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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학교를 옮기게 됐다. 5년 동안 38학급인 학교에 있다가 6학급인 학교로 가게 된 것. 학생 수도 1300여 명에서 80여 명으로 팍 줄었다. 작은 학교가 아이들 전체를 다 알고 큰 학교보다 더 내실 있는 교육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지만, 마음 한편에는 큰 부담감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전에 작은 학교에서 학교 업무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 때문이다.

수업은 여유 있지만, 업무표에 기죽다

몇 년 전 광역시에서 근무하다 충북에 내려왔다. 집에서 50분 정도 가야 하는 군지역에 있는 6학급 학교. 학생 수는 100여 명이었다. 학교는 아담하고 예뻤다. 하지만, 교감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받은 업무 희망서를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해마다 수십 개로 나뉜 업무 배정서를 보면서 한 가지를 찾아 썼는데, 6개로 나뉜 배정표엔 모두 10~15개의 항목들이 적혀 있었다.

 학교 규모에 따라 교사 한 명이 맡은 일의 가짓수와 양이 달라집니다. 30학급 이상과 18학급 예를 보면 약 2배 차이가 납니다. 한 가지 업무라고 해서 업무양과 수준이 모두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해마다 돌아가면서 일을 맡는 편입니다.
 학교 규모에 따라 교사 한 명이 맡은 일의 가짓수와 양이 달라집니다. 30학급 이상과 18학급 예를 보면 약 2배 차이가 납니다. 한 가지 업무라고 해서 업무양과 수준이 모두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해마다 돌아가면서 일을 맡는 편입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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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학교에 있다 이거 보니 질리죠?"

교감 선생님이 먼저 한 마디 하셨다. 뭐라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학년은 3학년, 반 아이들은 모두 16명. 개학 날 출근하니, 아이들이 반겨줬다. 당시 임신 9개월째였기 때문에 고학년 여자 아이들은 "선생님 임신했어요? 뱃속에 아기 있어요?"라며 신기해했다.

아이들 모두 따뜻하게 인사하고 챙겨주는 모습에 마음은 너무 좋았다. 큰 학교에서는 점심도 학년마다 시간을 정해 따로 먹었는데 이곳에서는 전교생이 한 데 모여 밥을 먹으니 분위기도 좋고 몸의 리듬에도 좋았다. 큰 학교에서 저학년 학급을 담당하게 되면 너무 일찍 먹게 돼 몸이 불편할 때가 잦았다. 또 다른 학년이 밥을 먹는 동안 그 사이에 청소도 하고 놀기도 해 너무 복잡했다. 아이들이 여유있게 밥을 먹고 쉬다가 오후 수업을 시작하니 학교도 평온했다.

작은 학교들의 업무 분담 예시
* 특기적성교육, 홍보 - 특기적성 교육 및 방과후 교육활동, 멘토링, 보육교실, 평생교육, 학습자료, 학습준비물, 악기관리, 홍보교육, 학교신문

* 연구 기획 - 교육과정운영, 교육계획, 학교요람, 학교특색사업, 주5일제 수업운영, 연수, 보결수업, 부진아지도, 학교평가, 교과연구회, 교육과정, 수업연구, 평가, 학력, 진로교육, 자율장학

작은 학교에서는 한 사람이 개별 업무가 아니라 한 부서 전체를 맡고 때론 2~3개 부서 규모 일을 맡아 관리할 파일폴더가 아이들 수보다 많을 때도 있습니다.
16명과 하는 수업은 환상적이었다. 수업을 하면서 아이 1명을 2~3번 정도 볼 기회가 생겼다. 전에는 항상 30~40명을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이 수업을 어떻게 따라오는지 대강 감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 수가 적으니 나도, 아이들도 온전히 집중할 여유가 생기고 한 명 한 명 지도할 수가 있었다. 나중에 두 자리 수의 곱셈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처음에는 금방 이해하는 것 같아도, 한 달간 지켜보니 푸는 방식도 왔다갔다 하면서 완전히 자기 내용으로 익히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1년 동안 아이들을 지켜보며 도시에서도 나름 아이들과 열심히 호흡하고 가르쳐왔다고 생각했는데, 깊이가 참 얕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알게 되니 서로를 이해하고 스트레스도 적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업무였다. 학기 초에 먼저 학년 교육과정을 짜는데, 한 학년에 혼자 있으니 물어볼 사람도 없고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야 했다. 그나마 교육과정을 공부하고 해봤던 학년이라 비교적 수월했지만 임신 9개월에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래도 1학기는 출산과 출산휴가로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1년 동안 한 일이 10년 동안 한 일보다 많아?

