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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누구세요, 당신?> 겉표지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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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봄에 김현자 시민기자와 함께 이종호 작가를 만나서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포소설 작가인 그는 장르소설의 가장 큰 매력으로 '재미'를 꼽았다.

이 작가는 장르소설은 순문학과 달리 감동보다는 재미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장르소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관념이나 작가의 생각 등은 가급적 넣지말고, 사건과 갈등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었는데 그 영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거기에 대한 철학적이거나 인간적인 고찰보다는 그 영혼 때문에 생겨날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집중한다는 얘기다.

저승으로 가지 못한 불쌍한 영혼을 동정하기는커녕 그를 이용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니 어찌보면 참으로 짓궂은 상상력이다. 이종호 작가의 최신작인 <누구세요, 당신?>은 바로 이런 불쌍한 영혼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가의 대표작인 <분신사바> <이프>가 진지하면서도 섬뜩한 공포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은 비교적 분위기가 가벼운 편이다. 일부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다.

한 여인의 죽음

<누구세요, 당신?>의 주인공인 27살의 희진은 명품으로 치장하고 밤마다 청담동의 클럽을 누비고 다니는 소위 말하는 '된장녀'다. 또한 이제 막 스타덤에 오른 가수 박성우와 연인사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성우는 희진 모르게 다른 여가수와 바람이 난 것도 같고 이전처럼 희진에게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여기에 지친 희진은 어느날 클럽에서 만난 멋진 남자에게 반해서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런 시간도 잠시, 희진은 새로운 남자와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하지만 뭐가 그리도 원통한지 희진의 영혼은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이승에 남게 된다.

'초보귀신'인 희진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다. 귀신은 잠도 안자고 식욕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이 좋아하던 거품목욕도 못하고 럭셔리한 오피스텔에 앉아서 고급와인을 마시지도 못한다. 친구들에게 자신은 아직 이승에 남아있다고 외치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박성우도 희진을 잊고 다른 여자를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다.

성우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희진에게 '고참귀신'인 정옥이 나타난다. 생전에 일종의 무녀였던 정옥은 조폭의 일에 관여하다가 어느날 그들의 손에 죽게 되었다. 희진도 그렇지만 정옥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정옥은 희진에게 귀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알려준다. 어떻게 하면 악귀에게 잡아먹히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귀기'를 잃지않고 유지할 수 있는지 등.

귀신이 있으면 퇴마사도 있는 법이다. 작품 속에는 어설픈 사기꾼에 가까운 퇴마사 선일과 그를 돕는 조수 진만도 등장한다. 진만은 실제 퇴마사였던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청동거울을 가지고 있다. 그 거울에는 귀신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이렇게 귀신커플인 정옥과 희진, 퇴마사커플인 선일과 진만은 자신들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된다.

수많은 원혼들

2008년 봄 여의도에서
▲ 이종호 작가 2008년 봄 여의도에서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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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죽은 영혼은 자신이 죽은 장소를 떠나지 못한다. 작품 속에서 엄마의 생일선물을 사러나갔다가 차에 받혀 죽은 어린아이는 엄마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 그 자리를 맴돈다. 40년째 귀신으로 산에 살고(?) 있는 한 영혼은 무료함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살아있는 인간을 해코지해서 죽이기도 한다.

살아 생전에 부와 명예를 누리다가 편하게 죽는다고 가정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운명이기 때문에,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물며 한참 잘나가던 젊은 여성이 애인에게 버림받고 죽는다면 원통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영혼이 된 희진은 '사람이 한을 품고 죽으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될거라고' 말한다. 작품을 읽다보면 크게 두 가지가 궁금해진다. 희진은 어떻게 복수할까? 복수가 끝나면 저 세상으로 맘 편히 떠날 수 있을까?

아무리 자신의 한을 풀었더라도 이승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승에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 세상에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세요, 당신?>은 전혀 무섭지 않은 귀신 이야기지만, 이 작품을 읽다보면 왠지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원혼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지금 등 뒤에서 이 글을 함께 읽고 있을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누구세요, 당신?> 1, 2. 이종호 지음. 황금가지 펴냄.



누구세요, 당신? 1

이종호 지음, 황금가지(2012)


태그:#누구세요 당신,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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