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보편적인 사람들이 먹었을 때 소화가 잘 안 되거나 소화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음식이라면 그것은 좋은 음식이 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내용이 좋은 책이라 할지라도 그 책을 읽은 대개의 사람들이 책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거나 고개를 갸우뚱거린다면 그 역시 좋은 책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강의는 어렵기 그지없습니다.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쓴 책 또한 애매모호하고 어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내용을 충분히 소화시킨 사람이 쓴 책은 결코 어렵지 않고 애매모호하지 않습니다.
이석명 지음, 천지인 펴냄의 <노자, 비움의 낮춤과 철학>은 노자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지만 애매모호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한없이 어려울 수도 있는 고전, <노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말이고, 노자가 가르치고자 하는 가르침이 무슨 뜻이며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상용이 입을 벌려 노자에게 보이면서 물었다.
"내 혀가 남아 있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내 이가 남아 있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상용이 물었다.
"그대는 그 의미를 아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무릇 혀가 남아 있는 것은 그것이 부드럽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가 없어진 것은 그것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상용이 말했다.
"허허! 그렇다. 세상의 일에 관해서는 이제 다 말했다. 더 이상 그대에게 말해 줄 게 없구나." - 본문 89쪽
노자가 그의 스승 상용(商容)이라는 현인을 병문안 가서 나눈 대화로 전해지는 전설의 일부분으로 부드러움과 약함이 강함과 견고함을 이긴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보철기구가 많이 발달했지만 '늙음' 하면 여전히 깊은 주름, 구부러진 허리, 허연 머리 못지않게 한두 개만 남아 있는 이가 연상됩니다. 생리적 수명이 다해 빠지는 것으로만 생각하였던 이와 한 입 안에 있지만 대부분이 건재하고 있는 혀를 들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하고 시사성을 더한 설명
<노자, 비움과 낮춤의 철학>은 <노자> 중 비움과 낮춤과 관련된 27개의 구절들을 다시 아홉 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현대적 감각으로 설명하며 시사성까지 더하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윗사람이 그의 속마음을 함부로 드러내면 아랫사람들이 그 마음에 영합해 간사한 짓거리를 자행하는 것은 늘 있어 왔던 일이다. 때문에 노자는 지도자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늘 신중하게 처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 본문 63쪽
'지도자는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는 구절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평이한 서술이지만 동서고금, 남녀노소,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노자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아무런 부담 없이 소화시킬 수 있는 명료한 설명입니다.
"궁궐은 매우 깔끔하나 논밭은 황폐되어 있고 창고는 텅 비어 있네. 위정자들은 화려하게 수놓은 옷을 차려입고, 날카로운 칼을 멋들어지게 차며, 배터지게 먹고 재화는 넘쳐나네. 이런 자들은 도둑이라고 말하네." - 본문 134쪽
"아침나절만 사는 조균(朝菌)이란 버섯은 초하루와 그믐을 알지 못하고, 매미와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장님에게는 화려한 문채를 보여줄 수 없고, 귀머거리에게는 종소리 북소리를 들려줄 수 없다. 어찌 단지형체에만 귀머거리와 장님이 있겠는가? 지식에도 그러한 게 있다." - 본문 190쪽
'감히 세상에 나서지 않는다'는 구절과 '도는 말로 전할 수 없다'는 구절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읽는 사람이 아무런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는 설명이니 <노자>를 이보다 더 쉽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범부에겐 행복 비법, 위정자들에겐 경고
<성경>에서 말한다. "욕망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사망에 으르게 된다(야고: 1,15)."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와 악행의 원천은 욕망이라는 경고다. - 본문 22쪽
<노자>의 가르침, '비우는 자가 부자다'를 <성경> 구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 권력, 명예, 성욕을 포함하는 모든 욕망이 결국은 죄를 낳고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위정자들이 추구하고 있는 성취욕과 정권욕 또한 욕망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저자가 일반 독자인 범부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비움과 낮춤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비법이지만 권력가나 위정자들에게 은근히 전하고자하는 내용은 비우고 낮추지 않으면 '죽는다'는 경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화전에 들어가 있는 진달래나 국화처럼 구절 구절마다 끝 부분에 선시를 넣어 읊조리게 했으니 이 또한 마음을 비워 주는 두레박이 되고 몸가짐을 낯추게하는 회초리가 됩니다.
<노자, 비움과 낮춤의 철학>, 범부들에겐 행복해질 수 있는 비법을 전하는 안내서가 될 것이며, 욕망에 쩌들어 있는 위정자에겐 불행을 막아주는 방서(方書), 명예로울 수 있는 지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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