 작은학교. 교사들은 더 힘들다
 작은학교. 교사들은 더 힘들다
ⓒ 좋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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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휴가가 끝나고 7월부터 출근했는데, 이때부터 다음 해 2월까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달마다 독서행사를 해 교육청 누리집에 사진을 올리고 작품을 보내달라고 했다. 병설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학년마다 결과물을 내라는 게 미안했다. 외부 행사도 많아 5, 6학년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항상 나가는 아이들이 나가게 돼 수업 결손도 많아졌다. 여러 행사가 겹치는 날에는 반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3~4명 밖에 안되는 날도 있었다.

수업 끝나고 공문 처리하고 나면 어느새 퇴근 시간.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활동하다 '내일은 어떻게 해봐야지'라고 생각한 것은 모두 잊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교무실에 모여 같이 일을 해도 이야기 나눌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수업시간에 일 하나라도 해치워놓을까'라는 유혹도 생겼다. 그래도 수업시간에는 절대 일을 안 하기로 맘을 굳게 먹었던지라 그 시간만이라도 온전히 아이들에게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방학 때도 일이 끊이지 않았다. 작은 학교는 방학 근무 일수도 많지만, 나가서도 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은 학교에 이렇게 일이 많은 것은 학교 규모에 관계없이 행정기관이나 교육기관에서 학교에 요구하는 일의 종류가 똑같기 때문이다. 이 일들의 성격이 교사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교를 대상으로 알아보고 행사를 치르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그래서 학교가 크면 한 가지 일을 알리고 해결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작은 학교는 인원수가 적어서 그 시간이 짧다는 차이만 있다. 작은 학교 교사는 큰 학교 여러 명이 할 일을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규모는 작아도 가짓수 자체가 많고, 그 일들이 연관돼 있지 않아 한 가지 일이 떨어질 때마다 새롭게 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공평하게 일을 나누기 위해 해마다 업무가 달라지는데 이 때문에 늘 일이 서툴다. 그러니 공문 한 번 쓸 때마다 다른 사람이 쓴 것이나 전에 있던 것 여러 번 기웃거려 작성하고, 예산을 작성할 때는 인증서가 들어 있는 USB를 들고 행정실에 가 도와달라고 하는 게 더 빠르다.

그 해 내가 한 일은 인천의 큰 학교에서 10여 년 동안 했던 일보다 훨씬 많게 느껴졌다. 도시에서 오고, 아이가 어리다고 봐줘서 학교에서 일을 가장 적게 했는데도 그랬다. 이후 작은 학교가 좋으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선뜻 대답해주기 힘들었다. 그래도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우리 학교 아이들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파악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큰 학교에서는 일은 일일 뿐이라 일과 아이들이 연결된 느낌을 받기 힘들다.  

