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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 1일, 대한민국 법률 제10호로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은 여러 변천을 거쳐 올해로 63년째를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저지른 악행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에 역행한다는 비판은 치명적입니다. 심지어 미국 등 주요국들로부터 폐지권고를 받았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와 국가보안법긴급대응모임은 12월 1일을 맞아 'NO! 국가보안법, STOP! 국가보안법' 기치 아래 국가보안법 대응주간을 설정하고 12월 9일까지 연속 기고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국가보안법 철폐 목요집회 유가협 민가협 회원과 양심수들이 국가보압법 철폐를 위한 행동을 하고 있다.
▲ 국가보안법 철폐 목요집회 유가협 민가협 회원과 양심수들이 국가보압법 철폐를 위한 행동을 하고 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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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은 1993년부터 매주 목요일 탑골공원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석방을 주제로 목요집회를 열어왔다. 매주 열리는 집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사연들이 소개되고는 한다. 지난 10월의 어느 목요집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을 감옥에 보낸 만삭의 임산부는 아이 아빠가 없어도 잘 낳아 기르겠다고 눈물을 훔치고, 아들을 보낸 어머니는 며느리의 손을 꼬옥 잡고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날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국가보안법 피해 사례를 들어가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역설하던 중에 60이 넘어 보이는 한 아저씨가 갑자기 마이크를 빼앗더니 "개소리 집어치워라!"하고 외쳤다. 곧 사람들이 몰려가서 그 사람을 끌어냈고 결국 경찰이 와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다면 유엔의 인권기구에서 매번 날아드는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는 무엇이란 말인가. 심지어 우방이라는 미국에서조차 연례보고서에서 매년 국가보안법의 전면적인 개정 또는 폐지를 권고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국제인권단체들은 왜 또 매번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가. 이들 기구들이나 미국의 국무부가 내정간섭을 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반응도 안쓰럽기만 하다.

자신의 주장과 조금이라도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을 '좌빨'이라고 매도하는 보수진영의 정치인과 언론들의 주장은 사실 비상식적이다.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이들이라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먼저 나서야 하는 게 상식에 맞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을 옹호해야 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국가보안법을 유지하자?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비상식적인 발상이다.

상식의 눈으로 국가보안법을 보자

국가보안법은 하나의 법률이 아니다. 법률 위의 법, 심지어는 헌법 위의 법이다. 다 죽어가는 것 같던 국가보안법이 이 정권에 들어와서 다시 관 속에서 걸어 나와 활개를 치고 있다. 국정원장과 기무사령관을 대통령이 독대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다. 그래서 국정원(국가정보원), 기무사(국군기무사령부), 경찰 보안수사대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국가보안법 사건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다.

 국정원의 왕재산 사건 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국정원의 왕재산 사건 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 한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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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이른바 왕재산 사건으로 5명을 구속한 데 이어 120명이 넘는 이들을 참고인으로 불러놓고 있다. 특히 인천지역에 집중된 이런 참고인 소환사태는 저인망식 수사이고, '아니면 말고' 식의 수사다. 당사자들에게 수시로 전화하고, 집에 찾아오고, 참고인이라고 했다가 피의자라고 하고…. 국정원이 갖고 있는 수사권을 남용하는 정도가 지나치다.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수사에서 이런 경우가 없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집회 때 민간인 사찰이 발각되었던 기무사는 이번에는 조선대 기광서 교수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건강보험공단에서 개인정보를 얻어갔던 사실도 드러났다. 민간인 사찰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기무사가 민간 영역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음이 드러난 사건은 충격이다. 다시 기무사가 민간인에 대한 사찰과 감시를 한다면 좀만 더 나가면 기무사가 민간인들을 수사까지 할 판이다.

트위터에서 북한 관련 트윗들을 알티했다는 등의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한 박정근씨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경찰 보안수사대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감시하면서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구실들을 찾는다. 뿐만이 아니다. 전 국민의 인터넷 사용을 감시하면서 전기통신망법 위반사항을 뒤지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사이트 삭제를 요청하는 일은 대부분 전국에 산재해 있는 경찰 보안수사대가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일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에 입건되는 사항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한 감시 속에 놓여 있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정원은 패킷 감청을 넘어서 기지국 수사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법을 두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유엔의 자유권위원회나 인권이사회, 그리고 지난 6월 발표된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도 국가보안법의 폐지 내지는 전면적인 개정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남과 북이 대치된 특수한 상황이라고 해도 유엔에서는 이런 핑계를 들어주지 않는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사상, 표현의 자유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제한되어야 한다. 사상의 자유는 국가도 간여할 수 없는 절대영역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고, 이런 상식에 어긋나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게 또한 상식이다.

광화문에서 1인시위를 하면서 만난,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은 "김정일 만세"를 불러도 좋냐고 묻는다. 그것이 직접적으로 우리 사회에 명백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김정일 만세"를 외쳐 불러도 좋다는 게 인권이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친북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폐지하는 19대 국회를

 국가보안법 제정 63주년인 1일 오후, 국가보안법 강화와 폐지를 각각 주장하는 1인 시위자 두 명이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국가보안법 제정 63주년인 1일 오후, 국가보안법 강화와 폐지를 각각 주장하는 1인 시위자 두 명이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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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일은 국가보안법 제정 63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가보안법 상황은 매우 심각한데 세상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1인 시위도 하고, 토론회도 하고, 집회도 하고, 언론 기고도 하고, SNS를 이용하여 알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피해자들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것 같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는 사실상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간극은 너무 먼 것처럼 보인다.

지난 11월 29일 저녁에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서울 서대문에서 만났다. 자신들이 겪는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수사관들이 몇 시간이고 집을 뒤지면서 압수수색했던 날의 충격, 국정원이나 보안수사대 수사관 앞에서 낱낱이 사생활이 까발려지던 그런 기억들….

한 참가자는 "내가 이들 앞에서 친북이 아님을 설명해야 하는가. 마치 일기장 검사 받을 때처럼 모욕적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 무죄 선고를 확정받은 이도 고통은 마찬가지였다. 우리 사회에서 한번 국가보안법 피해자로 찍히면 영원한 낙인이 되는 고통이 수반된다. 피해자들의 대다수는 신경안정제에 의지하고 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비인간적인, 비상식적인 일을 끝내야 마땅하다. 그래서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후보자들을 지지할 생각이다. 도무지 이대로 공안기관이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사람을 파괴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를 경직되게 획일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야만을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 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없으므로 너무도 자유로운 세상을 함께 만끽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거니와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상식의 문제다. 상식을 회복하는 일에 보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래군은 국가보안법 긴급대응모임 대표입니다.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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