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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0월 경남 진주는 축제가 한창입니다. 올해 61회를 맞은 개천예술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입니다. 문화광관부에서 지원받는 '진주남강유등축제'는 개천예술제보다 더 유명한 축제로 자리잡았지요.

우리 집은 약간 변두리이고, 두 축제가 열리는 곳은 진주 남강과 촉석루를 중심으로 열려 구경가기 참 힘듭니다.

"네 이놈 네가 네 죄를 알렸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 그리고 새로운 축제 장을 연 두 축제가 12일 동안 열리는 데 가보지 않는 것은 진주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는 마음이 들어 토요일 늦은 시간 잠시 들렀습니다.

 네 이놈 네가 네 죄를 알렸다. 주리틀기를 당하니 아 기분 참 이상했습니다.
 네 이놈 네가 네 죄를 알렸다. 주리틀기를 당하니 아 기분 참 이상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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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 눈길을 끈 것은 형틀입니다. 텔레비전 사극에서 주리를 틀면서 죄인을 심문하는 장면을 많이 봤는 데 직접 보니 참 신기했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가 당신이 한번 앉아 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앉았습니다.

"주리를 틀어라. 네 이놈 네가 네 죄를 알렸다."
"나는 죄가 없소이다. 당신이 나라와 백성 그리고 만 백성의 어버이인 주상 전하를 능멸했소."
"무엇이라 네 이놈. 뭐하느냐 주리를 더 틀어라."
"예~이"
"아이고 나 죽네"
"아빠 아파요?"
"아프지 너는 이게 장난으로 보이니."

웃는 죄인들도 다 있네

주리를 틀라고 하는 심문관과 주리에 앉은 죄인 중 과연 누가 역도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역사란 이긴 자가 정의이고, 진 자가 죄인이지요. 얼마 전 끝난 <공주의 남자>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목에 쓰는 칼은 아이들이 시범을 보였습니다.

 큰 아이가 목에 칼을 쓴 죄인이 되었습니다.
 큰 아이가 목에 칼을 쓴 죄인이 되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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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둥이가 형아가 한 일을 넘어갈 수 없지요. 자세히 보니 죄인이 아닙니다.
 막둥이가 형아가 한 일을 넘어갈 수 없지요. 자세히 보니 죄인이 아닙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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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헌이 너는 목에 쓰는 칼"
"목에 쓰는 칼은 죄인이 쓰는 거잖아요."
"목에 칼을 쓰면 죄인 같아야 하는 데 전혀 죄인 같지 않네."
"아빠 나도 한번 하고 싶어요."
"그래 막둥이도 칼 한번 쓰봐야지."
"아빠 어때요."
"전혀 죄인같지 않는데."

큰 아이와 막둥이가 목에 칼을 썼지만 전혀 죄인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 사람들은 목에 칼을 쓰는 순간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요. 아내와 딸 아이는 목에 쓰는 칼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지 감옥에만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당신도 감옥에 한번 갇혀야지. 우리 예쁜 아이도."
"죄인 같아요?"
"전혀 아닌데 죄인들이 어떻게 웃어요."
"살려주세요."
"살려달라고 웃으면서 살려달라는 죄인도 다 있네."


 아내와 딸 아이는 웃으면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아내와 딸 아이는 웃으면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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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은 감옥에 갇혀 웃으면서 살려달라고 합니다. 세상이 웃으면서 살려달라는 죄인도 다 있습니다. 옛날 죄인도 이런 경우가 있었을까요. 아마 그런 죄인이 있었으면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일 것입니다.

문 달린 텔레비전은 주인장 권력 상징

주리틀과 목칼 그리고 감옥을 체험한 후 옛 교실을 꾸며놓은 곳이 있어 들어갔습니다. 30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 놓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 역사를 30년 전으로 되돌려놓았듯이 말입니다. 연탄난로 위에 양은도시락부터 <선데이서울>과 텔레비전 그리고 다양한 영화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80년대 영화포스터와 문 달린 텔레비전
 80년대 영화포스터와 문 달린 텔레비전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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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영화포스터 보세요."
"정말 신기하다."
"여기 문 달린 텔레비전 보세요."

"우리 집에도 이 텔레비전 있었는데. 텔레비전 다 보고나면 문을 잠갔지요."
"이런 텔레비전 있는 집은 정말 부자였는데."


그 때는 텔레비전을 보고 나서 문을 잠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주인이 텔레비전 바로 앞에 앉아서 채널을 자기 보고 싶은 곳으로 돌렸지요. 보물 중 보물이 텔레비전있는데. 우리 집에는 5학년 때(1977년) 텔레비전을 샀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춤을 다 추었습니다.