학생 손 빌려 학교관리 하는 일 생길 수도

2012년 현재, 요즘은 학교 업무가 더 많이 생겼다. 처음 학교 업무가 전산화될 때는 일이 줄어들 줄 알았다. 전산화가 들어올 때는 늘 간소화와 업무 효율성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자 하나 틀려도 다시 출력하고, 고치기 쉽다고 더 완벽한 걸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메신저로는 수시로 협조 요청이나 긴급 조사 내용들이 들어온다. 업무 담당자 입장에서는 수업시간에 보내 놓아야 오후에 일 처리가 되기 때문에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2011년 전국공통으로 개통한 업무포털화면. 전자문서, 교무업무시스템, 교육행정시스템, 보건, 에듀파인(예산처리) 시스템을 다 합쳐 효율성과 업무경감을 추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합쳐만 놓았을 뿐 교사들에겐 업무폭탄과 비효율, 행정실엔 인력감축 도구가 되어버렸다.
 2011년 전국공통으로 개통한 업무포털화면. 전자문서, 교무업무시스템, 교육행정시스템, 보건, 에듀파인(예산처리) 시스템을 다 합쳐 효율성과 업무경감을 추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합쳐만 놓았을 뿐 교사들에겐 업무폭탄과 비효율, 행정실엔 인력감축 도구가 되어버렸다.
ⓒ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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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예전에는 행정실에서 처리하던 공문서 관리나 예산관리, 물품 기안, 학생 방과 후 교육활동비 수납 같은 일들이 전산화되면서 교사에게 넘어왔다. 방과 후 업무를 하는 교사들은 본인이 교사로 왔는지 행정직으로 왔는지 헷갈릴 정도. 반대로 행정실 인원은 점점 줄어들어 학교 관리를 하는 기사님까지 줄고 있다. 교실이나 화장실에 수리할 것이 있어 찾으면 다른 곳을 손보고 있고, 늘 바빠 무엇하나 부탁하기 미안한 형편이다. 이러다 예전처럼 학생 손을 빌려 학교 관리를 하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러니 교사들에게 작은 학교는 기피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일제고사 결과로 전국 학교를 줄세우는 것 때문에 작은 학교만의 특색있는 교육과정이 거의 파괴되고, 대부분은 시험대비 문제풀이 수업을 하게 됐다. 방학 때도 학생들을 불러서 공부를 시킬 정도. 예전에는 농산어촌 방과 후 지원 예산으로 지역에서 부족한 문화활동을 많이 했는데, 이름은 비슷하게 붙여 시험 대비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나마 2학기에 있던 일제고사가 1학기로 옮겨져 조금 나아진 상황이다.

학교는 교육기관인가? 행정기관인가?

 위에 있는 업무포털에 로그인해서 교무업무 시스템으로 가면 온갖 종류의 팝업화면과 전달내용이 있다. 1년을 봐도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고 초등조차 중고등학교 전달사항, 중등도 초등 전달사항을 똑같이 봐야 해서 혼란스럽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집적되어있어 자료의 안정성에 대한 의심도 받고 있다.
 위에 있는 업무포털에 로그인해서 교무업무 시스템으로 가면 온갖 종류의 팝업화면과 전달내용이 있다. 1년을 봐도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고 초등조차 중고등학교 전달사항, 중등도 초등 전달사항을 똑같이 봐야 해서 혼란스럽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집적되어있어 자료의 안정성에 대한 의심도 받고 있다.
ⓒ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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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보 교육감이 들어오면서 교육계의 숙원사업인 업무경감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학교에서 업무를 보조하는 인원을 늘리거나 교사가 수업을 적게 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교육청 차원에서 업무를 줄이고 학교에서도 전시 위주의 행사는 줄이는 방안 등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여전히 학교를 행정업무기관으로 보는 시각이나 관료시스템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엄연하게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육기관이다. 공문 하나 안 오더라도 학생과 교사 입장에서 보면 시간마다 배우고 익혀야 할 내용들이 무척 많다. 그런데 학교에서 교육과정 운영 과정에서 내부 기안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온 공문 처리할 게 더 많다. 심지어 펼칠막 하나 걸라는 것까지 수시로 공문이 내려온다. 전에 외국 교사에게 공문이 얼마나 오냐고 물어보니 이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설명하는 데 오랜 시간을 소비했던 적이 있다.

나중에 1년에 3~4개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개혁에 관련한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먼저 학교는 교육기관이고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고 삶을 배우고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부터 합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오랜만에 가게 된 작은 학교. 하루빨리 업무 문제가 원칙적으로 해결돼 학교에서 업무가 아니라 아이들과 지내길 바란다.


#작은학교#학교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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