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힘차게 구호를 외치는 백기완 선생  구호를 힘차게 따라 하고 있다.
▲ 힘차게 구호를 외치는 백기완 선생 구호를 힘차게 따라 하고 있다.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칼바람이 부는 청계광장 소라탑 옆  길바닥에 백발을 휘날리며 백전노장 백기완 선생이 앉아 있다. 한미FTA 발효 중지와 이명박 정부 심판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자리. 추운 날씨 탓에 미권스(정봉주 팬클럽) 회원들과 박석운 진보연대 대표, 정동영과 두세 명의 예비후보들만 시민들과 자리를 채웠다. 영하 7도의 날씨라고 한다. 영하 7도라지만 칼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는 웃도는 듯하다. 젊은이들도 눈만 빼꼼 내놓고 얼굴 전체를 감쌌거나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둘렀다.

백기완 선생은 황해도 은율 태생의 농민, 노동자 출신 사회주의 운동가, 통일운동가, 정치가 ,언론인, 시인, 작가이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한 이래 박정희정권 이후의 반정부, 반권력, 시민사회 운동을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 열사들이나 학생 운동가의 노래로 널리 사랑받았다. 1987년과 199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통일문제 연구소 소장이며 노나메기 재단을 설립해 자본주의 문명을 깨트릴 새로운 문화, 학술, 교육, 생활 운동인 노나메기 운동을 시작했다.

노나메기는 민중의 자생적 진보사상의 원형으로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벗나래(세상)'를 만든다는 희망을 축으로 대안적 진보운동을 추구한다.

평생을 재야운동가로 살아온 백기완 선생의 2012년 목표는 한미FTA 쓸라(폐기)와 21명의 죽음을 불러온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해결이다. 백기완 선생은 뜻을 정한 이후로 한미FTA 폐기 집회와 희망텐트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늘 앞자리를 지킨다. 백 선생이 앉아 계시는 것만으로 호랑이의 기상과 포효가 느껴진다. 두루마기 위에 두른 목도리만으로 강추위 속에서 노송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희망버스에 참여해 무리했기에 고관절이 급속히 나빠진 백기완 선생이 차가운 길거리서 대 여섯 시간씩 앉아 계시는 것은 여간 고역스럽지 않을 것. 이따금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에 "선생님, 이제 그만 나오셔도 되는데요. 선생님이 거리에 안 나오셔도 되는 세상이 돼야 하는데요"라고 말하면 선생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백기완 선생님 한번도 빠짐없이 늘 자리를 지키신 백기완 선생님
▲ 백기완 선생님 한번도 빠짐없이 늘 자리를 지키신 백기완 선생님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죽으면 썩을 몸인데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참여해야지. 나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으로  자네들에게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말을 참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핵심적으로 바라보고 짚어주는 사람이 없어. 한미FTA 문제는 신자본주의의 경제 문제로만 바라보면 반쪽 밖에 못 보는 거야. 제국주의의 미국과 남북관계를 함께 바라봐야 이 문제의 본질이 보여. 그 점을 제대로 짚어주는 정치인이나 젊은이둘이 없어 안타까워."

시대의 어른 통일문제를 붙들고 한평생 재야운동가로 살아온 이가 바라보는 시각은 역시 달랐다. 백기완 선생의 한 마디가 젊은이의 가슴에 새겨져 선택의 길위에 설 때마다 되짚어 볼 수 있는 이정표가 된다는 사실은 트위터에 올라 온 글 하나로 잘 알 수 있다.

해직 언론인인 이근행 전 피디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맨션을 날렸다.

"대학생이던 87년, 백기완 선생은 캠퍼스 강연을 오셔서, 죽 쒀서 개주지 말자, 절절한 사자후를 토하셨다. 난 선거 때마다 늘 이 문제에 봉착한다."

시대를 관통해 바라보는 시야, 남북 관게가 한반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대외관계를 꿰뚫어 보는 시각은 통일운동과 무관하게 자본주의와 신자본주의의 입에 단 솜사탕 맛을 잊지 못해 그 단맛을 그리워하는 세대가 느끼는 단견과는 사뭇 다르다. 근본적인 통찰이 부족한 우리 세대를 일깨우며 근본적인 통찰을 통한 본질적 접근법을 알려주는 시대를 넘나든느 한 선생에게서 나오는 지혜인지라 깊이와 무게감이 있다.

백기완 선생님 차가운 자리에 꼿꼿한 모스븡로 거목처럼 앉아 계시는 백기완 선생님
▲ 백기완 선생님 차가운 자리에 꼿꼿한 모스븡로 거목처럼 앉아 계시는 백기완 선생님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어쨌거나 백기완 선생이 바라보는 대로 한미FTA,를 단순한 한미간 무역에 얽힌 문제나 신자본주의 경제의 말기 현상으로만 파악해선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내기 어렵다. 동북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과 남북관계까지 고려해야 한미FTA가 지닌 독소조항만 제거한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 전면폐기가 답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더 명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경제적 노예를 얻는 일만이 아니라 동북아 관계 속에서 군사적인 방어망의 최전선에 총알받이로 세울 용병까지 거저 거머쥐려는 양면 전략계획서가 한미FTA다. 거기다 일본을 견제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불씨를 담은 화약고 해군기지까지 강정에 세워 하늘과 땅과 바다까지 장악하겠다는 음흉한 속셈을 관철하려는 것이 제국주의 미국의 정체다.

한번 민중 앞에 서서 입을 열면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 군중을 압도하는 사자후를 토해냈다던 젊은 날 백기완 선생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백기완 선생의 포효를 '지금도 가슴으로 느끼고 듣고 있는 듯하다'고 고백한다.

백기완 선생은 여든 해 생신을 맞이하셨지만 여전히 청년의 기개로 '산자여 따르라'고 외치듯 거친 비바람과 군사독재의 피바람을 꿋꿋하게 이겨낸 모습 그대로 현장에서 거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고 김근태 전 의장은 '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지를 남겼다.  점령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산자에게 남겨진 과제다. 백기완 선생은 존재 그  자체로 사자후를 토해 내 잠든 자들을 깨우며 산자가 감당할 몫을 알려준다.

"산자여 따르라! 2012년을 점령하라! 한미FTA 쓸라(폐기)를 이루라!"

덧붙이는 글 | 서울의 소리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백기완 선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