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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한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인편으로 보내드린 신간 졸저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교육공동체 벗)을 받고 편지를 보내오신 것입니다. 책도 소개하고, 아이들과의 소통과 관련한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뜻에서 선생님이 보내오신 편지와 제가 보내드린 답장을 함께 올립니다. 

학교 축제  순천효산고 연극동아리 <미러클> 공연 장면
▲ 학교 축제 순천효산고 연극동아리 <미러클> 공연 장면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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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선생님!

오늘 우리 아이들 축제일입니다. 아이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축제 연습에 푹 빠져서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춤을 추더군요. 저도 처음에는 덩달아서 축제에 한몫 끼여들 자세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내 맘과 다른 냉랭한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겁니다. 뭐가 잘못된 건가 내가 참여해서는 안 되는 건가 등등 혼자서 속앓이를 하다가 오늘 축제일에도 왠지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기분으로 아이들 하는 거 보다가 맥없이 교무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 책상위에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책장을 넘겼습니다. 감동적인 선생님의 서명과 책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차례를 대강 살펴보고 '책을 펴내며'라는 선생님의 진실을 마음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눈물이 나와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 표지
 책 표지
ⓒ 교육공동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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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2학년 6반 아이들과 나름 사랑을 나누며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마무리할 이쯤에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막 서러운 거예요. 정말 나 나름 아이들을 살펴주려고 노력해왔었는데. 이런 결과를 안고 내가 아이들과 헤어져야 하다니 정말 억울한 생각이 들고 아이들이 야속하고.

몇 년 전이 생각납니다. 그때 선생님이 보내주신 '참실편지'에서 깊은 감동을 받아서 아이들과의 소통을 조금이라도 잘 할 수 있었고 뭔가 답답한 마음이 또 어려운 숙제를 해결했다는 기쁨을 느낀 적이 있었고 그 느낌으로 오늘까지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말 제 마음이 비참하고 내가 그동안 베푼 마음이 허망하다고 느껴져서 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또 선생님의 좋은 글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마무리할 시간이 딱 이틀 남았습니다. 다음 주에 제가 연수를 가기 때문에 날이 더 줄어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제 어둡고 무거운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리라. 또 아이들을 예전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3월 우리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이쁘고 사랑스러웠는지요. 그런데 그 마음이 다 어디로 달아나 버린 거예요. 정말 울고 싶어요.

존경하는 선생님!

제가 너무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져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우리 아이들과 처음처럼 사랑스럽고 행복한 마음으로 마무리 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 진실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반성해봅니다. 내일쯤에는 제 마음에도 희망이 싹트기를 기원해봅니다. 바쁘신 선생님께 이런 편지 드려서 죄송합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복되시길 기원합니다.
○○○ 올림

[답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

선생님의 편지를 읽고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은 늘 이렇게 아프구나!"하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즐거웠답니다. 죄송합니다. 즐거웠다는 말! 제가 즐거운 것은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제 곁에 벗으로서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가 벗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에 대하여, 우리의 빗나간 사랑에 대하여.

제가 빗나간 사랑이라고 했네요. 왜 갑자기 그런 문구가 떠올랐을까요? 아마도 선생님이 쏘신 사랑의 화살이 아이들의 가슴에 꽂히지 않고 빗나간 것을 아파하시는 것 같아서 그랬나 봅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빗나간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돌이켜보자면, 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 사실을 쉽게 시인하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누가 뭐래도 아이들을 사랑했고,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괴로웠던 날들이 참 많았으니까요.  

