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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임효림 스님 중학생 때 친구를 따라 절에 갔다가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스님 말씀에 이끌려 일 년만 도를 닦고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출가했다는 시인 임효림 스님
▲ 시인 임효림 스님 중학생 때 친구를 따라 절에 갔다가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스님 말씀에 이끌려 일 년만 도를 닦고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출가했다는 시인 임효림 스님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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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빈 들판 길을 홀로 걸어오신 분이 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맨발로

변화와 위기의 시대
시장 경쟁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며
폭력과 이기주의 속에
혼란이 도시를 휩쓸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고
분열과 통합이 반복되었다
개인은 점차 존재 가치가 공허해지고
탐욕한 자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이때 오직 홀로 일어선 분
그분의 이름은 석가모니부처님
보리수 아래서 눈을 떴다
-12~13쪽, '맨발로 오신 부처님' 몇 토막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물리고 물어뜯는 꼬라지를 한 채 마치 윤회처럼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모양이다. 시인 임효림 스님이 이번에 펴낸 <맨발로 오신 부처님>을 읽으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있었던 시대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나 '변화와 위기', '폭력과 이기주의', '전쟁과 평화', '분열과 통합', '탐욕' 등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 임효림 스님이 장편 서사시로 읽는 부처님 일대기가 담긴 시집을 펴낸 것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어지러운 시대에 참 부처님, 맨발로 시(도)를 쓰는 부처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리라. 까닭에 이 서사시집에 실린 시들은 맨발로 배불뚝이 '탐욕'을 밟고 오신 부처님이기도 하고, 시로 이 세상을 포근하게 감싸는 부처님이기도 하다.

지난 20일(금) 저녁 7시께 인사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만난 효림스님은 "부처님 시대의 역사는 한마디로 혼란과 격변이 그 어느 때보다 심했다"고 되짚었다. 스님은 "그 시대는 상업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시장질서가 무너지고 최상위 계급인 바라문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무사계급인 국왕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효림 스님은 "그때 부처님의 모국이었던 가비라국도 꼬살라국에 의해  멸망당했고, 꼬살라국은 또 마가다국에 멸망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해 맨발로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부처님 시대보다 더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시대여서 참 부처님이 꼭 필요한 때"라고 이번 시집을 펴낸 까닭을 밝혔다.

2500여 년 앞 반열반에 든 부처님, 시로 다시 거듭나다

"출가하여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지도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이 더 지나갔다. 어쩔 수 없이 그동안 출가 수행한 세월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데, 게으르고 부족한 것 투성이다. 모든 것이 많이 부족할 뿐이다. 그런 중에 그래도 내가 나를 칭찬하는 것이 있다면, 아직도 항상 부처님의 말씀에 감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향 하나를 사르고' 몇 토막

중학생 때 친구를 따라 절에 갔다가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스님 말씀에 이끌려 일 년만 도를 닦고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출가했다는 시인 임효림 스님. 그때 행자생활을 끝내고 1968년 스님이 된 뒤 4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집에 가지 못하고 있는 시인 임효림 스님이 펴낸 네번째 장편 서사시집 <맨발로 오신 부처님>(조계종 출판사).
 
언뜻 '시로 오신 부처님'으로 읽히는 이번 서사시집에는 모두 104편에 이르는 신작시가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앞 반열반에 든 부처님을 다시 거듭나게 하고 있다. '전생의 선혜보살', '아들 라훌라의 출생', '연기법', '너 자신을 찾으라', '나도 밭 갈고 씨 뿌린다', '법을 보는 자가 나를 본다', '가짜 도인 행세를 한 바히야', '마지막 제자 수밧다' 등이 그 시편들.

이 시집이 지닌 특징은 시로 미처 다 읊지 못하는 부처님 삶이 담긴 시(사리)에 숨겨진 뜻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염주알 같은 '해설'을 덧붙여 읽는 이들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집 곳곳에 마치 대웅전 한가운데 앉아 있는 부처님을 보는 듯한 칼라 삽화도 읽는 이를 진리가 가득한 세상으로 이끈다.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시인 임효림 스님 <맨발로 오신 부처님> 언뜻 ‘시로 오신 부처님’으로 읽히는 이번 서사시집에는 모두 104편에 이르는 신작시가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앞 반열반에 든 부처님을 다시 거듭나게 하고 있다.
▲ 시인 임효림 스님 <맨발로 오신 부처님> 언뜻 ‘시로 오신 부처님’으로 읽히는 이번 서사시집에는 모두 104편에 이르는 신작시가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앞 반열반에 든 부처님을 다시 거듭나게 하고 있다.
ⓒ 조계종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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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사슬에서 자유로운 자는 누구인가
왜? 생명은 생명을 잡아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가?
어찌하여 삶이란 이렇게까지 슬프고 안타까운 것인가
이런 심각한 생각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어떤 기운에 이끌리어
숲속으로 들어가 고요하고 깊은 명상에 들었다
-27쪽, '농경재에 참여하고' 몇 토막

석가모니 부처님은 가비라국 태자일 때 농경제에 참여하면서 "소를 몰고 보습으로 땅을 갈아엎을 때에 / 땅속에 살고 있는 벌레들이 놀라서 기어나오고 / 하늘을 나는 새들은 그 벌레들을 연신 쪼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약육강식으로 이어지는 삶이 참으로 비참하다고 느낀다. 여기서 말하는 농경재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들이 한 해 농사가 잘되기를 빌기 위해 봄에 하늘에게 올리는 음식이다.

