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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과 나
 남편과 나
ⓒ 신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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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남편은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됐다. 스마트폰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다 보니 선배인 내가 알려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것저것 만져보다 카카오톡(메신저)은 잘 쓰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들어가 보게 됐다(사실은 여자와 대화를 했는지가 궁금해서?).

남편이 친구와 한 대화를 보게 됐는데, 코끝이 찡했다. 남편이 '눈치 보여서 일당이라도 벌고 싶다'고 쓴 것이었다. 그렇다. 2009년 11월에 결혼했으니 벌써 3년차, 무난하던 우리 신혼생활에 시련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남편은 2011년 11월 중순부터 회사 경영난으로 인해 출근을 안 한다. 아니, 못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임원들이 돌아가며 회사를 지키고 그 외 사람들은 급여의 70%만 받고 집에서 논단다. 남편은 가끔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솔직히 나는 듣기 싫다. 당신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회사를 뛰쳐나온 것도 아닌데 나에게 미안하다 하니 나는 더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난다. 남에게까지 부인 눈치 보며 산다는 말을 할 정도면 자신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내 행동도 조심하게 된다.

 남편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남편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 신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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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노는 남편 "눈치 보이구, 일당이라도 벌라구..."

문득 이럴 때일수록 남편의 맘을 더 잘 알고 위로하고 싶어졌다. 새해를 코앞에 둔 12월 30일, '새해의 숙제'라며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힘든 질문을 하면 말하기 싫어할까봐 연애할 때 주로 했던 질문부터 시작을 했다.

"자기야. 나랑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뭐라고 했죠?"

그렇지! 내가 원하는 답변이 나왔다. "어른 공경 잘하고 돈의 소중함도 알기에 '이 사람이다!' 싶었"단다. 하지만 '결혼하고서도 그 이유가 같냐'고 했더니, 돈 얘기는 빼란다. 인정하긴 싫지만 살림을 잘 못하는 나이기에 수긍해야만 했다.

얼씨구, 단점은 숨도 안 쉬고 얘기한다. "정해놓고 실행하지 않는다"며 냉장고에 붙여놓은 다이어트 결심 문구를 꼬집는다. 또 "정리정돈에도 문제가 있다"며 구박하려 하다가, 내 기분 상할까봐 그만한단다. 나를 비웃듯 쳐다보는데 기분이 나쁠 만도 하지만 역시나 인정하는 부분이다. 재빨리 질문을 바꾸기 바쁘다.

"대학 졸업하고 구한 직장마다 큰 아쉬움을 남겨줘서 자리 못 잡은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

2007년, 그때 남편은 서울로 출퇴근하는(우리 집은 인천이다) 차비도 빠듯해 내가 몇 푼 쥐여준 적도 있었다. 가족들은 돈을 더 적게 받더라도 안정적인 곳에 취직하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자존심에 "조금 더", "조금 더" 하며 부동산 회사에 다니다 결국 포기를 하고 물류회사에 취직했다. 그 시절을 빼고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해서 특별히 힘든 날은 없었다고 한다. 비록 지금 4년 만에 다시 고비가 찾아왔지만.

"나도 장인어른 있었으면 좋겠다..."

 낚시를 하고 있는 남편
 낚시를 하고 있는 남편
ⓒ 신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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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딱히 존경하는 사람이 없지만, 남편은 "이루고자 하는 계획을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다 해내신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했다. 평소에 느끼는 거지만 남편은 그런 부모님을 많이 닮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래서 남편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내 의도와는 달리 인터뷰가 곁길로 빠지는 것 같아서 화제를 바꾸기 전에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나와 결혼해서 후회되거나 아쉬웠던 적이 있냐'고 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후회한 적은 없는데 내 친구들이 장인어른이랑 술 한잔 한다고 하면 많이 아쉽고 쓸쓸해"라고 한다.

얼마 전 남편과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술을 마셨다. 인기 연예인이 장인어른 자랑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술상을 치우려 주방으로 가는데 남편이 나를 꼬옥 안았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했지만 자기 얼굴을 못 보게 나를 더 세게 안았다.

그러면서 "나도 장인어른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한다. 내 탓도 아닌데 괜스레 미안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하늘에 있는 우리 아빠도 많이 아쉬우실 거야. 대신 남자 같이 터프하신 장모님이 계시잖아, 여보" 하며 위로했다.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회사 내에서의 고충이 궁금했다. 회사에 나갈 때 매일 집에만 오면 어깨 아프다, 다리 아프다 하기에 육체적 고통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전혀 생각지 못했던 대답이 나왔다. 남편은 원래 계약직이었다. 정직원인 나이 어린 애들 밑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해 1년 만에 같은 정직원이 됐지만, 자기네가 상사인양 깔보거나 건방지게 대하는 게 싫었단다.

생각해보니 기분 나쁠 만도 한 것 같다. 이제 같은 위치에 있어 하는 일도 같을 텐데 말이다. 나 같았으면 한소리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은 소위 말하는 '짬'이 안 돼서 굽실거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귀여운 남편... 오래오래 고마워하며 살고 싶다

 좀 닭살인가?*^^*
 좀 닭살인가?*^^*
ⓒ 신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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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계속 집에서 늦잠 자다 일어나서 밥 먹고 텔레비전 보고 단기 알바 자리 알아보는 내 자신이 초라해. 자기한테는 고맙고 미안하고. 같이 힘들어해 줘서 고맙고, 일을 나가도 내가 나가야 하는데 자기 혼자 일하러 나가서 미안하고. 마음 정화시킨다고 낚시 자주 가는 것도 미안하고. 근데 이 기회를 비롯해 자기 계발하면서 좋아지리라 생각해.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단 기다려볼 거야."

그러고 나서 바로 덧붙인 말 때문에 남편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일이든 모레든 빠른 시일 안에 단기 알바라도 나가서 비자금이라도 만들고 싶어."

내가 얼마나 돈 쓰지 말라고 눈치를 줬으면 생활비를 번다는 말보다 용돈을 번다는 말이 먼저 나왔을까.

"2012년부터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나에게 바라는 점은?"
"뭐부터 말할까…?"

역시나 긍정적인 사람이라, 하루하루가 기다려지며 그런 내일을 꿈꾸는 마음을 갖고 좋은 날들을 보내고 싶단다. 그러고는 늦어도 올해 안에는 2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또 혼자 구시렁거렸다.

"술이나 먼저 끊으시지."

내 말이 들렸는지 바로 공격을 하듯이 "그리고 자기한테 바라는 점은 가정주부로서 면모를 조금 더 보여줬으면 좋겠어. 서울 글쓰기 모임 나갈 때는 집 좀 정리하고 가고"라며 귀엽게 미간을 찌푸린다. 내가 악마의 웃음을 지으며 "보수적인 면이 많아서 그런 거야, 내가 정말 더럽게 가사 일을 못하는 거야?"라며 구시렁거리자, "그리고! 술 담배 끊으라고 잔소리 좀 그만 해에! 또 그리고! 나 배고파. 라면 좀 끓여줘잉~!" 한다. 푸하하하! 귀엽다.

남편의 마음을 조금 더 알고 나서 사랑이 샘솟은 상태에서 끓인 라면이라 그럴까? 라면이 엄청 맛있다며 단숨에 흡입(?)을 해버린다.

요즘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남편이 다시 자존심을 세우고 우뚝 서는 그날까지 내조와 외조를 잘하고 싶다고 새삼 결심한다. 이렇게 오래오래 서로에게 고마워하며 살고 싶다.


#남편#아내#인터뷰#부부#부부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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