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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금융자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분노하면서 시작된 미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조직력을 갖춘 노조와 시민단체 등의 가세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5일(현지 시간) 오후 로어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모인 1만5000여 명의 시위대.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분노하면서 시작된 미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조직력을 갖춘 노조와 시민단체 등의 가세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5일(현지 시간) 오후 로어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모인 1만5000여 명의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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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자본가들의 탐욕과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하며 3주째에 접어든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에 대해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7일(현지 시간)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전날(6일) "(월가 시위는) 미국인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며 금융개혁의 정당성을 주장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는 상반된 행보다.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대는 "억만장자인 뉴욕시장이 월스트리트를 보호하기 위해 경찰의 과잉진압을 지시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지난달 17일부터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각계 직능단체와 노조가 힘을 보태면서 세를 확장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워싱턴DC를 포함해 20여 개 도시에서 동조 시위가 벌어졌고, 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시위를 준비 중이다. 이번 시위로 인해 경찰에 연행된 시위대는 뉴욕에만 830여 명에 이른다.

'실업 위기' 경고하더니... 말 바꾼 뉴욕시장 "시위대가 일자리 뺏어"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사진출처 - 뉴욕시)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사진출처 - 뉴욕시)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7일 WOR 라디오 쇼에 출현,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가 하고 있는 일은 뉴욕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시도이고 과세기준을 흔들려는 것"이라며 "이번 시위는 관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위대가 우리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금융인들을 몰아내려고 한다면 우리는 시 공무원이나 미화원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 어떤 비용도 지불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6일) 레이몬드 켈리 뉴욕시 경찰국장도 23명의 시위대를 연행한 뒤, "시위대가 경찰을 도발한다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미 시위대를 연행하면서 곤봉과 페퍼스프레이 등을 사용하는 등 폭력적인 진압을 자행했다. 앞서 뉴욕경찰 측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때문에 경찰관들의 초과 근무 등으로 시가 200만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 시장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대해 '경제적 악영향'을 언급하며 강한 반감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블룸버그 시장은 실제 관광 사업이 이번 시위로 인해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근거를 내놓지 않았다.

반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뉴욕증권거래소 인근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은 매일 시위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밤늦게까지 이어져 또 다른 관광명소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티투어 버스에 탑승한 관광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소개하고,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버스를 세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측은 경찰이 과잉진압을 하는 이유가 블룸버그 시장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시위대측 미디어담당자인 제프 스미스(41)는 7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블룸버그 시장은 억만장자이고, JP모건이나 체이스뱅크 등은 뉴욕경찰에 수억 달러의 기부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때문에 경찰과 시 당국은 시민이 아닌 대기업과 월스트리트를 보호하고 있다"며 "그래서 평화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폭력까지 행사한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 시장은 블룸버그통신을 창업한 미디어재벌로 200억 달러(약 23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

반면 '헤지펀드의 거물' 조지 소로스나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공감을 표하고 나서 블룸버그 시장과 대조를 보였다. 소로스는 지난 3일 "금융위기 이후 영세 사업자들이 문을 닫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금융권은 부실자산 처리 등으로 손해는커녕 막대한 이익을 올렸고 고액의 보너스 파티를 벌였다"고 지적했다. 버핏 회장도 자신을 포함한 소수의 부자들에 대한 세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 시티투어 버스를 탄 관광객들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로어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공원) 앞을 지날 때마다 신기한 듯 기념사진을 찍곤 한다. 7일 한 시민이 2층 버스에 탄 관광객을 향해 '월스트리트에 세금을 부과하라'는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
 뉴욕 시티투어 버스를 탄 관광객들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로어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공원) 앞을 지날 때마다 신기한 듯 기념사진을 찍곤 한다. 7일 한 시민이 2층 버스에 탄 관광객을 향해 '월스트리트에 세금을 부과하라'는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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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제는 '시위무풍지대'로 불렸던 미국에서 사회적 불만을 가진 젊은이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고 경고한 장본인이 바로 블룸버그 시장이라는 점이다. 블룸버그 시장은 시위가 시작되기 불과 하루 전날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수년째 지속하는 미국의 경기침체가 폭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주장했다.

당시 그는 "(전 세계) 많은 대졸 청년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카이로와 마드리드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며 "이런 사태가 미국에서 일어나길 아무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국민들은 이 나라에서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매우 화가 난 국민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며 "일자리를 찾지 못한 세대가 받은 타격은 여러 해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자유광장에서 시위대가 점거 농성을 벌이기 시작하자 블룸버그 시장은 "미국 시민에게는 집회의 자유가 있다"며 "우리는 (시위를 할) 장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고 밝혔다.

금융 자본가의 탐욕과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하면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7일 한 시민이 '오바마, 당신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느냐'고 묻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금융 자본가의 탐욕과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하면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7일 한 시민이 '오바마, 당신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느냐'고 묻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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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위가 3주째에 접어들어서도 수그러들기는커녕 세가 더욱 확산되자, 당혹감에 빠진 블룸버그 시장은 자신이 했던 말까지 뒤집으면서 시위대를 비난하고 나섰다. 앞서 뉴욕경찰이 지난달 24일 수십 명의 시위대를 연행하면서 여성 시위대의 얼굴에 페퍼스프레이를 뿌리고, 지난 2일 브룩클린 다리에서는 무려 800명의 시위대를 무차별 연행하는 등 무리수를 둔 것도 이런 당혹감에서 비롯됐다.

반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는 경찰의 강경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확산되는 양상을 띠었다. 특히 경찰이 여성 시위대에 페퍼스프레이를 뿌리는 영상 등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동정여론이 형성돼 시민들을 월스트리트로 이끌었다. 시 당국과 경찰의 어설픈 대응이 불길에 부은 기름 역할을 하며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확산에 일조한 셈이다.

오바마 "월가 점령 시위는 미국인 좌절감의 표현"

블룸버그 시장과 달리 미국 전역의 행정·치안을 책임진 오바마 대통령은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지난 6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대해 "대중의 분노가 표출됐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나는 그것(시위)이 미국인들이 느끼는 좌절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며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대한 폭넓은 좌절이 시위를 통해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 최대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내년부터 직불카드 사용자에게 월 5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한 것을 겨냥해 "숨겨진 수수료를 가지고 속임수를 써서 경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공감을 표했다. (사진출처 - 백악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공감을 표했다. (사진출처 - 백악관)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금융권과 공화당을 동시에 비판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월스트리트에는 제대로 된 규제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며 "지난해 우리는 금융권 및 공화당과 모든 현안을 놓고 싸움을 벌였는데 올해도 그들이 우리에게 개혁에서 후퇴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자리 창출' 법안과 관련 "의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미국인들이 분노 때문에 그들을 워싱턴에서 추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원내대표가 제안한 연 10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5% 부가세 부과 방안을 지지하는 등 공화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일정정도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시위에서 "미국인들의 분노가 표출됐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자, 시위대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태그:#월스트리트 점령, #월스트리트 점거, #월가 점거, #마이클 블룸버그, #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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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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