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나미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최나미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 김광선

관련사진보기

작가 최나미는 내가 10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만났던 것보다 한 권의 책으로 초등 고학년 아이들의 심리를 더 잘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걱정쟁이 열세살>이후 두 번째로 읽는 최 작가의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에서는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마흔살을 곧 앞둔 나의 이야기 그리고 작가가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획일화되지 않은 여성상이 들어있다.

책 제목에서 보이듯이 '마흔살 생일'이 아닌 '마흔번째 생일'은 마흔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시어머니 봉양하느라 미루어 두었던 자신을 찾아 늙어서 '너때문이야.'라고 남의 탓하면서 후회하면서 살지 않기 위한 반란과 발악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치매를 보이기 시작하는 시어머니를 고모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당번을 정해서 돌보라고 하고 엄마는 대학이후 그만 두었던 화실에 다니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작품 활동을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 가영은 엄마로 인해 집안 공기가 탁탁하지는 게 싫다. 뒤 늦게 무슨 작품 활동이고 사회 활동이냐며 그리고 치매를 겪는 어머니를 두고 무슨 짓이냐면서 화를 내는 아빠와 나중에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며 핀잔을 주는 고모들을 보면서 오롯이 아이들만 쳐다보고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친구 주환이 엄마처럼 그저 평범한 엄마를 두었으면 좋겠다고 가영도 엄마에게 픽픽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모두들 자기들 편하라고 엄마를 필요로한다. 하지만 첫째 딸 가희는 <걱정쟁이 열세살>에서 나오는 상우 누나와 같이 냉담하고, 이기적이지만 절도있고 판단력이 좋으며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건 엄마 아빠의 문제야. 둘이서 해결해야지, 너나 나는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 것 없다구."(49쪽)

평소 남자들과 잘 어울려 축구를 같이 하고 시합도 함께 뛰는 가영이 반 남자 아이들에게 다른 반들과 대결하는 축구시합에서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한다. 실력으로 당당히 선수였던 가영이와는 달리 남자아이들은 가영이가 끼어서 몸싸움도 심하게 못하고 불편했었다고 고백한다. 가영이를 빼고 제대로 붙고 싶다는 남자아이들에게서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가영. 시합을 포기하가는 강요에 복종할 수 없다는 가영은 전시회를 앞두고 그런 거 왜 하냐고 구박하는 남편에게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당신에게는 중요하지 않고 쓸데없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일이야"라고 맞서는 엄마랑 닮았다.

페이지 수는 얼마 안 남았는데 긴장은 계속되고 갈등은 해소될 여지를 보여주지 않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결국 엄마는 집을 나가 버리고 아빠는 엄마의 뒤통수를 째려보면서 할머니의 장례를 치루었지만 가영이반 친구들이 지혜를 모아 시합사건을 해결한 걸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우승을 꼭 해야 하나요?"

학급 회의로 남자의 의기양양한 태도가 하늘을 찌를 때 지윤이 한 말이다.

"저는 축구에 별로 관심 없어요. 나가더라도 공만 피해서 죽어라 도망 다닐지도 모르고요, 어제 가영이를 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화가 났어요. 남자 여자 문제로 생각하니까 그냥 오기도 생겼고요, 그런데 어제 학교 끝나고 여자들 몇 명이 모여서 축구 얘기를 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승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하고 말이에요.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즐거운 경험을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153쪽)

책에 나오는 가영이와 언니 가희, 친구 지윤이 그리고 엄마를 통해서 다양한 여자들이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남자들처럼 욕구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다고. 이 세상엔 반이 남자고 반이 여자인데 왜 그 반에게만 친절한지 모르겠다고. 평생 아들 타령만하다가 마음의 병을 앓고 지난날을 원망하면서 사는 할머니보다는 소음이 생기고 싸움이 일어나도 훨씬 낫지 않냐고.

'왜 사람들은 남자 일, 여자 일로 나누는 걸 좋아할까?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로 나누는 게 훨씬 낫잖아. 그냥 성격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얼마나 좋아?'(45쪽)

제발 가영이가 성격대로 살게 내버려두자. 그리고 성격대로 살아도 될 세상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자유와 무관심의 차이, 여자와 엄마의 차이,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준다.

내가 사회생활 할 나이쯤 되면 세상은 많이 변해 있을 거라고, 공부 열심히 해서 떳떳하게 자신을 살라던 엄마의 말씀이 왜 거짓말처럼 들리는 걸까? 여섯 살 딸, 민애에게 "남자는 씩씩하게, 여자는 이쁘게"를 구호처럼 입에 달고 다니게 만드는 유치원 교육부터 좀 바뀌면 어떨까.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최나미 지음, 정문주 그림, 사계절(2012)

이 책의 다른 기사

초등학생용 동화, 슬프게 읽다

태그:#최나미, #동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