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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 접촉 시간은 겨우 2~3초
▲ 고객 집 앞에 기다리는 모습 고객과 접촉 시간은 겨우 2~3초
ⓒ 최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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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보편화된 생활 편의형 택배서비스는 익일배송을 원칙으로 한다. 하루하루가 바쁜 그는 운전을 하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울린다. 이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소비자들은 "언제 오냐", "몇 시까지 와달라", "집에 없으니 다음에 방문해달라"며 배송기사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 채근한다.

서울 압구정동을 배달구역으로 맡고 있는 최아무개(46)씨는 택배 일은 비록 힘들지만 베푸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택배 일을 한 지 2년이 되어가는 그를 지난 11월 21일 경기도 시흥에 있는 택배 사업소에서 만났다.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오전 6시 기상한다. 6시 50분까지 사업소 도착해서 물건 찾아내면 3~4시간 걸린다. 물건배송은 보통 오후 6시 정도에 끝난다. 각 구역에 있는 편의점 픽업하고 사업소에서 내리면 8시 전후로 마감 끝나며 하루일과가 끝난다. 물량이 많은 화요일은 배송만 밤 7~8시에 끝나고, 하다 보면 밤 10시 넘어서 끝난다."

-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은행 지점장 하다가 구조조정됐다. 서울로 올라와 아들 공부 시키려 했는데, 누구에게 지장 안 받고 할 수 있는 일이 택배 일이라 시작하게 됐다."

- 보통 기름은 얼마나 넣는가.
"그나마 정부에서 리터당 330원을 보조해준다. 기름은 한 번 넣으면 9만 원어치 들어간다. 하루에 기름값으로 1만1000~2000원 정도 나와, 따지고 보면 한 번 넣어서 일주일 타는 거다. 하루에 80km 움직이며 한 번 넣을 때 57리터 정도 들어간다."

- 택배기사 중 회사 직원이 있고 개인사업자가 있던데.
"화물운송자격증을 취득해 직접 차를 구입해야 한다. 영업용 차량번호 가진 개인사업자다."

하루 13시간 근무, 이동거리 80킬로미터

- 물건당 배달 수수료는 얼마씩 받는지.
"대한통운은 평균 한 개당 800원씩이다. 무게에 따라 천 원 넘는 것도 있고 작은 건 7백 몇십 원 남지만 평균 따져보면 물건당 나에게 남는 돈은 800원으로 보면 된다."

-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일단 육체적으로 힘들고,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서 밖에서 몇 시간씩 서 있어야 하니까 힘들다. 택배 일은 날씨에 영향을 받는 직업이라 비나 눈이 올 때 이동하기가 불편하다."

- 식사는 언제 하나.
"정해진 시간이 없고 한가한 월요일은 12시 반에 그 구역 돌린 택배기사들과 연락해 같이 밥 먹고 휴식을 취한다."

- 명절에는 어떻게 가동되는지.
"특수기 비상 가동 때는 사업소에 오전 5시 반에 출근한다. 택배 일은 새벽 1시까지 한 적이 있다. 택배 원칙은 익일배송이라 그 물건이 상하면 기사들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 월 수입은 얼마나 되나.
"사업소에서 받아서 배달하는 개수는 한 달에 4000개에서 ±200건이고 개인적으로 받은 택배나 기업체에서 고정적으로 보내는 것과 편의점 집하까지 포함하면 순수 수입은 한 달에 500만 원이다. 개인사업자라 부가세 10% 빠지고, 기름값 및 식대 기타비용을 빠지면 400~450만 원 정도 남는다."

- 휴대폰 비용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한 달에 9만5000원 정액제로 쓰고 있다. 다른 기사들은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 난 조그마한 것은 과감하게 투자한다. 전화요금 때문에 전화를 안 쓰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부부싸움 불똥... 뜯어보지도 않고 반품시키기도

- 고객들의 불만은 무엇인지.
"보통 불만접수는 고객이 일방적으로 한다. 배달시간은 택배기사 권한인데 고객이 김장 준비해야 한다고 고춧가루가 급히 필요하니 빨리 갖다달라고 하면 곤란하다. 고객 사항을 들어주면 동선이 흐트러진다. 한 걸음이라도 줄여야 하는 게 이익인데 시간은 더 들고 돈은 똑같고 난처한 적이 있다."

