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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앞 석조불상
 박물관 앞 석조불상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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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박물관을 우회하다 보니 박물관 앞마당으로 부석사 가는 길이 나 있다. 그런데 박물관 앞에 처음 보는 부처님들이 있다. 가운데 석조비로자나불입상이 있고 좌우에 석불좌상이 있다. 세 불상은 처음부터 이렇게 놓여 있지 않았을 것이다. 각기 다른 곳에 있었으나, 성보박물관이 만들어지면서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불상의 역사와 유래에 대한 설명이 없어 답답하다.

우리는 성보박물관을 돌아 입구로 간다. 그런데 문을 닫았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오후 3시 30분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단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일찍 문을 닫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은 폐장 30분 전까지 입장객을 받는다. 지금이 동절기라는 것을 감안해도 4시 30분까지는 입장객을 들여보내야 하지 않을까. 절을 신앙의 차원이 아닌 공부의 차원에서 찾는 나 같은 사람은 박물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게 정말 화난다.

박물관 입장 마감을 알리는 기와
 박물관 입장 마감을 알리는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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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성보박물관은 2009년 신축됐다. 그런데 지나치게 서양식으로 지어 동양다운 절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부석사와 상당히 떨어진 데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어쨌든 우리는 성보박물관과 인연이 없나 보다. 매년 한 번씩 부석사를 찾지만, 아직 들어가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온라인상에서라도 유물을 확인하고 싶지만, 성보박물관 누리집 역시 없다(부석사 누리집만 있을 뿐이다). 12월 초 소백산 자락길 11~12코스를 답사할 예정이지만, 그때는 이번 답사의 종점인 부석사 주차장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성보박물관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시장판이 따로 없고 속세가 따로 없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에 우리 일행은 부석사 법당 쪽으로 향한다. 부석사는 남쪽의 일주문을 통해 들어가면 당간지주와 천왕문을 지나 대석단(大石壇)으로 오르게 돼 있다. 대석단은 높이가 4.3m, 길이가 75m인 돌 축대로, 신라 하대에 세워진 절들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대석단 위에서 길은 범종루와 안양루를 거쳐 부석사의 중심법당인 무량수전으로 이어진다.

사진을 찍어 주는 스님
 사진을 찍어 주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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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보박물관 쪽에서 왔기 때문에 바로 대석단 위로 들어선다. 그런데 대석단 주변이 발굴과 공양간 신축, 후원 공사 등으로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전에는 대석단을 오르며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더 시끄러운 사바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또 토요일이라 그런지 부석사를 찾은 사람들이 참 많다. 사람과 공사 소음이 뒤엉켜 절 마당이 마치 시장바닥 같다.

그래도 이곳에 왔으니 부석사의 진수인 무량수전을 찾아 나선다. 대석단 위에는 가운데 길옆으로 두 기의 석탑이 있다. 이 석탑 옆에는 불사리탑 이건비(移建碑)가 있어, 이 탑이 부석사 동쪽 폐사지에서 가지고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석탑 왼쪽으로는 종무소와 요사채가 있다. 이곳에서 만난 스님은 관광객들의 부탁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요즘 스님들, 정말 참선하고 도 닦기 어렵게 생겼다.

범종루와 단풍나무
 범종루와 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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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루 앞에는 서리 맞은 단풍잎이 검붉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범종루는 2층 누각으로 1층은 통로로 사용되고, 2층에 사물이 설치돼 있다. 범종루 1층 통로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범종루 2층 마당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범종루에는 법고, 운판, 목어만 있고 범종은 없다. 그렇다면 부석사 범종루는 중국식의 고루(鼓樓)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종루는 서쪽에 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범종루에서 안양루로 이어지는 길은 동쪽으로 30° 정도 오른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올라가면서 보면 1층에 안양문이라는 편액이 있고, 2층에 부석사라는 편액이 있다. 안양문은 일반적으로 극락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안양루 역시 1층은 통로로 사용하고, 2층은 난간을 둘러 공부도 하고 풍류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2층 누각 안에는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시문이 현판으로 걸려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 봤지만...

무량수전 앞 풍경
 무량수전 앞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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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 1층 계단을 오르면 앞으로 석등과 무량수전이 나타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법당으로 아마타여래를 모셨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린다. 무량수는 말 그대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의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무량수전은 고대 불교 전각의 형식과 구조를 연구의 기준이 되는 아주 중요한 건축물이다.

