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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더디기만 한 새순을 빨리 보고 싶은지 헐렁해진 가로수 가지를 토닥토닥 때린다. 앙상한 가지에서 다시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의심하곤 했는데 머지않아 연두색 이파리를 빼꼼 내밀 것 같다. 봄을 실어 나르는 비를 보며 추억을 유리창 밖에 그리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린다. 아들 녀석이다.

"아빠, 음악 다운 받아서 웹하드에 올려놨어요."
"다 찾았어?"
"예. 81곡입니다."
"아들, 수고했다."

 2AM-전활 받지 않는 너, Boston-Amanda, 신유-잠자는 공주, 허각-나를 잊지 말아요 등 81곡이 들어 있는 CD
 2AM-전활 받지 않는 너, Boston-Amanda, 신유-잠자는 공주, 허각-나를 잊지 말아요 등 81곡이 들어 있는 CD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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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배부른 날이다. 며칠 전 지난 1년 동안 컴퓨터에 저장해둔, 내가 좋아하는 곡들의 목록을 아들에게 주었다. CD 4장 분량이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 한 해 동안 맛있게 먹을 식량이다.

요즘은 자동차에서 스마트폰과 네비게이션을 이용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CD로 듣는 것에 익숙해선지 나는 CD가 편하다. 우리는 음악 듣기에 정말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80년대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같은 날은 음악이 고팠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가장 부러웠던 친구는 집에 전축이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팝스타들에 대해 많이 알고 정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팝송 몇 곡을 부를 줄 아는 친구가 가장 멋져 보였다.

 손님들이 신청곡을 적어 DJ박스로 가져다 준 메모지와 오픈 DJ 모씨-이때쯤은 경력(?)이 조금 있을 때다.
 손님들이 신청곡을 적어 DJ박스로 가져다 준 메모지와 오픈 DJ 모씨-이때쯤은 경력(?)이 조금 있을 때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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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 입학한 여름방학 때 음악다방에서 오픈 DJ로 알바를 했다.

"듣고 계십니까, 손님 가운데 OO씨 카운터에 전화 마련되었습니다. OO씨~"
내가 음악다방에서 배워서 한 첫 멘트다.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 떨리기도 했지만 보고 듣지도 못한 레코드와 음악은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다. 그리고 팝 아티스트들의 족보를 줄줄 외우며 밤이 새는 줄 모르고 공부(?)를 할 때는 정말 재밌고 신났다.
 Billy Joel, Linda Ronstadt, Debby Boone, Eagles의 빽판.
빽판(복제판)가격은 500원~800원 정도 주면 살 수 있었다.
 Billy Joel, Linda Ronstadt, Debby Boone, Eagles의 빽판. 빽판(복제판)가격은 500원~800원 정도 주면 살 수 있었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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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골매,Stevie Wonder,이선희,Cyndi Lauper, Madonna, 이용의 라이센스 음반.정확하지는 않지만 라이센스 음반은 2,500원~2,700원 정도 였다.
 송골매,Stevie Wonder,이선희,Cyndi Lauper, Madonna, 이용의 라이센스 음반.정확하지는 않지만 라이센스 음반은 2,500원~2,700원 정도 였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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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알바비를 모은 돈으로 전축을 샀을 때, 라이센스 음반 한 장을 살 때, 돈이 부족해 백판(불법 복제판)을 샀을 때의 그 포만감과 설렘, 짜릿하고 행복했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그 레코드들은 내 소장품 1호다.

음악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음과 소음을 소재로 박자, 선율, 화성, 음색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해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라고 한다. 내게 음악은 뭘까? 삶의 산소다. 음악이 없었다면 내 삶은 얼마나 척박해졌을까. 즐거울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슬픔과 고통스런 순간이 맞닥뜨릴 때마다 음악은 내 감정을 다독거리고 다스려 주었다. 사람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근심 걱정이 없을 때이고 콧노래를 부를 때는 즐거움이 몸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년 이맘때는 200여 곡 녹음된 CD를 굽고 싶다. 아들, 그때도 다운 받아 줄 거지?


#이경모#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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