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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이이치로의 사고> 겉표지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겉표지 ⓒ 시공사

추리소설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탐정들 상당수는 남성이다. 이들을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탐정'과 그렇지 않은 탐정으로 나누어 보면 어떨까.

 

인기있는 탐정이라면 우선 앨러리 퀸이 떠오른다. 퀸은 빼어나게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여자들에게 붙임성도 좋았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를 상대로 탐정의 인기투표를 한다면 퀸은 아마도 1, 2위를 다툴 것이 분명하다.

 

퀸보다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아치볼드 맥널리도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탐정이다. 키가 크고 늘씬한 외모에 유머감각까지 가지고 있던 맥널리는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서 여러차례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운다.

 

맥널리와 퀸은 모두 노총각이면서 부모의 집에 얹혀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종종 철이 없어 보이는 언행을 한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영국의 모스 경감은 나이 50이 넘은 독신이었지만 술집에서 젊은 여자들에게 점잖게 작업을 거는 것이 취미였다.

 

반면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재산가이자 소위 말하는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녔던 멋쟁이 파일로 반스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여자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여자들에게 관심도 별로 없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성격에다가 자의식이 강해서 걸핏하면 잘난척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여자를 좋아하는 탐정'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결론이 대충 나올것도 같다.

 

탐정과 여자

 

아와사카 쓰마오의 1982년 단편집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에는 그 어떤 탐정보다도 완벽한 외모를 가진 탐정이 등장한다. '아 아이이치로'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그는 누가 자신에게 이름을 물으면 '아아'라고 말한다. '아'는 키가 크고 늘씬한데다가 패션감각도 있어서 계절에 어울리는 스타일의 양복을 맵시있게 입고 다닌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기품있는 얼굴은 남자가 보더라도 숨을 죽일 정도다. 처음 보는 여고생이 아를 연예인으로 착각해서 사인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들이 아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그가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뿐이다. 아가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의 행동은 자주 주변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의자도 없는 자리에 앉으려고 하다가 엉덩방아를 찧는가 하면, 살해당한 시체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눈을 허옇게 뜨고 몸을 떤다. 방바닥에 오래 앉아있다가 일어설 때면 다리가 저려서 자기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며 쓰러지기도 한다. 자고있는 아를 여자가 살며시 흔들어 깨우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처음에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여성도 이런 모습을 여러차례 본 다음에는 그에게서 멀어지려고 한다. 이러니 아무리 완벽한 외모를 가진 아도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 아닐까?

 

괴짜 탐정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에는 아가 등장하는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아의 직업은 프리랜서 사진작가이고 사진집도 한 권 출간한 경력이 있다. 이 단편집에서도 아는 거의 항상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의 조수역할을 하면서 현장을 돌아다닌다. 우연히 그 현장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아는 특유의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어리숙해 보이는 행동과는 달리 아의 두뇌회전은 굉장히 빠르다. 자기 생각을 확인하지 않으면 잠을 못자는 습관이 있을만큼 추리에 집중하기도 한다. 사건들도 기이하기만 하다. 택시 안에서 난데없이 목이 잘린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일본 지방에 전해오는 기괴한 동요가사대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도중에 아의 옆에는 여러차례 젊은 여성이 나타나지만 그들도 아의 본모습(?)을 보고는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거둔다. 어쩌면 아는 너무나 두뇌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육체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서 계속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탐정들 중에는 괴짜가 많다. 완벽한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가졌지만 모자란듯한 행동을 보이는 아도 괴짜에 속할 것이다.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는 아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한 편이다. 외모와 패션감각도 세련되고 두뇌도 그 정도면 탁월한 편이니, 앞으로는 아가 여자들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좀 배우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 아와사카 쓰마오 지음 / 권영주 옮김. 시공사 펴냄.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

아와사카 쓰마오 지음, 권영주 옮김, 시공사(2012)


#아 아이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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