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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저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도대체 저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이정민

"매년 하는 김장 나눔이지만 이렇게 골목 전체를 막고 5000포기 김치를 담가야하는 준비는 해도 해도 끝이 없어요(웃음). 배추부터 속 재료까지 하나하나 사람의 손길과 정성을 거쳐 탄생하는 거라 그만큼 고된 일이지요. 그래도 학생 손부터 어른 손까지 두루 도와주시고 힘을 보태주시니 그만큼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답니다." - 고금옥 피안복지관 관장.

 배추 5천포기를 김장김치로, "김치달인들 여기 다 모엿"
배추 5천포기를 김장김치로, "김치달인들 여기 다 모엿" ⓒ 이정민

첨단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인천광역시에서 그래도 예전 모습 그대로를 갖추면서 사람 인심까지 더불어 풍겨나는 동네가 바로 남구 숭의동 작은 마을이다. '장사래마을'이라고 불렸던 숭의동의 이런 고풍스런 역사는 1903년 인천부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마을이름에서 유래된 '장사래'의 명칭은 이 마을 하천이 길고 꾸불꾸불 뱀과 같아서 장사천에서 비롯됐다. 이밖에도 숭의동 하면 떠오르는 말은 장의리말, 독각다리말, 능안말, 주옥골, 황곡골, 용동고개 등이 있다. 이렇듯 이 작은 마을은 곳곳에 추억어린 명칭이 주민들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복지관 앞 마당에 김치잔치가 풍성
복지관 앞 마당에 김치잔치가 풍성 ⓒ 이정민

그래서인지 남구 숭의동은 타 도시에 비해 홀로 사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슬레이트 지붕의 소소한 집들이 아직 그 고풍스런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말이 도시지 시골 동네의 사랑방 같은 그루터기 쉼터가 많아 마을 주민들은 종종 잔치를 벌여 그들만의 행복을 나누곤 한다.

이번 불우이웃을 위한 5천포기 김장행사도 그 일부 중의 하나인 것. 마을 중심에 위치한 피안복지관은 매일같이 독거노인들을 초청해 무료 점심을 대접하고 있다. 이어 명절이나 계절이 바뀔 무렵엔 주변 이웃들과 함께 나눌 음식을 마련해 큰 잔치를 벌인다.

 대형 살수차에서 나오는 물로 대파도 씻어내고..
대형 살수차에서 나오는 물로 대파도 씻어내고.. ⓒ 이정민

이에 지난 11월 28일과 29일, 피안복지관 앞마당 전체를 임대해 이틀 동안 5천포기의 김장김치를 만드느라 여념 없는 현장을 찾았다. 이미 배추가 산을 이룰 만큼 높이 쌓여있는 복지관 앞마당은 매콤달콤한 냄새와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힘은 들어도 웃음만은 끊이질 않았다
힘은 들어도 웃음만은 끊이질 않았다 ⓒ 이정민

복지관 1층 식당 안에서는 배추 속에 들어갈 무를 갈고 다지느라 정신이 없고, 그 바깥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배추 껍질을 다듬고 소금에 절이느라 여념이 없다. 그야말로 김치공장에서나 볼 수 있는 엄청난 광경이다.

 배추와의 전쟁
배추와의 전쟁 ⓒ 이정민

"아저씨, 그 배추 좀 빨리 갖고 오쇼. 왜 이렇게 느려 터져부러."
"어마, 그 아주메, 성질도 급하셔잉, 일이라는 게 순서가 있는 거 아니여. 좀 기둘려 보랑께." 
"소금도 좀 팍팍 넣고, 배추 속을 알차게 절여야 김치가 맛나게 나오징."
"양념 양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간을 어떻게 맞춰야할지 모르갔네. 워쩐당."
"어이 김씨, 이리와서 간 좀 맞춰봐, 이 아저씨 힘만 쓸 줄 알지, 도저히 안되겄네."
"하하하하, 호호호호, 어이 학생... 빨리빨리 좀 오랑께."

 배추 산에 올라 배추와 한 몸이 되어...
배추 산에 올라 배추와 한 몸이 되어... ⓒ 이정민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끝이 없는 이야기 놀이에 일을 하는지 잡담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숨 가쁜 현장 분위기다. 봉사자들은 연신 땀을 훔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엔 하나같이 알 수 없는 미소로 충만했다.

장정 3명이 2m 넓이의 통에 직접 들어가 눈 치울 때 쓰는 커다란 삽으로 속을 헤집는다. 2m 높이의 통에 올라간 아주머니 3명은 발로 배추를 알맞게 눌러가며 절인 상태를 내내 확인한다. 자원봉사에 참석한 앳된 소녀 2명은 아주머니 곁에서 작은 일들을 도와주며 엷은 미소로 고됨을 표현한다. '와, 진짜 배추와의 전쟁이다.'

 배추를 씻는 아저씨 손길에서 장인의 향기가..
배추를 씻는 아저씨 손길에서 장인의 향기가.. ⓒ 이정민

 끝날 무렵이 오자, 아줌마 자원봉사자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끝날 무렵이 오자, 아줌마 자원봉사자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 이정민

오전부터 시작된 첫 날 강행군은 오후4시가 되어서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행사를 주최한 피안복지관 김금옥 관장은 "오늘은 김장을 절이고 내일은 속을 채워 김장김치를 담근다"고 전한다. 전하는 말에 깊은 여운이 숨어 나온다.

날이 저물어 갈 무렵, 다하지 못한 김장절임을 포장으로 감싸고 고단했던 봉사의 하루가 끝이 났다. 이들은 내일 또 일찍 나와 최종 마무리를 위해 손을 보탤 예정이다. 김 관장은 오늘 보다 내일 더 많은 봉사자들이 나와 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학상~, 고작 배추 하나 달랑 들고 어델 그렇게 가시남~"
"학상~, 고작 배추 하나 달랑 들고 어델 그렇게 가시남~" ⓒ 이정민

"힘이 들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죠. 걱정도 그만큼 많이 되는데 오죽하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서 만든 김치가 누군가의 식탁위에 올라갈 모습을 그려봐요. 함께 한 봉사자들도 바로 그 모습 때문에 매해 같이 사랑을 보태고 있고요. 오늘은 이렇게 끝났는데 내일은 또 어떻게 잘 마무리 할지 걱정이네요. 아마 잘 될거예요.(웃음)"


#피안복지관#김장김치 5천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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