싯닷타는 그때부터 "자주 혼자 명상에 빠지고 / 삶은 왜 고통과 번민이 많은가? / 세상은 왜 불공평한 것들이 이렇게 많은가?"(성장 시기) 등에 매달려 고뇌와 갈등을 계속한다. 아무리 맛난 음식이든, 아리따운 여인이든, 아내든 "아무 재미도 못 느끼니 / 지루하고 답답한 날"(사문유관)이 이어졌다. 그 때문에 명상에도 자주 들었다.

싯딧타가 출가를 확실하게 결심한 것은 궁 밖으로 나가 노인과 환자, 꽃상여, 좌선하는 이를 본 뒤 아들 라훌라가 태어나면서부터다. 그때 "고따마 싯닷타는 비록 출가하였으나 / 수행 길을 안내할 스승도 없"(빔비사라왕과의 첫 만남)었다. 빔비사라왕을 만나고, 선인을 만났지만 싯닷타가 찾는 도가 아니었다.

싯닷타는 그때부터 "완전한 해탈 / 온전한 깨달음 / 모든 번뇌의 소멸 / 그것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었지만 "아무도 가르쳐 줄 스승이 없"어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고행 육 년)고 마음을 다진 뒤 육 년에 걸친 고행에 들어간다. 여기서 잠깐! 작가 공지영 출세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도 여기서 딴 글이다.

드디어 동쪽 하늘에 명성이 빛나는 새벽
모든 장벽은 모두 다 무너지고
문이라는 문은 모조리 열렸다
-61쪽, '성도' 몇 토막    

싯닷타는 고행 6년을 거친 뒤 "마을 족장의 딸 수자따"(새로 시작한 7일간의 수행)가 주는 우유죽을 받아먹고 다시 7일 동안 보리수 아래서 수행하면서 마침내 불도를 이룬다. "이때 나이는 서른다섯이고 / 때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 12월 8일"이었다. "사람이 우주의 주인"(신들의 찬양을 받으시고)이 되는 순간이었다.

시인 임효림 스님은 "이것은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며 / 가장 위대한 혁명이다 / 그렇다 혁명 중에서도 / 가장 위대한 혁명이다"(신들의 찬양을 받으시고)라고 읊었다. 부처님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 저것이 일어나면 이것이 일어나고 // 저것이 사라지면 이것도 사라지고 /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라는 깨달음을 이룬 뒤에도 "49일 동안 열반의 즐거움"(연기법)을 누린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불타(佛陀)다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 눈이 불타고 / 눈으로 보는 대상이 불타고 있다 / 귀가 불타고 / 귀로 듣는 대상이 불타고 있다 / 코가 불타고 / 코로 냄새 맡는 대상이 불타고 있다 / 혀가 불타고 / 혀로 맛보는 대상이 불타고 있다 / 몸이 불타고 / 몸이 접촉하는 대상이 불타고 있다 / 마음이 불타고 /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상이 불타고 있다" -87쪽, '산상설법' 몇 토막

이번 시집에 실린 시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바로 이 시다. 시인 효림 스님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는 것, 우리가 지닌 모든 감각과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을 "불타고 있다"라고 마치 경을 읊듯이 시로 읊는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불타'(佛陀), 곧 부처님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타고'는 물론 탐욕과 희노애락, 생로병사가 불타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 속내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불타'(佛陀)라는 것을 '불타고'를 통해 은근슬쩍 가르친다.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스님 말씀을 듣고 출가해 지금까지 스님으로 살고 있는 시인 임효림 스님 삶처럼 그렇게.  

시인 임효림 스님이 펴낸 <맨발로 오신 부처님>은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물질자본주의와 '빨리빨리'로 얼룩지는 과학기술문명에게 내미는 부처님 경고장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걸림돌 많은 세상도 이 시집에 적힌 시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는 맑은 바람같이 된 사람"(마음이 안정된 사람)처럼 한 부처님, 만 부처님, 억 부처님이 줄줄이 나왔으면 참 좋겠다.   

시인 임효림 스님은 1968년 출가해 전국 선원에서 운수납자(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를 묻기 위하여 돌아다니는 승려를 가리키는 말)로 수행했으며, 백담사 회주 오현 큰스님 가르침에 따라 시를 공부했다. 스님은 2002년 불교잡지 <유심> 봄호에 '한 그루 나무올시다' 등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흔들리는 나무> <꽃향기에 취하여> <그늘도 꽃그늘>이 있으며, 산문집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그 곳에 스님이 있었네> <사십구재> <문수보살의 뺨을 때리다> 등을 펴냈다. 스님은 유월항쟁 때부터 재야 시민운동을 했으며,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불교신문사 사장,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성남 봉국사 주지, 만해마을 사무총장 등을 맡았다. 지금은 경원사 회주를 맡고 있다. 전태일문학상 특별상 받음.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맨발로 오신 부처님 - 시(詩)로 읽는 부처님 일대기

임효림 지음, 조계종출판사(2012)


#시인 임효림 스님#맨발로 오신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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