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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공군에서 새로운 '불온서적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거기에는 2008년에 선정된 불온도서 23종에, <낯선 식민지, 한미FTA> <길에서 만난 사람들> <슬롯> 등 19종의 책이 추가돼 있었습니다. 새롭게 불온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린 이 책들은 과연 얼마나 불온한지, '불온도서를 읽다' 시리즈를 통해 불온하게(?) 읽어보겠습니다. <편집자말>

유난히도 추운 겨울 밤, 나는 시청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있었다.

 

도박과 여자에 관한 소설이었다. 과거 운동권이었던 '386세대' 프로그래머가 "카지노로 가자"는 옛 연인의 전화를 받고 동행한다. 그는 일상에 대한 권태로 인해 카지노에 가지만, 어느 정도의 돈을 잃었을 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 크게 변할 확률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듯, 며칠 동안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계속되는 시위에도 한미FTA 체결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MB 아웃"과 "한미FTA 반대"를 외치고 있었고, 손에는 촛불과 피켓을 들고 있었다.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실리를 따져 옳고 그름을 분석하는 편이 더 낫겠지만, 일반인이 협정문을 읽기는 어려울 뿐더러 설사 읽는다손 치더라도 이해하기에는 불가에 가깝다는 사실은 인정해야만 했다. 또 '리'보다 '실'이 더 클 것이기에, 추운 날씨에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불온도서를 지정하고 금지하는 국방부와, 촛불시위대에 아랑곳 않는 정부가 겹쳐 보였다. 이 세상이 서민들에게는 카지노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리라는 생각도 했다.

 

카지노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평범한 사람이 도박을 시작한다면 돈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천천히 잃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반면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 사람들 판돈을 대주는 거지. 게임은 그 사람들이 하고 나는 승패에 상관없이 이기게 된다. 난 이상하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어. 도박 따위로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거지"(300쪽)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죽거나 살거나...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

 

<슬롯>은 이러한 카지노의 속성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측면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주인공 '나'와 윤미, 수진, 기훈을 통해 그려낸 소설이다. 주인공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형이다. 윤미는 유명 고등학교 입학으로, 수진은 부자 선배인 기훈과의 결혼으로 자신의 원래 위치에서 탈출해 높은 위치로 가기를 꿈꾸었으나 실패한다.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면모를 무기로 삼아 성공한 기훈만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서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약자인 윤미와 수진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 물리학에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 실험이 있다. 무작위로 독과 보통 음식 중 하나를 주는 장치가 있는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었을 경우, 기계론적 논리에 따르면 죽었거나 살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양자 현실에서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 고양이는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을 수 있다. 고양이의 상태가 확실해지는 것은 상자를 열어 직접 고양이를 보았을 때이다. 윤미는 카지노에 있는 사람들은 상자 안에 있는 고양이가 어떻게 되었을까 무척 궁금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고양이를 자본으로 비유한다면 한미FTA는 개개인 앞에 더 많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 속 상자를 두는 것과 다름 아니다. 미국 자본시장이 결국은 개인의 자본에도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몇 번씩 그들의 고양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는 고통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사회 부유층은 "상자에 든 고양이가 살았든 죽었든 관심 없다. 고양이가 죽었다면 새 고양이를 사면 그만이다"(306쪽)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현재 사회는 소수인 사회 부유층에 충분히 유리한데도 속도를 더욱 올리며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목숨까지 잃어버리고 나서야 끝나는 비극적 게임

 

시청광장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촛불이 마치 그 방향으로 가면 위험하다는 신호등의 빨간 불 같아 보였다. 소설 속에서 윤미가 "내가 계속 잃고 손해를 보는 것을 보면 누군가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세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잖아요"(204쪽)라고 한 말도 귓가에 울리는 듯하였다.

 

시위대의 행사가 끝나고 거의 모든 사람이 돌아가서야 전경들은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한문 앞 광장은 텅 비었고, 몇몇 행인들만 지나가고 있었다. "겨울의 찬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정체성의 상실로 가파른 자본주의적 경쟁의 바다에서 엉거주춤 부유하는 존재의 아릿한 슬픔"(330쪽) 때문인지 코끝이 찡했다. 그리고 이 시대 문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작가 신경진은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작가의 말'에서 루카치의 이론을 빌어 이렇게 밝혔다.

 

소설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거울이어야 한다. 이것은 다원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다수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의다. 그럼 내가 쓴 소설도 시대정신을 그려내야 한다.(5쪽)

 

덧붙여 말하자면 소설은 근대적 가치를 가진 허구적 이야기이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풀어내면서도 노골적으로 인간 중심의 줄거리를 있을 법하게 잘 꾸며낸 소설이야 말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외면하고자 하는 가치를 추구하고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준 소설은 불온서적이 될 만했고, 문학상을 받을 만했다(<슬롯>은 3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이다). '불온도서'라는 불합리한 외부적 압박에도, 루카치의 이론을 통해 자기검열을 하며 계속해서 작품을 써야만 할 작가정신도 느껴졌다.

 

대한민국 경제는 카지노와 너무도 흡사하다. 얻는 자와 잃는 자만 있을 뿐이다. 얻는 자는 계속해서 얻고, 잃는 자는 끝까지 잃는다. 몇몇 잃는 자들은 목숨까지 잃어버리고서야 끝나는 비극적 게임. <슬롯>은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슬롯> 신경진 씀, 문이당 펴냄, 2007년 3월, 327쪽, 9800원


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문이당(2007)


태그:#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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