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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송'과 장미 열 송이 정신 장애를 가진 이용천 임정란 님이 덕천교회 학생회의 '축복 송'을 들은 후, 학생들 각자가 준비한 장미꽃을 선물로 받고 눈가에 이슬을 맺었다.
▲ '축복 송'과 장미 열 송이 정신 장애를 가진 이용천 임정란 님이 덕천교회 학생회의 '축복 송'을 들은 후, 학생들 각자가 준비한 장미꽃을 선물로 받고 눈가에 이슬을 맺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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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다 아름답겠지요? 어느 결혼식이든 각각 의미가 있고 또 희망이 서려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만듭니다. 온갖 것을 다 동원해서 외적 내적 아름다움으로 장식하고 싶은 게 결혼식입니다. 일생에 한 번 있는 의식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들은 이런 결혼식을 위해서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아야 할 행사인데, 또 두 사람이 하나 되는 뜻 깊은 행사인데, 무엇이 아깝냐며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립니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결혼식도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보통 것보다는 더 합니다. 정말 저는 이런 결혼식에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지난 토요일(11월 19일)은 날씨 때문에도 많은 애를 끓였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인 두 사람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거든요. 궂은 날씨를 예보한 터라 청명한 가을 날씨를 달라고 빌었습니다. 선한 이웃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올리는 아름다운 결혼식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정말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오전에 약간 내리던 비가 정오를 기점으로 그쳤으니까요.

노총각 노처녀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는 날은 날씨도 좋아야 하고 기분도 좋아야 하고 모든 것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마음이 행복해야 합니다. 어렵게 성사된 두 사람의 맺음입니다. 중매로 만난 두 사람은 비슷한 상황에 있으면서 서로의 애환을 잘 알고 이해해 줘가면서 사랑을 싹 틔어 왔습니다. 그들이 서로 만나 사귀면서 제게 인사를 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애를 한다는 신고식(?)을 하러 온 것입니다. 저는 그때 그들이 기특해서 제가 주례를 맡겠으니 때가 무르익으면 식을 올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다섯 달 뒤, 지난 11월 19일(토요일) 그들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작은 농촌 교회 예배당에서 그 교회 목사님을 주례로 만인의 축복 속에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예배 때 제가 전한 말씀의 제목이 뭔지 아세요? 좀 진부한 제목입니다. '사랑의 열매'였어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결혼하라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갖고 있는 단점은 나 대신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라는 것' 그러면 부부 관계가 부드러울 수 있고, 해로(偕老)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권면했습니다.

사실 이번 결혼식은 제 결혼식보다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 저는 열흘 전부터 결혼 일정표를 잡아 놓고 체크를 해 가면서 진척시켜 갔습니다. 성혼 서약문과 성혼선언문을 만들고 담당자를 섭외해 가며 순서지를 만들었습니다. 흰장갑과 홍초 청초를 준비하는 것도 제 몫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식당을 예약하면서 수시로 신랑 부모님과 연락을 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짐 되는 것이 예배당을 결혼식장 분위기로 어떻게 탈바꿈시키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한 아름답게 꾸며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믿는 자들에겐 은혜의 시간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믿음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한 일이 연달아 생겼습니다. 서부교회 윤창숙 집사님은 풍선 아트로 식장을 꾸며주겠다고 했습니다. 남산교회 곽미옥 집사님은 식장 양탄자와 신부 부케 및 일체의 꽃을 책임지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사진작가 김현옥 집사님은 결혼식 사진을 도맡겠다고 했습니다. 또 김천 YMCA 김문수 이사장님과 부곡동 예진 꽃집 사장님은 축하 꽃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김천파크호텔에서는 무료숙박권을 보내왔습니다. 정말 여러 도움의 손길이 이 결혼식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혼기를 놓친 정신 장애인들의 결혼식이어서 이런 도움이 더 돋보였습니다. 이 분들은 봉사가 '돈'이 아니라 '마음'의 결정체임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봉사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자 하는 작은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 줬습니다.

결혼식 순서도 은혜가 넘쳤습니다. 갈릴리 재활원 이용주 원장님이 풍부한 장애인 재활 경험을 바탕으로 신랑 신부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축가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캘리포니아 장학재단 대전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김은숙 사모님은 복음 가수입니다. 아름다운 음률로 '아주 먼 옛날'을 열창해서 결혼식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그날도 추풍령휴게소에서 야외 공연이 잡혀 있었는데, 결혼식과 중복되어 그곳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그가 불러준 복음 송은 쉬우면서도 약자에게 순수한 마음과 따스한 삶을 주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덕천교회 학생회의 축하 노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바로 오느라 교복으로 통일해서 입은 복장으로 축복 송을 불렀습니다. 연습 때는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염려를 좀 했는데, 막상 실제 합창에 임하자 각자 의젓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상이한 음률의 조화가 노래를 한층 밝고 선하게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은 '축복 송'을 부르고 난 뒤, 각자 준비한 붉은 장미꽃을 한 송이씩 신랑 신부에게 전달했습니다. 장미는 사랑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또 열정과 순수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학생회 아이들의 이 선물은 이들 부부의 삶이 이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는 꽃일 것입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학생들의 노래와 이벤트성 장미꽃 전달이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모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신랑 친구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우정은 세월이 많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10여 명은 족히 되는 것 같습니다. 40대 중반에 가까워진 연배들이라 중후한 풍채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 서울 부산 등 먼 곳에서 결혼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늦장가 가는 친구의 결혼식에 잊지 않고 참석해 준 것을 볼 때, 신랑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정이 진실하고 끈끈했다는 것, 그리고 베풂에 인색하지 않고 넉넉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신랑 이용천이 약삭빠르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었다면 이들의 우정이 이렇게 오래 변함없이 이어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김천 순수아마튜어 사진동호회(회장 김기진) 김현옥 집사님을 비롯해서 회원들의 활동도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알고 지내는 김현옥 집사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번 결혼식을 얘기하며 시간이 되면 사진 몇 장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겠다고 대답하더니 당일 7명이 팀을 이뤄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앵글에 담아냈습니다. 이 장면들이 아름답게 인화되어 신랑 신부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습니다. 앞으로 이런 경사스런 행사가 있을 때, 계속 돕겠다는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갑자기 훈기가 느껴집니다.

저는 이번 결혼식을 치루면서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생활이 여의치 않아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저희 교회 예배당을 식장으로 또 제가 주례를 맡고,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의 도움의 손을 빌려 결혼식을 올려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외국 노동자들, 장애인들, 생활의 여유가 없어 혼기를 놓친 사람들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가 각박해진 관계로 식을 올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식이 하나의 통과 의례적 절차라곤 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하나 됨을 주위에 알리는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이번 이용천 임정란 성도의 결혼식에서 저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험한 세상,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지극히 이기주의 속성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잘난 척 하는 세상에, 서로 도우며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는 사실은 우리의 미래를 희망의 눈으로 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역사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 우리 인간이 제 역할을 다 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룬 이용천 임정란 성도가 그런 선하고 착하면서 소수의 창조자 속에 위치시키는 제 마음이 몹시 유쾌합니다. 그들의 결혼식을 '아름다움 결혼식'으로 명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장애인결혼식#자원봉사#농촌교회#축복 송#장미꽃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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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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