요즘 전 아이들과 많이 친하고 행복합니다. 지남철에 금속조각들이 달라붙듯이 아이들이 저에게 달라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과거보다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어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그 반대의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전 지금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진실로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순도가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뭔가 과거에 비해 약해진 것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무엇이 약해진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아이들에 대한 기대가 아닐까 싶어요. 교육은 학생이 교육을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제를 깔고 있지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는 이유도 결국은 그런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교사가 학생들 가르치면서 그런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은 마땅한 일이겠지요. 문제는 그런 기대심리가 크면 클수록 교사와 학생의 사이가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고백하자면 전 가끔 "나 혹시 좀 변한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답니다. 지난해는  그런 생각을 부쩍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작년에 담임을 맡은 아이들은 비교적 좋은(?) 아이들이었습니다. 한두 가지만 교정해주면 더 좋은 아이가 될 텐데 하는 아쉬움도 컸지만요. 그 중 몇 아이는 지금도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흔한 일이긴 하지만, 작년에 학급에서 도난사고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객관적인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누가 한 짓인지 알 만했습니다. 한 번은 진지하게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물론 녀석들은 정색을 하면서 부인했지요. 어쨌거나 그 후로도 아이들은 저를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물론 저도 녀석들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사랑하기에 정말 끝장을 내보고도 싶었습니다. 눈물이라도 흘리면서 아이들의 도벽습관을 고쳐주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만 두었습니다. 아이들을 의심한다는 것이 싫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여전히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그러니 제가 변한 것이지요. 헌데 이런 변화가 왠지 좋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포기했다면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겠지요. 물론 전 아이들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무언가 포기한 것은 맞습니다.

제가 포기한 것은 아이에 대한 기대였어요. 아이를 포기한 것과 아이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선생님은 이미 그 답을 알고 계실 거예요. 다만, 한 아이에 대한 '나의' 기대를 포기하거나 약화시킨 것은 거꾸로 그 아이(혹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강화된 탓일 수도 있다는 말씀은 꼭 드리고 싶어요. 전 그동안 아이들에 대한 믿음보다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저의 신념에 대한 믿음이 더 강했던 같아요.

요즘은 아이들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답니다. 학생에게 거는 기대는 결국 교사의 시각에서 나오지 않나 싶어요. 거기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나요? 넌 내가 생각한 이 길로 가야 한다. 넌 내가 하는 말에 당연히 감동해야 한다. 이런 식이지요. 그러니 감동 안 하면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고요. 전 아직도 이런 생각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지금 아이들과 더 사이가 좋아진 것 같고요.

우리 학교도 어제 축제를 했답니다. 제가 올해 축제 담당이라 지금 입술이 터지고 난리도 아닌데 마음만은 가볍고 흥겨웠지요. 축제를 준비하다보면 아이들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뀝니다. 평소 수업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이 아니거든요. 춤을 성실하게 춘다고나 할까요? 춤과 성실이라는 단어의 부조화가 재미있지 않나요? 선생님의 편지와 저의 답장의 부조화도 재미있게 받아들이셨으면 해요. 아이들로 인한 슬픔은 교사를 정금으로 단련시키기도 하지만 마음을 녹슬게도 할 수 있으니까요.


힘내세요. 선생님!   
나는 벌거벗은 진실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교직은 고상한 직종이 못 된다. 올해도 나는 개학하기가 무섭게 아이들과의 닭싸움을 했다. 이제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내공을 쌓았다고 자신했는데 첫날부터 아이들과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로 티격태격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가엾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내 일이겠거니 했다. 전에 비해 싸움의 양상이 사뭇 달라진 점도 나를 고무시켰다. 독을 품고 매섭게 몰아 부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제풀에 꺾여 싸움이 싱겁게 끝나곤 했던 것이다. 도대체 뭐가 달라졌을까? 나는 나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상대를 알아야 싸움에서 이긴다는 고사성어도 있지만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벌이는 싸움은 상대보다는 나 자신을 먼저 알아야 승산이 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진실한가? 어제의 진실은 어제의 진실일 뿐이다. 나는 오늘 아이들 앞에서 진실한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술수를 쓰지는 않았는가? 상황을 유리하게 하려고 교사의 권위를 내세우지는 않았는가? 오래 동안 이 물음들은 교사로서의 나의 자질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책을 펴내며<진실의 성장, 그리고 아이들과의 사소한 이야기> 중에서

넌 아름다워, 누구 뭐라 말하든/안준철/교육공동체 벗/10,000원



#교육공동체 벗#순천효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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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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