이곳 법당 안에도 사람들이 참 많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다. 그냥 멀리서 문을 통해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최순우 선생이 말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앞에 서본다. 정말 '부석사의 아름다움에 사무치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지 느껴 위해서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러한 감정이 생겨나지 않았다. 나의 감정이 메마른 걸까?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세속화되어 있는 걸까? 최순우 선생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부석사 풍경
 부석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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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기둥의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진다." (최순우 <부석사 무량수전> 중)

부석사를 찾은 사람들
 부석사를 찾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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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인적이 뜸했던 절 마당이 지금은 시장판처럼 사람들로 북적인다. 또 기둥·추녀·주심포 같은 건축을 보는 나의 심미안이 부족해서인지, 아름다움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렇지만 저 멀리 소백산의 연봉이 만들어내는 파노라마에서는 유장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부석사가 자연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기도 하고, 산봉우리가 부석사를 향해 치달려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절은 적멸(寂滅)을 꿈꾸는데, 유감스럽게도 사람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화엄종찰을 떠나며

2010년 11월의 대석단 위 발굴 모습
 2010년 11월의 대석단 위 발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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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답사에서 조사당과 자인당 쪽으로는 올라가지 않았다. 이번 답사의 목적이 소백산 자락길을 걷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루 동안 답사한 소백산 자락길은 제8~10코스로 총 길이가 무려 22km가 넘는다. 거기다 되돌아온 길 4km를 생각하면 26km 정도를 걸은 셈이다.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걸어 몸이 피곤하기도 하다. 해도 많이 짧아져 시간의 여유도 없는 편이다. 이제 절을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나는 올라온 길과 달리 서쪽의 새로 지은 법당 쪽으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일몰을 좀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름이 끼고, 날씨가 맑지 못해 서쪽 하늘이 그렇게 멋지지 않다. 내려오면서 나는 잠시 당간지주를 살펴본다. 조각으로 봐서는 별 게 아닌데 보물(제255호)이란다. 좋게 말해서 소박이고 세련이지, 조각기법이 거칠고 단순한 편이다.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당간지주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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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내려오니 근래 세운 부석사 중수기적비가 있다. 안상이 새겨진 지대석 위에 앙련 받침을 만들고 그 위에 탑신을 얹었다. 이곳을 지나 더 내려오면 부석사 일주문이 나온다. 이곳에는 안쪽에 '해동화엄종찰'이라는 편액이, 바깥쪽에 '태백산부석사(太白山浮石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부석사가 해동화엄의 종찰이 된 건 화엄종의 비조가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625~702)이기 때문이다.

의상대사는 643년 경주 황복사에서 출가했고, 661년에는 당나라로 유학 갔다. 그는 종남산 지상사에 있는 지엄(智儼)스님을 찾아가 화엄학을 공부했다. 그는 화엄경의 깊은 뜻을 깨닫고 670년 신라로 돌아왔으며, 676년 태백산에 들어가 부석사를 세우고 화엄학을 가르쳤다. 그 내용이 <삼국유사> '의상전교(義湘傳敎)' 부분에 잘 나와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부석사는 태백산에 있다. 그 때문에 지금도 부석사 일주문 현판에는 '태백산부석사'라고 쓰여 있는 것이다.

부석사 일주문
 부석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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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나오니 길가에 사과와 농산물 그리고 산나물을 파는 노점상들이 있다. 이들은 해 떨어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팔려고 노력한다. 이 길을 지나면 분수 연못이 나온다. 분수 역시 만든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절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제 주차장에 가면 버스가 우릴 기다릴 것이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버스를 찾는다. 먼저 내려온 일행이 손짓한다. 버스를 타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간다. 풍기에 있는 인삼 갈빗집이다. 이 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집이란다.

12월 10일에는 소백산 자락길 마지막 답사 일정이 잡혀 있다. 11~12자락으로 영주시 부석면에서 단산면을 거쳐 순흥면으로 이어지는 소백산 동남사면 트레킹 코스다. 이 코스는 저수지를 세 개나 지나게 돼 '수변길'이라 불리기도 한다. 부석저수지, 단산저수지, 순흥저수지가 그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수지의 명칭이 면의 이름과 똑같다. 다음 답사가 벌써 기다려진다. 그게 바로 소백산 자락길이 갖는 매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답사는 11월 12일 다녀왔습니다.



태그:#부석사, #성보박물관, #안양루, #무량수전, #해동화엄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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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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