난로 위 양은도시락 배고픔과 추위 상징

"아빠 이게 무엇이에요?"
"양은도시락"
"도시락에 왜 난로 위에 있어요."
"응 그 때는 학교급식도 없었고, 도시락을 양은도시락에 밥을 싸오면 밥이 다 식어버렸다. 난로 위에 올려놓으면 밥이 따뜻해지니까.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 놓았다."


 양은도시락 배고픔과 겨울을 상징합니다.
 양은도시락 배고픔과 겨울을 상징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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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도시락. 배고픔과 추위를 상징합니다. 배도 고팠고, 추위에 다 식어버린 밥을 먹으면 온 몸이 떨렸지요. 그나마 난로가 있어 다행이었지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우리 세대와 윗 세대의 아련한 추억입니다. 급식 사고가 나는 요즘을 보면 그 때가 더 사람사는 세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아이와 딸 아이는 책가방을 들고 공부를 합니다. 옛날에 책가방을 든 학생은 부잣집 아이였지요. 5학년 때까지 책보따리(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나녔습니다. 아마 중학교 가서 책가방을 처음으로 산 것 같습니다.

 책가방을 든 학생은 그래도 부잣집 아이들입니다.
 책가방을 든 학생은 그래도 부잣집 아이들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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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서울>을 교실에서?

교실에서 <선데이서울>을 발견하고는 적지않이 황당했습니다. 정확하게 언제 나온 것인지 몰라도 가수 조용필씨와 영화배우 김희라씨가 나온 것을 보니 아마 1980년대 쯤으로 보입니다. 김희라씨는 1969년 영화 '독짖는 늙은이'로 데뷔했고, 제12회(1976)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마지막 포옹), 제47회(2010)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시)을 받은 원로 영화배우지요.

"옛날에 교실에서 <선데이서울>을 다 봤어요."
"그렇지 고등학교 남학생들을 이런 것 보면서 이성에 대한 눈을 조금씩 떴어요."
"당신도 봤어요?"
"안 봤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선데이서울. 아 고등학교 남학생들 숨어서 즐겨봤습니다.
 선데이서울. 아 고등학교 남학생들 숨어서 즐겨봤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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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남자 학교에는 <선데이서울>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요. 요즘 아이들이 보는 '야동'보다는 훨씬 건전한(?) <선데이서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0대 이상 남자들치고 <선데이서울>한번쯤 보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여봐라 나는 영의정이다

옛 교실을 지나 국정을 논했던 곳을 갔습니다. 아이들은 영의정 자리에 앉아 영의정 행사를 했습니다. 상소문인지, 아니면 교지인지 모르겠지만 큰 아이가 문서를 펼쳐들고 읽는 모습을 보니 정말 영의정 같습니다.

 영의정이 된 큰 아이. 과연 나랏일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요.
 영의정이 된 큰 아이. 과연 나랏일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요.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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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아이와 막둥이 나랏일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딸 아이와 막둥이 나랏일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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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가 빠질리가 없습니다. 형이 하는 일은 다 해봐야 합니다. 물론 형과 비교하면 전혀 딴판이지요.

"영의정 자리에 앉으니까 영의정 같네. 무슨 내용이니?"
"잘 모르겠어요. 아빠가 한번 읽어보세요."
"아빠도 한문 잘 몰라. 영의정이 한문도 모르면 어떻게 국정은 운영하니."


한문을 몰라 그런지 1분만에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만인지상 일인지하' 영의정 자리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유등축제가 열린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남강유등축제입니다. 정말 화려합니다.
 남강유등축제입니다. 정말 화려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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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좋지 않아 화려한 유등 불빛을 다 담을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직접 눈으로 본 유등은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다양한 불빛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뽐냈습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빛인 것처럼 말입니다.

유등을 뒤로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막둥이가 '바이킹'을 타겠다고 합니다. 엄마가 안 된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형과 누나는 엄마가 안 된다고 하면 안합니다. 하지만 막둥이 억지는 대단합니다. 떼 쓴다고 들어주면 버릇 나빠질 수 있지만 1년에 한번 타는 바이킹인데 그냥 가버리면 안 될 것 같아 태웠습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태어나 처음으로 주리틀에 앉아보고, 감옥에도 들어갔습니다. 추억의 양은도시락과 문 달린 텔레비전.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봤던 <선데이서울>. 오래만에 축제다운 축제를 봤습니다. 개천예술제는 오는 10일로 끝나지만, 유등축제는 12일까지 계속됩니다. 진주로 오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천예술제#남강유등축제#진주#주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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