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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얼마 앞두지 않은 요즘, 하루하루 이슈가 바뀌고 있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지 모를 일이지요. 그렇게 떠오른 여러 가지 문제 중 제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 단 하나의 문제, 그것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정진후 전교조 전 위원장(통합진보당 비례대표 4번) 민주노총 후보로 확정-민주노총'이라는 단체문자가 며칠 전 민주노총 관계자들에게 도착했습니다. 육아휴직 중이라 제가 이 문자를 직접 받아보지는 못했으나,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황망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2008년 12월 6일, 한 전교조 여성 조합원은 당시 수배 중이었던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는 과정에서 알게 된 김아무개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할 뻔했습니다. 이 사실이 외부에 공개되고, 당시 전교조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사건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사건을 은폐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전교조 간부 3명에게 중징계 권고를 합니다. 이 사건은 진상조사위원회가 1차로 구성됐지만, 사건 해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보도돼 파장이 일었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2008년 연말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이 새롭게 당선이 됐습니다. 이후 전교조 가 간부 3명에 대한 징계 수위를 제명에서 경고로 대폭 낮추면서 위원장이 사건에 어디까지 개입했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이것이 이른바 '정진후 위원장 성폭행 사건 축소 논란'입니다.

피해자는 여전히 괴롭습니다

 지난 3월 1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전교조 위원장 출신인 정진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가 19대 총선 교육분야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3월 1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전교조 위원장 출신인 정진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가 19대 총선 교육분야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저는 민주노총 관계자로 여성위원회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2009년 민주노총에서 대대적으로 조직혁신을 하겠다며 만든 성평등미래위원회에 채용된 사람입니다. 이후 여성위원회와 성평등미래위원회를 담당하며 민주노총에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의 중심에서 지도부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보고서 몇 장만을 남겼을 뿐이고 피해자 선생님은 여전히 힘든 삶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뿔뿔이 흩어졌던 민주통합당과 범진보세력들이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공분이 일어났고, 이명박 정부를 지지했던 민심도 등을 돌린 지 오래입니다. 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이명박 정부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선생님의 시간은 2009년 이후로 멈추어 버렸습니다.

피해자 선생님을 아프게 했던 징계 대상자들도 이제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고, 민심도 변화했지만 선생님의 마음만은 여전히 지옥 속에 살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가 결국 고심 끝에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정진후 전 위원장을 비례대표 후보로 통합진보당에서 선정했을 때 많은 의견이 있던 것으로 압니다. 그 많은 의견들 중에 제가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반MB를 위해 뭉쳐야 할 이때에 직접적 가해자도 아닌 정 전 위원장을 굳이 끄집어내는 것은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조중동과 다를 바 없다, 라는 논리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진후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 후보로 확정됐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 2차 가해자도, 조직적 은폐 조장 행위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진보"를 대표할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사건 발생 이후 전교조 지도부가 보여주었던 행위를 가장 근거리에서 봐왔기 때문입니다. 2010년 4월 대의원대회에서 성평등미래위원회 건설을 확정한 이후에 7월쯤 성평등미래위원회가 건설됐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사건 관련 징계 대상자들의 징계수위가 급감경되는 등 사건 후속처리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가해를 가하는 행위들이 벌어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에서는 사건 발생 이후 과정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통해, 조직이 다시 한 번 반성하고 피해자 선생님께는 치유가 될 수 있는 하나의 단계를 밟아나갈 것을 결정합니다. 하여, 2010년 1월 작성한 보고서가 처음으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 보고 되고, 대의원대회에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기는 하지만, 문서가 공개되지는 못합니다.

이유는 전교조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에서 보낸 보고서 초안의 대부분은 빨간색으로 줄이 쳐진 채 돌아왔고, 이 보고서 초안은 피해자에게 의견조차 구하지 못한 채로 사장됩니다.

2009년 2월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지도부가 총사퇴 후 다시 민주노총에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됐습니다. 현 위원장인 김영훈 위원장이 이 사건을 꼭 해결할 의지를 밝힙니다. 그에 따라 보고서 작성을 위해 한국성폭력상담소, 민주노총, 전교조, 피해자 대리인이 회의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보고서는 대의원대회 당일까지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또다시 전교조 지도부와 피해자의 의견 대립이 문제였습니다. 

물론 과정에서 민주노총 또한 말할 수 없이 무기력했고,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했음은 당연합니다. 회의 진행 과정에서 피해자 선생님이 실신하는 사태도 있었고, 서로 언성을 높이다 회의가 잠정 중단되는 사태 또한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일례로, 성폭력 사건 비공개문서 내용이 전교조 간부에 의해 외부에 공개돼 논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선생님은 이 문서가 공개돼 사건이 왜곡되고 마치 징계 대상자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당혹해 했습니다. 이 때문에 비공개문서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회의 석상에서의 약속을 어긴 전교조 지도부에 공개사과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피해자와 반목했던 전교조 지도부에 맞서 피해자 선생님이 힘겹게 싸움을 벌여가며 만들어 낸 결과가 겨우 보고서 몇 장입니다.

약자를 품지 못하는 진보, 자격 있나  

"아무리 전교조의 그 누군가가 정말 억울한 일이 있다 할지언정 피해자 선생님만큼 억울하고 화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전교조의 이러한 태도는 정말 화가 납니다."

사건 관련 공개토론회가 전교조에서 열렸을 때 함께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여성단체 활동가의 말입니다. 

2010년 봄에 시작했던 보고서 작성은 2010년 가을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선생님은 끝나지 않을 고통을 부여잡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이 사건을 겪으면서 느낀 점은 성폭력 사건은 결국 사회적 소수자에게 벌어지는 엄청난 형태의 폭력이라는 점입니다. 권력을 잡고 있는 누군가가 자기보다 약한 누군가를 가장 극악한 형태로 짓밟는 행위입니다. 때문에 가해자는 주변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만, 피해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는 늘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고, 이는 사회에서 핍박받는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MB를 외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휘두르는 횡포에 더 이상 참기 힘들기 때문이죠. 99퍼센트의 사람들, 노동자를 대표해 제도 정치 안에서 이들에 대항해 싸우라고 선정하는 것이 바로 민주노총 후보입니다. 아마 통합진보당 후보도 그런 사람들로 뽑는 것일 테죠. 그런데, 단 한 명의 조합원, 어찌 보면 전교조 조합원 중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는 그녀를 품지 못한 그를 노동자 후보로, 진보라는 이름으로 내세우는 것이 옳은 일인지요?

개천에 흐르는 물을 시멘트로 막는 일에 반대하고, 바위를 부수는 일을 반대하는 것처럼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피해자 편에 서는 일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소소하다 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어떤 형태의 폭력에도 반대하는 것이 바로 진보의 첫걸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를 민주노총 후보로 인정할 수 없고, 통합진보당의 결정에 유감을 표합니다. 더불어 피해자 선생님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입니다. 딸아이를 키우며 드는 요즘의 제 생각은 이 맑은 눈을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피해자 선생님을, 진보를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의 결단을 부탁드립니다.


#통합진보당#민주노총#총선#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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