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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원(가명·48)씨는 지난 11월 11일 이후 40일 넘게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로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그는 "재개발조합에 의해 가게가 강제 철거됐다, 생계가 유지될 수 있는 대책이 나올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전했다. 사진은 22일 오후 이씨가 지내고 있는 천막 내부 모습이다.
 이상원(가명·48)씨는 지난 11월 11일 이후 40일 넘게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로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그는 "재개발조합에 의해 가게가 강제 철거됐다, 생계가 유지될 수 있는 대책이 나올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전했다. 사진은 22일 오후 이씨가 지내고 있는 천막 내부 모습이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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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가명·48)씨는 노숙을 한다. 영하 10도의 혹한에도 길바닥을 떠나지 않는다. 바닥 위에 나무 합판과 스티로폼을 얹었고 여기에 이불 몇 장 깔았다. 그 위에 올라앉은 이씨는 러닝셔츠 2벌, 내복, 두꺼운 티셔츠, 트레이닝복, 점퍼를 껴입었지만 냉기를 쫓을 수 없다.

그는 "그나마 낮에는 괜찮다"고 했다. 비닐 천막이 칼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햇볕을 들인다. 천막 안에는 가스 히터도 있다. 문제는 밤이다. 산소 부족과 화재 위험 탓에 히터를 밤새 켜놓을 수 없다. 새벽녘엔 너무 추워 잠을 이룰 수 없다. 이씨는 "밤새 몸이 떨려 어깨가 아플 지경"이라고 전했다.

이씨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로에 있는 철거 중인 건물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 11월 11일이다. 비닐 천막의 한쪽은 건물에 맞닿아 있다. 이씨는 "내 가게가 있던 곳"이라며 "아내가 강제 철거에 맞서 가게를 지키던 중 굴착기에 의해 사고를 당한 후 노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1월 일어난 '용산 참사'로 이후 재개발·뉴타운 사업 지역에서 상가세입자가 쫓겨나는 일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졌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의 칼국수 집 '두리반'은 철거 위기에 맞서 농성을 한 지 531일 만인 지난 1일 재개업했다. 이로써 상가세입자 문제는 전환을 맞는 듯했다. 

하지만 이씨는 한겨울 40일 넘게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재개발 조합은 그를 외면하고 있다. 서울시나 서대문구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22일 오후 이씨를 만났다. 그를 만난 북아현 뉴타운 1-3구역인 북아현로 주변은 철거가 한창이었다.

악착같이 일해 재기에 성공했지만, 재개발로 모두 빼앗겨

고향이 경상도인 이씨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으로 온 것은 2006년 3월의 일이다. 고향에서 장어구이집을 열었지만 금방 망했다. 다시 시작하고자 아내의 고향으로 삶터를 옮겼다. 처가에 손을 벌리고 빚을 내 33㎡짜리 곱창집을 열었다. 주변 상가 임대료의 60% 수준인 월세 70만 원(보증금 1500만 원)의 허름한 곳이었다. 여기에 적지 않은 권리금을 냈다.

"성공하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아이들을 장모님한테 맡기고 아내와 둘이서 일했다. 1년에 며칠 쉬지도 못했다. 보통 오후 3시부터 이튿날 오전 3시까지 일했다. 손님이 1명이라도 남으면 계속 기다려야 했다. 동틀 무렵에 집으로 돌아간 적도 많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빚을 내 7000만 원을 들여 인테리어 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만 원 수준이었던 하루 매상은 2009년에는 60만~70만 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씨는 시나브로 가난에서 벗어났다. 가게를 하면서 빚진 돈 대부분을 갚았다. 또한 북아현동에 첫발을 디뎠을 때 살던 40㎡짜리 반지하 셋방에서 벗어나 2층 전셋방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이씨는 "정직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대우 받는 사회"라고 믿었다.

하지만 2010년 3월 북아현 뉴타운 1-3구역에 대한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떨어져 사업이 확정되면서, 이씨 가족의 삶은 어그러졌다.

