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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봄 따뜻한 시절에 태어난 유미야! 학교 다녀와서 생글거리며 용돈 달라던 네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아빠는 지금이라도 내 목숨을 내주고 네가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단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먹을 것도 못 먹고 헛구역질을 하던 네가 빡빡머리에 가냘픈 눈으로 아빠를 쳐다 볼 때마다 아빠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유미가 왜 백혈병에 걸렸는지를 알려내겠다고 다짐했다. 유미의 죽음에 대한 삼성의 책임을 인정받아 기필코 산재인정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끝내 말을 잊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가한 이들은, 따뜻한 박수로 황씨를 위로했다.

황상기씨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와 사망한 반도체 노동자 유족들
▲ 황상기씨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와 사망한 반도체 노동자 유족들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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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 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씨의 기일인 3월 6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반도체 노동 사망자 유족들은 서울역 광장에서 '반도체 산재 노동자 추모 문화제'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황상기씨를 비롯하여 반도체 노동 사망자의 유족들과 민주노총, 시민단체 회원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퇴근길 쌀쌀한 날씨에도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유족들의 발언에 귀 기울이는 등 행사에 관심을 보였다.

행사에 첫 발언자로 나선 건강한 노동세상 활동가 장안석씨는 "삼성 반도체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지만 황유미씨에게 근무환경이 자신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 하지 않았다"며 "가족들의 고통도 알량한 치료비로 대신하려 했다"고 삼성을 비판했다.

고 황유미씨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노동자였던 정혜경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추모발언에서 "삼성과 같은 반도체 기업이 연초에 초일류의 실적을 자랑스레 발표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며 "영정 사진 속 사망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소속된 삼성 측이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유족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네 남편만 죽었냐고?...너무 억울해"

"저는 이렇게 제 남편이 억울하게 죽은 것으로 끝낼 수는 없다. 3일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사망을 했고 저쪽의 영정사진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히다. 이 사람들이 인재로 인해서 살인자본에 의해서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게 가슴이 아프고 너무 억울하다. 삼성이 그랬다. 유해한 환경에서 내 남편이 죽었다고 주장하면 왜 네 남편만 죽었냐 다들 죽어야지. 그런 이야기를 했다. "

정애정씨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반도체 산재 노동자 추모 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 정애정씨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반도체 산재 노동자 추모 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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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울면서 말했다. 정씨는 산재인정은 커녕 7년째 삼성 측으로부터 사과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황민웅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 1라인 CNP설비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2005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행사에 참석한 반도체 노동 사망자 유족들은 계속되는 반도체 노동관련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을 전하며 반도체 관련 사망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와 해당 반도체 기업의 무관심을 비판했다.

황상기씨는 "삼성이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면 정부라도 나서서 노동자를 보호해야 된다"며 지난해 6월 서울행정법원이 고 황유미씨에 대해 산재인정 판정을 내렸음에도 이에 불복하고 항소한 근로복지공단을 비판했다. 또한 황씨는 "아직까지 유미가 일하던 삼성측과는 대화도 못해 봤다"며 "너무 억울해서 5년 동안 싸우는 동안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5년,  산재인정에 최선 다할 것."

반올림은 지난 2007년 고 황유미씨의 산재인정투쟁을 계기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인권을 위한 활동을 주도적으로 벌여왔다. 5주기 추모행사를 준비해온 반올림 공인노무사 이종란씨는 추모제의 의의를 묻는 질문에 "삼성 등 반도체 대기업을 상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말하던 주변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며 "반도체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많이 알려지고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것이 성과다"라고 평가했다.

이씨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인권을 위한 향후 과제에 관해서 "가장 확실한 안전예방 대책은 산재인정에서부터 출발한다"며 "정부나 반도체 기업의 태도를 봐서는 쉽지 않겠지만 사망 노동자들의 산재인정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9시께 사망한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헌화를 끝으로 5주기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헌화하는 참가자 반도체 산재노동자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 헌화하는 참가자 반도체 산재노동자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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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제에 앞서 반올림은 오전 11시에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일 유방암으로 사망한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 노동자였던 김도은씨의 산재인정을 촉구했다. 2009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은 김씨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 조립라인에서 근무했다.

유족들과 대리인인 공인노무사 이종란씨는 6일 근로복지 공단에 제출한 '재해발생 경위 및 유족급여 청구이유서'에서 "김도은씨의 유방암이 기흥공장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충분하다"며 업무연관성을 주장했다.


#삼성#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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