전세대란이라지만 비교적 저소득 서민들이 많은 지방은 사정이 더 힘들다. 특히 도농통합지역의 경우 인구는 매년 줄고 있지만 전세 구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값을 올린 배짱 물건도 늘었고, 정보지에 올려져 있는 매물정보는 액면 그대로 신뢰하기 힘들다. 집주인이 은근히 월세로 유도하거나, 이미 나간 집들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처제의 가게 바로 부근에 있는 읍내에서 소형 평형대가 가장 많은 한 주공아파트 단지. 약 700여 세대가 모여 있지만, 요즘 전세 물건은 한 달에 한 건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 아파트에 사는 우리 가족은 내심 이 단지에서 처제와 함께 살고 싶지만 이젠 그마저도 포기한 상태다.

인구 15만의 전남 한 도시 M주공아파트의 시세추이(실 거래 가격은 이 보다 조금 높게 형성되어 있다)
 인구 15만의 전남 한 도시 M주공아파트의 시세추이(실 거래 가격은 이 보다 조금 높게 형성되어 있다)
ⓒ 네이버(국민은행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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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은 지 8년도 넘은 주공아파트인데도 21평(69.4㎡) 소형 아파트의 전세가격은 5000만 원대에서 6000만 원대까지 올랐다. 25평(82.6㎡)은 8000만 원 선이다. 8년 전 임대시 수요가 없어 미계약이 속출했고, 3년 전 평당 150만 원 선에 분양된 별 볼일 없던 이 아파트의 전세가 이러다 곧 1억 원대까지 돌파할 분위기다.

처제는 마치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고 분위기에 편승하는 집주인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세상에 무슨 서울강북도 아닌 시골의 구닥다리 아파트 전세가 1억이란 말인가? 하지만, 전세는 이제 거의 매매가격의 80%선을 넘어서고 있고 지금도 계속 상승중이다. 이마저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다. 그야말로 이 지역에서 전세 얻기란 '로또 당첨'이다.

끝을 보이지 않는 전셋값 상승세 근본적인 원인은 단순하게도 매물이 귀해졌기 때문이란다. 특히 이 지역은 제철소 신규공장 건설 호재에 힘입어 전세가 및 매매가의 상승폭이 높은 편이다. 근로자들이 유입되면서 상승세를 이끌어 매물 또한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광주권보다 가격대가 높다는 인근 도시들보다는 그나마 조금 낮은 가격에 형성돼 있지만 정말 신기할 정도로 집이 없다.

요즘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대기자만 수십 명은 기본, 전셋값도 그야말로 '집주인 맘대로'다. 이러한 지방 아파트 전세 부족 현상은 요즘엔 다세대 주택의 전세난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저금리 속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집주인들이 분위기에 힘입어 대부분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제는 최근 분양된 임대아파트 잔여분을 노렸지만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말았다. 아니한 것만 못한 경험이었다. 모델하우스는 며칠 전부터 시세차익이 남을 것으로 기대하는 투자자들 수백여 명이 줄을 서서 기다렸고, '듣보잡' 세력(?)들이 나타나 대기 번호표를 수백만 원대에 거래했다. 결국 잔여물량의 계약의 대부분은 결국 투기세력이 차지하고 말았다.

처제는 오늘도 다시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전화를 돌려보지만 돌아오는 한결같은 대답은 "요즘 전세 없어요, 잘 알면서…"라는 말뿐이다. 처제는 진이 빠지고 맘이 상해서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집을 살까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막연하게 원리금을 동시에 갚아나가면 되겠지 했다가는 늘어나는 가계지출은 물론 여유도 없는 살림에 이자낼 일이 막막하다. 또 전세 구한다고 몇 년 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 포기하기엔 너무 억울하다.

당국의 불투명한 부동산 대책에 전셋값은 속수무책…. 아, 집 없는 서민은 어찌하오리까. 한 번 오르면 좀처럼 내리지 않는 부동산 시세의 경직성을 감안하면 앞으로 시세가 떨어질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당분간 처제 가족이 가게 안 내실의 골방 생활을 벗어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전세가 기가 막혀' 공모글입니다.



태그:#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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