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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지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인권위가 한국사회의 인권신장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인권·학술단체들은 지난 18~19일 서강대에서 인권위 10주년 대토론회를 개최했고, 여기서 논의된 내용을 모았습니다. 인권은 한 사회의 발전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인권위 10년의 평가가 우리 사회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고 또다른 10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국가인권위 10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현재의 국가인권위 모습을 보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처럼 위상이 추락하고, '알리바이 국가인권위'로 전락하게 된 것은 이명박 정권과 현병철 현 위원장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지적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이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지금 출범 10년을 맞은 국가인권위는 최악의 모습이다. 여기서 더 추락하는 국가인권위는 그 존재감조차도 인정받기 힘든 지경이 되는 '말로만 국가인권위'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전의 국가인권위원회는 만족할 만했던가? 왜 인권활동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인권위에 기대를 접어갔을까? 과거의 자료들을 뒤져보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냈던 <인권하루소식>을 찾아보았다. 이제 조금은 불편할지 몰라도 초기 국가인권위가 출범할 때로 잠시 시간여행을 해보자.

 

출범 때부터 지속된 문제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운동진영과 시민사회가 3년 동안 치열하게 싸워서 획득한 성과였다. 3년간의 활동 중에는 두 번의 단식농성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2000년 말과 2001년 초의 명동성당 혹한기 노상단식농성은 잊을 수 없다. 30년 만의 강추위와 폭설 속에서도 천막도 없이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서 13일 낮과 밤을 지새웠다. 그런 뒤에야 미약한 수준이지만 지금의 독립된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 수 있었다. 인권운동의 큰 승리였다.

 

하지만 그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할 때는 인권운동진영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탄생하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은 '국가인권위원회 바로 세우자! 인권단체연대회의' 소속의 인권단체들을 배제했다. 그해 11월 24일자 <인권하루소식>에 실린 논평을 보자.

 

(줄임) 즉 국가인권위원회는 언제나 고난과 함께 있는 것이고 이런 고난을 돌파해 나가기 위해 언제나 '인권'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줄임) 이 고립의 일차적 원인이 현 인권위원회의 엘리트주의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기술적으로 '잘' 만들기 위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많은 인권단체들을 아예 논의에서 배제했다는 것 (줄임) 이 민간단체들의 정기적 간담회 요청마저 거부했다. 인권운동가들을 위원회에 '자리'를 얻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정도로 치부하는 (줄임) 저급한 인식은 인권위원회가 인권단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데 실패한 결정적 원인이었던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출범을 누구보다 갈망했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제대로 자리 잡기를 누구보다 바랐던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이 배제된 채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이후에도 이런 문제들을 시정하지 못했다. 급기야 2002년 6월에 인권운동사랑방은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일체의 협력을 거부한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처럼 초기부터 인권운동진영 전체와 호응하지 못하였고, 이후에도 인권단체들과의 소통, 협력에 부족했다. 인권위 회의를 공개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서 비난을 받았다.

 

애증에서 무관심으로, 다시 분노로

 

국가인권위에 대한 인권운동진영의 태도는 이중적이었다.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국가인권위는 점차 관료주의적 기구로 변질되기 시작했고, 인권 감수성과 전문성이 떨어졌다. 특히 치열한 인권의 현장에서 국가인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뒷북치는 국가인권위의 모습이나 직권조사나 사법부에 대한 의견 제출을 기피하는 모습, 인권의 원칙과 감수성에 기대기보다는 실정법의 조항들과 사법부의 판례에 기대는 또 다른 사법기관화하는 모습들에 실망이 더 커졌다.

 

반인권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가기관이나 기업들에 대해서 국가인권위는 철저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현실적인 타협책을 주로 찾았다. 법적인 한계, 권한의 한계를 넘으려는 싸우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주로 성과를 내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장 크게 홍보한 것은 국가인권위가 낸 권고의 대부분이 수용되었다는 점이었다. 수용을 거부한 부처에 대한 의견표명 같은 것은 하지 못한 채 권고했고, 수용한다고 했으니 되었다는 그런 태도가 지속되었다.

 

필자는 이런 문제들이 국가인권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매일 쏟아지는 현안들에 묻혀 바삐 움직이는 인권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제대로 감시, 견제, 견인하지 못했다. 또 인권운동진영은 시민사회의 힘도 조직해내지 못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국가인권위 설립을 위해 헌신했던 인권운동진영은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해 실망하고, 무관심해졌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급기야 분노하기에 이르렀다.

 

어디서부터 다시 세팅할까

 

국가인권위의 한계를 넘어 제대로 된 국가인권위를 만들기 위해서는 헌법기구화도 해야 하고, 인권위원 검증위원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내부에 인권교육센터를 만들어 인권위 직원들의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들에 동의한다.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게 아닌 것 같다. 국가인권위가 쌓은 10년의 성과는 성과대로 계승하면서도 우리 사회 전반의 인권 발전 방향에 대한 전략 수립이 먼저 되어야 한다. 10년 전 국가인권위원회를 세울 때와는 사뭇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은 출발이지만 광역시도에서 인권조례, 인권위원회, 인권센터를 만들고, 일부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방 교육청별로 학생인권조례와 이를 담당할 기구들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인권이 국가 단위에서만 고민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촘촘하게 인권관련 기구들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진정으로 국가인권위가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이들(지금의 현병철 체제의 국가인권위를 지지하는 몰지각한 반인권 인사들을 제외한)과 민간 인권운동진영이 허심탄회하게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을 세우고, 향후의 국가인권위의 위상과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국가인권위가 본령에서 이탈하지 않고 오로지 인권의 가치를 깃발로 만들어 세우고, 국민의 인권, 인권침해와 차별에 피눈물을 흘리는 약자들의 편에 서는 국가인권위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관심과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국가인권위는 홀로 설 수 없고, 홀로 잘할 수 없다. 따라서 인권을 끌어안고 고민하는 시민사회의 힘을 키워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민간 인권센터를 통한 공론화와 시민 역량을 키워내는 일은 꾸준히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논의들 위에서 새롭게 국가인권위를 세팅할 날을 위한 준비를 하자.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현병철 때문에, 이명박 정권 때문에로 돌리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세팅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논의가 시작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박래군 기자는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입니다.


태그:#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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