곧 가게에 대한 감정평가서가 도착했다. 4개월 치 휴업보상금 2480만 원이 전부였다. 이씨는 "엉터리로 보상금을 책정했다, 그동안 악착같이 일하며 상권을 키우고 단골을 많이 만들었다"며 "이 보상금으로는 이전과 같은 수준의 곱창집을 열 수가 없다, 너무 억울했다"고 전했다.

 북아현 뉴타운 1-3구역에서는 상가세입자 20가구가 조합의 철거 시도에 반발하면서 생계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철거가 진행중인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로 인근 모습이다.
 북아현 뉴타운 1-3구역에서는 상가세입자 20가구가 조합의 철거 시도에 반발하면서 생계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철거가 진행중인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로 인근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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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철거로 이씨 아내 크게 다쳐... "여기서 죽겠다"

그는 재개발조합과 서울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보상금이 2715만 원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조합은 2010년 10월 이씨를 상대로 가게를 비워달라는 내용의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9월 1심 재판에서 승소한 조합은 11월 9일 강제 철거에 나섰다. 이씨의 말이다.

"오전에 용역 직원들이 가게에 들이닥쳤다. 소식을 듣고 가게에 도착했더니 용역들이 곱창이 들어있는 냉장고의 전기선을 끊어 트럭에 싣고 있었다. 집기류를 모두 내팽개쳤다.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렇게 쫓겨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텅 빈 가게 안에서 아내와 함께 농성을 시작했다. 밥도 먹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1일 오전, 이씨가 가게를 잠깐 비운 사이에 굴착기가 들이닥쳤다. 굴착기가 벽과 기둥을 부수기 시작했다. 가게에 있던 이씨의 아내는 용역에 의해 끌려나오던 중 떨어져나온 돌에 다리가 깔렸다. 그 과정에서 다리에 대못이 박혔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이씨는 가게 앞에 천막을 쳤다.

이씨는 "아내까지 큰 사고를 당한 마당에, 여기서 물러나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아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며 "철거를 재개하면 돌에 깔려 죽겠다는 심정으로 농성을 시작했다, 내가 죽으면 사회에 알려지고 그나마 가족들이 잘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가 가장 서글프게 생각하는 점은 행정관청의 무관심이다. 이씨는 "아내가 다쳤을 때 누군가 이곳 상황을 트위터에 올렸고, 이 글을 본 박원순 시장은 그날 트위터에 '아침에 챙겨보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뒤 소식이 없다"며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서울시민으로서 비애감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는 "무조건 큰 보상만 요구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며 "조합이 우리의 요구를 정 들어줄 수 없다면, 대화를 통해 서로 양보할 수 있지 않느냐, 하지만 조합은 대화에 나서지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관할구청인 서대문구청도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북아현 뉴타운 1-3구역 상가세입자는 모두 20여 가구다. 이씨의 가게만 철거됐고, 나머지 가게는 겨울철 철거 중단 규정에 따라 당장의 철거는 면했다. 박원순 시장은 내달 초 재개발·뉴타운 대책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다. 상가세입자들은 초조하게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1-3구역의 철거는 50% 진행됐다. 조합은 철거가 완료되는 내년 봄에 아파트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곳에는 2014년까지 1754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선다.

재개발조합 "상가세입자? 우리와 관련 없는 일"

한편, 재개발조합은 상가세입자들의 생계 대책 요구에 대해 "보상은 감정평가사들이 한 것으로,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조합은 상가세입자를 비롯해, 주택 소유주와 세입자 등 아직 남아있는 수십여 가구를 상대로 13억8000만 원의 공사지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상태다.

서대문구청은 "조합과 상가세입자들이 대화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청 도시개발추진단 관계자는 "미비한 관련 법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조합에게 법 규정 이상으로 보상하라고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청은 내년 봄이 되기 전에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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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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