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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문제 다룬 <라스메이 캄푸치아 데일리> 기사(3월 15일 치)
 탈북자 문제 다룬 <라스메이 캄푸치아 데일리> 기사(3월 15일 치)
ⓒ 라스메이 캄푸치아 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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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6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 신흥국 경기대회(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 기간 중 재일교포 출신 북한 권투코치 겸 선수였던 김귀하씨(당시 27세)가 캄보디아 주재 일본대사관으로 피신해 한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했으나, 당시 캄보디아 정부가 이를 용인하지 않아 결국 북으로 강제 송환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친북성향의 시하누크 국왕은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전격적으로 김 선수를 강제 북송시켰다. 그 바람에 1951년 캄보디아를 정식독립국가로 공식 인정하면서 시작된 대한민국과 캄보디아 양국 사이의 외교관계는 불과 15여 년만인 그해 12월 첫 번째 외교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1970년 재수교 이후, 두 번째 양국간 외교단절은 1975년 크메르루즈 공산군 침공으로 단행됐다).

그 후로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또 다른 지구 땅 한편 중국에선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 북한난민들이 중국공안당국에 붙잡혀 강제 북송이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 캄보디아 한인 사회도 3월 둘째 주부터 강제송환 저지를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교민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국민들도 함께 서명운동에 동참하기로 했다. 시작한 지 불과 5일 만에 5천여 명이 서명하는 성과를 거뒀다. 전체 인구중 6%를 차지하는 화교계 캄보디아들도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서명운동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많은 현지인들이 중국 공안에 잡힌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될 경우 그들에게 닥칠 운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그들에게 닥칠 불행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아마도 과거 1970년대 150여만 명이 학살당한 '킬링필드'의 아픈 역사를 몸소 겪은 국민들이다 보니, '체제중심의 폐쇄적 독재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그 결과와 비극적 참상에 대해 '과거의 자신들의 경험'에 비춰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재 캄보디아 한인회 박광복 회장은 '친한파' 캄보디아 정치인들과 접촉 중이라고 한다. 님 반다 선임장관 등 정부고위 관료들로부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중국 정부가 탈북자 문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취해 줄 것을 정부차원에서 공식요청하겠다"는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

양국 정부간 외교적 차원에서 이뤄진 공식적인 약속이나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한때 친북성향 국가로 분류됐던 캄보디아의 최고위급 관료들이 강제북송반대운동에 지지의사를 표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양국 관계에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캄보디아 최대 일간지 <라스메이 캄푸치아>도 최근 탈북자 문제를 다룬 심도깊은 기사를 내보냈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탈북자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북한 선수의 망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대한민국과 캄보디아간 외교 단절사를 기억하는 기성 세대라면 더욱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만한 일이다.

이렇듯 친북 국가로 분류됐던 제3세계 국가들마저도 정치와 이념을 떠나 인도적 차원에서 진일보한 입장을 천명하는 상황이다. 세계 지도자 국가 반열에 올라선 중국이라는 나라가 국제사회 가장 큰 '골치 덩어리'인 북한을 감싸 대국답지 못한 처신을 하는 오늘의 정치적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쪼록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국민들까지도 함께 동참하는 강제북송 저지를 위한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소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정연 기자는 재 캄보디아 한인회 사무국장입니다.



#캄보디아#프놈펜#캄보디아 한인회#박정연#탈북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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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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