- 섭섭한 적은 없나.
"예전에 고객 집을 방문해서 물건을 갖다 줬는데 부부싸움을 하고 있었다. 물건도 보지도 않고 바로 반품한다고 집어던질 때 서운했다. 가정집 문을 두드렸는데 나오지 않아서 경비실에 맡겨놨는데 '자기 집에 있는데 왜 두드리지 않았냐'고 '방문도 안 한 채 경비실로 갖다 놓은 게 아니냐' 고 의심할 때도 있다. 이미 물건은 경비실에 맡겨놨는데 고객이 '지금 집에 왔는데 경비실에 왔다 갔다 하기 싫으니 물건 갖다 달라'고 전화한 적도 있다."

- 고객들에게 바라는 점은.
"물건배달하면서 걱정되는 물건은 정확히 주소가 적혀 있지 않는 물건이다. '성원빌딩 610번지 고객 이름'만 딱 적혀 있다. 상호도 없이. 그 건물 안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일일이 찾아야 하는데 전화하면 휴대폰 꺼져 있고 그래서 미배송을 한 적도 있다.

정확하게 소재를 적어줘야 한다. 소재 파악 안 되면 굉장히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만약에 전화 연결 안 되면 끝까지 추적해서 그래도 안 되면 반품시킨다. 그럴 때 시간은 시간대로 소비하고 대가 없이 끝난다."

- 접수를 안 받는 물건도 있나.
"취급불가 품목에 속하는 귀금속, 물병, 전자제품 등을 배송하다 파손하면 결국 기사들 책임이다. 고객들이 끝까지 괜찮다고 배송해달라고 하면 본인이 직접 파손면책동의를 한다고 수기로 서명을 해야 한다."

"힘들지만 가족이 있어서 버틴다"

- 편의점 물건도 수거하는 걸로 알고 있다.
"편의점은 물건 하나에 80원 남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남는 돈은 적지만 많이 수거하면 돈이 된다. 고객들이 직접 포장한 물건을 접수하다 보니 상자 없이 쇼핑백에 테이프를 붙여 접수를 한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컨테이너 벨트 위에서 찢어져서 분실하는 경우가 있어서 되도록 그렇게는 받지 말라고 당부한다."

- 한 달에 4000개 배송하면 힘들지 않은가.
"힘들지만 가족들이 있어서 버틴다. 이제 큰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간다. 작은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현재 아내는 지방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서울에서 같이 일하면 좋지만 아내는 이직하려고 하는데 거기서 일한 경력은 서울에서 인정을 많이 안 해줘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낸다."

- 만약 아들이 택배 일을 한다고 하면.
"난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스스로 깨달게 한다. 내가 택배 일을 하며 몸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들에게 몸으로 일하면서 힘들게 살 것인지 공부를 통해 머리로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스스로 진로에 대해 선택하라고 한다. 나를 보여줌으로써 아들에게 공부를 해야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 이 일을 언제까지 하고 싶나.
"내년 6월이면 고3 아들의 대학 수시모집 당락이 결정된다. 그때까지 택배 일을 할 생각이다. 비록 와이프랑 떨어져 지내 힘들지만 각자 서로 돈 더 벌고 모으자고 약속했다. 나중에 돈을 모으면 생각해 놓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까 생각 중이다."

택배기사들은 평일에는 오후 9시 전후, 연말이나 명절 때는 새벽 1시나 돼야 퇴근한다. 주 5일 근무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열악하지만 택배를 받았을 때 기뻐하는 고객을 보면 흐뭇하다며 자부심을 느끼는 그. 그를 보며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느낀다.


태그:#택배기사, #택배원, #택배아저씨 ,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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