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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를 밑도는 매서운 추위는 꺾일 줄을 모른다. 그런데다가 오후(1월 3일)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만다라처럼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니 하염없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우리나라 최전방에 위치한 연천군 임진강의 눈은 서울의 눈과 달라보였다. 서울의 눈송이는 빌딩과 아파트에 가려 춤추는 눈송이를 끝까지 볼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임진강변은 사방이 툭 터져 있어 눈송이들의 군무를 끝까지 지켜 볼 수 있다.

DMZ 부근 최전방 임진강 인근에는 강 추위가 계속 되고 있어 수도 동파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DMZ 부근 최전방 임진강 인근에는 강 추위가 계속 되고 있어 수도 동파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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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사업소에 전화를 해야겠어. 동파 된 수도가 더 얼기 전에."
"빨리 하세요. 더 얼기 전에. 그대로두면 자동차도 다니기도 힘들겠어요."

우리 집(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으로 들어오는 비포장도로에 수도관이 동파되었는지 얼음이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얼어붙는 부위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빙판길이 되어버린 길은 미끄러워 사람도 자동차도 다니기에 무척 위험했다. 그러나 이 길을 매일 사용하는 사람은 우리 집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주말에나 가끔 들르니 신고할 사람도 없다.

매서운 한파가 계속되는 경기북부지역은 수도계량기와 물탱크, 수도파이프 동파사고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보온재로 계량기나 배관을 덮어도 강추위로 동파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대문 앞에 있는 계량기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 우리집 계량기는 아직 안전하다. 그런데 길에 묻은 수도배관 동선이 동파가 되어 물이 새고 있었다.

비포장 도로 수도배관 동선이 동파되어 약 10m정도 얼음이 두껍게 얼어 있다.
 비포장 도로 수도배관 동선이 동파되어 약 10m정도 얼음이 두껍게 얼어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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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천 수도사업소에 전화를 걸어 신고를 했다. 신고를 한 후 무려 전화가 세 번이나 걸려왔다. 한결 같이 위치가 어디며 상태가 어떠냐는 질문이다. 아마 수도사업소 접수부서에서는 해당 수리부서에 전화를 하고, 수리부서는 공사업자에게 전화를 하고, 공사업자는 청부업자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우리나라 공무원이나 공기업의 서비스 질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멀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나 LG전자에 전화를 하면 원 스톱으로 단 한 통화에 서비스가 해결되는데, 수도사업소는 무려 세 번이나 번갈아가며 같은 질문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분명히 동파된 장소와 상태를 정확히 전달했는데 전화를 걸어온 사람마다 같은 질문을 하는 걸 보면 아마 그 내용을 정확히 전달해주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나라 공무원이나 공기업의 서비스를 일류기업이나 은행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시기는 언제쯤이 될까? 공무원 서비스 질이 일류기업의 서비스 수준으로 향상되는 날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 공사를 안 하면 동파된 수도가 얼음산을 만들고 말겁니다. 사람도 자동차도 다니기가 위험해요! 그러니 긴급출동을 해서 바로 수리를 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곡에서 출발을 하니까요. 아마 1시간 후에는 도착할겁니다."

마지막 통화를 하고나서야 1시간 후에 출동을 한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공공기관은  위급하게 긴급출동을 요청해야 움직인다. 그러나 사실 동파된 상태가 실제로 위급했다. 그들은 다행히 약속한 대로 1시간 내에 왔다. 굴착기 기사 1명, 파이프 수리공 1명이 도착하여 신고한 지점을 파내기 시작했다. 이런 오지까지 와 준 것만으로도 나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인부들이 굴착기로 동파된 부위를 파내고 있다. 이런 오지에 약속을 지켜 출동을 해준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인부들이 굴착기로 동파된 부위를 파내고 있다. 이런 오지에 약속을 지켜 출동을 해준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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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추운 날 와 주셔서 고맙소!"
"뭘요.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인데요."
"아마 파이프가 동파가 되었겠지요?"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어느 곳이 터졌는지 감이 잘 안 잡히네요."
"추운데 저희 집에 가서 커피라도 한잔하고 작업을 하시지요."
"아닙니다. 눈이 쌓일 것 같으니 빨리 끝내고 가야겠어요."

그들은 얼음이 언 초입부터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보리밭 밑 길에 얼음이 언 부위는 약 10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수도관이 동파된 부위를 두더지처럼 파내려가며 동파된 부위를 찾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1시간이 넘게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 발견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 종이컵에 커피 두 잔을 타서 들고 갔다. 날씨가 너무 추워  미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 추위에 인부들은 동파가 된 초입부터 굴착기로 파내려 갔다.
 강 추위에 인부들은 동파가 된 초입부터 굴착기로 파내려 갔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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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추운데 이 커피 한 잔 하시지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거 커피까지 주시다니."
"동파된 부위는 찾았나요?"
"네, 길에서 이 아랫집으로 가는 이음새가 터져 있네요."
"거참, 빨리 발견하길 다행입니다."

눈이 점점 더 세차게 내렸다. 인부들은 파이프를 교체하고 흙을 덮은 뒤 서둘러 떠나갔다. 눈이 쌓이면 이런 오지 좁은 길은 운전을 하기가 힘들다. 수도가 동파되어 얼어붙은 길은 더욱 위험하다.

동파 부위를 빨리 찾아내어 공사 마무리를 해서 다행이다. 매서운 추위에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참으로 고웠다. 그들은 작업 지시대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눈길에 그들이 무사히 귀가하기를 기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도 동파 수리, #연천군, #공무원의 서비스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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